“조선학교 차별은 역사·인권문제…30년 묵은 이념잣대 왜 들이대나”[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프로덕션 ‘이스크라 21’의 대표다. 부산에서 방송사 외주 제작을 하며 재일조선인·고려인 등 소외된 재외동포를 주로 취재해왔다. 2015년 ‘조선적’ 연극인 김철의를 좇는 첫 장편영화 <항로-제주, 조선, 오사카>를 내놨다. 2020년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마을인 일본 우토로 마을을 그린 다큐멘터리 <나는 우토로 마을을 기억합니다>를 제작·촬영했다. 김도희 감독과 공동연출한 영화 <차별>은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아시아발전재단상을 수상했다. 현재 부산의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의 총괄사업단장도 맡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조총련계와 비조총련계’ 칼로 무 자르듯 가를 수는 없어
통일부 존재 이유와 모순되는 일 자꾸 하려…차라리 아무것도 안 해줬으면 좋겠다
조선학교와 함께 차별에 맞선 일본인들 늘어…한국 정부의 편견 알려내는 작업 계속하겠다
차별은 조선학교의 문제만은 아냐…이주민·비정규직 차별은 현재 우리가 끊임없이 마주하는 현실
일본은 2010년부터 추진한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 고급학교 10개교를 쏙 뺐다. 무상화 지원금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등에 의해 유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반발한 도쿄·오사카·히로시마·나고야·규슈 등의 조선학교 5곳이 2013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일본 정부 조치가 재일 조선인 사회에 대한 차별이라고 맞선 것이다. 2017년 오사카 지법은 1심 판결에서 조선학교의 손을 들어줬으나, 원고들의 청구는 최고심인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모두 기각됐다.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차별>이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영화진흥위원회가 2022년 ‘반국가단체 옹호 영화’인 이 영화 등에 국비를 지원한 걸 문제 삼았다. 그 후 통일부는 <차별>을 만든 김지운 영화감독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이미 4년 전 제작을 끝낸 다큐를 문제 삼아 지난달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조선학교는 조총련 산하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남북교류협력법(협력법)상 접촉 신고 대상이라는 것이다. 배우 권해효씨가 운영하는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의 조은성 프로듀서도 같은 요구를 받았다.
김 감독을 부산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 사무실에서 지난 21일 만났다. 일본 효고현 상영회를 마치고 전날 도착한 김 감독은 “남북교류협력법을 만든 지가 30년이 넘었는데, 현실과 맞지 않는 잣대를 지금 들이대는 게 맞는가”라면서 “정부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냉전적 시선으로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그들 곁에 선 일본인들도 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한국 정부가 “통일부의 존재 이유와 모순되는 일을 자꾸 하려고 하는데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해줬으면 좋겠다”며 “민간 교류가 끊기면 다시 회복하는 데 그동안 걸렸던 시간만큼 수십년이 걸릴 텐데 정부가 진짜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차별’은 명백한 범죄라고도 했다. 그는 “이러한 차별이 단지 조선학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주민은 물론이고 좋은 대학을 못 나와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차별하는 우리도 끊임없이 마주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 통일부가 영화 <차별> 제작 과정에서 ‘조총련과 조선학교 인사를 접촉했다’는 언론보도를 근거로, 만남을 사전에 신고하지 않은 경위를 제출하라고 공문을 보냈다던데요. 전후 과정이 어떻습니까.
“9월쯤인가, 통일부가 다른 단체들한테 재일동포 무단 접촉을 이유로 경위서를 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어요. 저는 지난달 초 통일부 사무관 전화를 받았어요. 그때 물어봤어요. ‘지금 와서 이러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하니까 ‘일단 언론에 기사가 났기 때문에 경위서를 제출해주셔야 될 것 같습니다’ 하더군요. 지난달 22일인가 e메일로 공문이 왔어요. 12월5일까지 보내라고 해서 경위서를 냈습니다. 심사하는 데 한두 달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결과는 봐야죠.”
- 통일부의 경위서 제출 요구는 국감에서 배현진 의원의 문제제기로 이뤄졌습니다. ‘사상 검증’ 하듯 색출 작전을 벌이는 모양새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단순히 조선학교 학생들이나 관계자들을 ‘북한 주민’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선 너무나 달라진 상황이 많기 때문에 동의하긴 어려워요. 재일동포 사회에서 ‘조총련계’와 ‘비(非) 조총련계’를 칼로 무 자르듯 가를 수는 없어요. 무엇보다 남북교류협력법이 1990년 노태우 정권 때 만든 법인데요. 30년이 지났잖아요. 현실과 맞지 않는 잣대를 지금 들이대는 게 맞는가라는 의문이 제일 많이 들어요.”
- 통일부가 문제 삼는 부분은 뭔가요.
“<차별>에 나오는 장면 대부분은 집회 현장이나 법정 앞이에요. 집회에 누가 참여하는지, 그 사람의 국적과 소속단체가 무엇인지 사전에 파악할 수 없잖아요. 재판에 지고 나서 울고 계시는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조총련 관계자입니까’ 이렇게 물어볼 이유가 전혀 없고요. 통일부 말대로 사전 접촉 신고를 해야 하는 경우를 굳이 따진다면 조선학교에서 학생들을 촬영한 거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협력법에 따르면 조총련 소속이더라도 한국 국적자는 접촉 신고 대상이 아닙니다. 현재 조선학교 학생 대다수가 한국 국적이에요. 그러니 그들은 신고 대상 아닙니다. 조선학교와 관련 있는 사람들은 조총련이라고 규정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얘깁니다.”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통일부가 남북교류 협력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정부가 교류협력 질서·체계를 확립한다는 기조로 남북교류협력법을 손보려고 하잖아요. 어쨌든 배현진 의원이 국감에서 질의하면서 여러 우려스러운 일들이 나오고 있죠. 일례로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봄’이 부산 민예총 등과 공동주최로 2019년 8월에 연 콘서트가 있어요. 당시 조총련 산하 ‘후쿠오카 조선가무단’이 참여했거든요. 이 공연도 배 의원이 질의를 해서 기사가 나갔어요. 근데 기본적인 내용도 다 틀려요. 문화예술위에서 3000만원을 지원했다는데, 그때 출연자 중 후쿠오카 가무단은 4∼5명밖에 안 되고 부산 예술인들만 30명이 넘거든요. 후쿠오카 가무단에 출연료로 지급한 게 많아야 150만원 정도인데 지원 금액이 다 그 단체로 갔다고 하더라고요. 기사 나가고 난 후 그분들이 오히려 동포들한테 욕을 먹었다고 해요. 왜 굳이 교류를 해서 이런 소리를 듣느냐고요.”
- 재일조선인들은 수많은 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학교의 ‘고교 무상화 투쟁’을 부각시킨 이유가 있나요.
“소송 시작할 때만 해도 동포들 사이에선 ‘질 수 없는 싸움’이라는 분위기가 좀 있었거든요. 고교무상화 제도를 설계한 마에카와 기헤이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원래 조선학교가 무상화 대상에 포함됐었다’는 얘기도 했고요. 그런데 2017년 7월19일 히로시마 재판에서 졌어요. 패소 판결에 동포들이 막 오열하고, 당시 그 현장을 재일동포들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걸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오사카 판결(7월28일)이 일주일 뒤였는데 달려갔죠. 이날 오사카 1심에선 원고가 전면 승소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지요. 그때부터 현장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어딜 가나 거의 반 이상은 일본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조선학교가 이제는 동포들만 지키는 학교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지켜야 하는 학교가 되어가는구나. 이 이야기로 다큐를 만들면 기존에 우리가 남북으로만 보던 조선학교의 문제를 좀 다른 시선으로도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 조선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친북 성향의 조총련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은 맞고요. 그러나 현재의 조선학교는 사상·이념 교육은 거의 없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조선학교는 해방 이후 일본 정부의 조직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줄곧 일본 땅에서 민족 교육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지금 학부모들이 조선학교에 보내는 이유도 정체성을 지키기 위함이 커요. 일본 학교에 보내면 ‘위안부는 매춘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배워야 하니까요.”
- 우리는 왜 조선학교에 무관심할까요.
“영화 말미 조선학교 학생이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북한)는 갔다 왔어요’, 한국은 ‘고향’으로 표현해요.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잘 봤는데 마지막에 콱 걸리는 거죠. 영화를 개봉했을 때 어머니가 친구분들하고 극장에 오셨는데, 다 같이 우시다가 마지막 장면을 보고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아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하셨다고 해요. 이 장면은 영화를 보신 분들이 한번 생각을 좀 해달라고 의도적으로 넣은 겁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지금 총련이냐 민단이냐 나누지 않는단 말이에요. 여전히 우리만 그 시각을 갖고 있는 거고 그런 것들을 좀 알리려는 작업들을 계속하려고 해요.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일본인들도 역사·인권의 문제로 접근합니다. 오키나와·홋카이도 문제와 똑같이 재일조선인 문제를 접근하는데 우리는 조선학교를 남북의 문제로만 바라보니까 밀어내는 것이죠.”
- 조선학교를 왜 지켜야 하나요.
“조선학교는 학생들과 졸업생, 재일동포들의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들의 민족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교사 사이에 깊은 신뢰관계 등 우리가 배울 점이 많아요. 우리나라 지역 커뮤니티나 참교육학부모회 분들이 조선학교를 와보고 ‘우리가 30여년 노력해도 안 됐는데 그 답이 여기 있네’ 하거든요. 이게 사상교육 때문인지 아닌지는 연구자들이 연구를 좀 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긴 한데, 사상만으로 가능했을까요? 학교를 자기 자신, 정체성이라고 느끼는 동포들, 많은 사람들의 헌신 속에서 학교가 유지되고 있어요.”
- 현재 조선학교 상황은요.
“일본의 차별과 학생 수 감소로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죠. 보조금이 끊긴 학교들에선 교사들의 월급이 밀리는 등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요.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일본 정부, 우익들은 역사적인 문제를 다 없애고 싶어 하는데 그 선상에 조선학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조선학교에 대한 끊임없는 차별은 학교에서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 등 자기들이 없애려고 하는 역사를 여전히 조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교 하나 세우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들어가는지 아시나요. 정부가 해외에 한국어 교실을 세우는 데 돈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도 제대로 된 학교 하나 못 만들고 있어요. 정식 교과 과정을 따라가는 학교들은 한 10개가 안 될 거예요. 근데 일본에는 이미 학교가 있잖아요. 그런 시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 조선학교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은 어떤가요.
“온라인 상연회 때 감상문을 받거든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나 싶어요. 애초 조선학교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분들이 가장 많아요.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는 더더욱 모르고요. 일본 정부가 얼마나 철저하게 조선학교를 배제해 왔는지를 알 수 있는 셈이죠. 미디어에서도 거의 안 다루고요. 일본 정부는 과거 식민지 시대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동화시켜야 될 대상은 결국은 조선인들인 거예요.”
- 재외국민을 차별에서 보호해야 할 정부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냉전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데요.
“동포들이 한국 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원하지는 않아요. 그저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명서 정도 내는 거는 괜찮지 않냐’는 것이죠. 왜 차별하냐 뭐 이런 식으로. 이번에 사전 접촉 경위서 문제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외통위 의원들이 공동으로 성명을 낸 게 최초의 성명이에요. 윤석열 정부에서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통일부 부서의 존재 자체와 모순되는 일을 자꾸 하려고 하니까요. 민간 교류가 끊기면 다시 회복하려면 그동안 걸렸던 시간만큼 걸릴 텐데 진짜 너무 말도 안 되는 일들 하고 있어요.”
- 영화 제목을 ‘차별’이라고 지은 이유는 뭔가요.
“일본에서 촬영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사베쓰’(차별)였어요. 차별의 당사자에게 ‘차별’이라는 말은 그저 단어가 아니라, 아픔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런데 우리는 차별이란 말을 일상에서 너무 가볍게 쓰는 게 아닌가 해요. 해외에서는 차별을 범죄로 인식하잖아요. 미국이나 유럽 등에는 차별금지법이 있으니까요. 근데 우리는 법이 없으니까 차별이 일상화되는 것 같아요. ‘혐오 피라미드’라고 있잖아요. 차별에서 한 단계 올라가면 폭력이 나오고, 그다음 단계가 제노사이드(대량 학살)로 이어지죠. 우리 주변도 좀 돌아보면서 차별에 관해 폭넓게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제목을 ‘차별’이라고 지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북핵이나 납치 문제를 이유로 재일조선인을 차별해도 정당하다는 건데, 차별의 조건을 붙이는 순간 모든 차별이 정당해질 수 있어요. 저는 이러한 차별이 단지 조선학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재 우리도 끊임없이 마주하는 현실이죠. 이주민 차별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좋은 대학을 못 나와도, 비정규직 노동자도 차별하잖아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영화 상영료, 초청비 안 줘도 괜찮으니 통일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차별> 상영회를 꼭 열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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