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여, 일하느니 결혼해 벼락부자가 되자
<고리오 영감>의 작품 무대는 1819년 파리입니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30년 된 해입니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혁명 세력은 1793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에 세웠지만, 공안위원회를 앞세워 공포정치를 주도한 로베스피에르도 이듬해 단두대의 희생물이 됐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1799년 쿠데타로 집권하고 1804년 황제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황제로 11년을 지낸 뒤 나폴레옹도 실각하고 유배에 처해졌습니다. 루이 18세가 즉위하면서 부르봉 왕정복고가 이뤄지고, 낡은 귀족 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혁명의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혁명 구호인 자유·평등·박애는 프랑스의 공식 이념으로 자리잡았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상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과 전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신분이 아니라 경제적 힘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노레 드 발자크는 돈에 대한 집착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당대 파리 사람들의 모습을 작심하고 그려냈습니다.
신분이 아니라 ‘경제적 힘’이 동력으로 작동
소설은 보케르 부인의 집에 하숙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형편을 시시콜콜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센강 서안의 40년 전통의 이 하숙집에서 가장 좋은 2층 방의 하숙비는 월 150프랑입니다. 육군이던 남편과 사별한 쿠튀르 부인은 유족연금으로 생활하며 먼 친척인 빅토린 타유페르와 함께 머물고 있습니다. 3층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십 대 남자 보트랭이 매달 72프랑을 내며 살고 있습니다.
월 45프랑을 내고 4층의 작은 방에 사는 사람이 셋 있습니다. 나이 든 독신 여성 미쇼노는 과거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노인을 돌봐준 대가로 매년 1천프랑의 종신연금을 받았습니다. 남프랑스에서 유학 온 대학생 외젠 라스티냐크는 가족으로부터 매년 1200프랑을 송금받고 있습니다. 연소득 3천프랑으로 일곱 식구가 살아야 하는 외젠의 가족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때 부자였던 고리오 영감이 4층 비좁은 하숙방에 가난하게 사는 것은 모두에게 미스터리입니다.
외젠은 당시 많은 젊은이가 그랬듯이 학교를 졸업하고 성실히 살아가는 삶보다, 부유한 여성을 만나 결혼해서 벼락부자가 되는 것에 더 끌립니다. 먼 친척의 도움으로 사교계에 발을 들이고 백작 부인 아나스타지와 부유한 은행가의 아내 델핀에게 다가갑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고리오 영감의 딸임을 알고 충격받습니다.
혁명 전 국수공장 노동자였던 고리오는 혁명의 와중에 공장을 헐값에 인수합니다. 이후 식량 부족으로 곡물 가격이 폭등해 고리오는 큰돈을 벌지만, 귀족 출신이 아니었기에 혁명의 예봉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부르봉 왕조가 다시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바뀝니다. 고리오는 사랑하는 두 딸의 신분 상승을 위해 각각 80만프랑의 지참금으로 두 딸을 귀족(전통 강자)과 부르주아 은행가(신흥 강자)와 결혼시킵니다. 자신은 매년 1만프랑 정도의 연금을 받는 것에 만족하고 대부분의 재산을 딸들의 결혼을 위해 썼습니다. 심지어 그 연금도 딸들이 요구할 때마다 나눠주고 가난하게 삽니다. 하지만 혁명정부에서 잘나갔던 장인에 대해 사위들은 불편해하고, 딸들 역시 아버지와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왕정복고 시대이니까요.
일해서 누릴 수 없는 ‘우아하고 품위 있는 생활’
프랑스혁명과 부르주아의 득세로 귀족신분 세습의 중요성은 줄었지만, 상속을 통한 재산 세습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탈옥수 신분을 숨기고 사는 보트랭은 외젠에게 법대를 졸업해 법률가가 돼도 별 볼일 없다고 일장 훈시를 합니다. “고매하게 살면 연봉 1천프랑에 감지덕지하면서 시골의 법률가로 시작할 거야. 서른에 연봉 1200프랑의 법관이 될 거고, 마흔이 되면 매년 6천프랑의 연금을 받는 여자랑 결혼할 수 있을 거야. 혹시 후원자라도 있으면 서른에 연봉 3천프랑을 받는 검사가 되고 마흔에 검사장이 될 수도 있지. 그렇게 이십 년간 사는 동안 네 여동생들은 결혼도 못하고 노처녀가 될걸. 게다가 검사장은 이십만 명이 도전하지만 전국에 스무 명뿐이라고. 변호사는 쏠쏠한 장사지만, 연수입이 5만프랑을 넘는 변호사는 파리에 다섯 명도 안 돼.” 그리고 외젠을 짝사랑하는 빅토린을 잡으라고 합니다. 재산가인 빅토린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지만, 아들이 죽으면 어쩔 수 없이 빅토린에게 상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신이 빅토린의 오빠를 죽여주겠다고 합니다. 대신 20만프랑을 내라고 합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발자크가 묘사한 소득과 재산의 분배와 상속재산의 중요성을 언급합니다. 당시 프랑스 성인의 연평균 소득은 400~500프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극도로 불평등했던 그 시기에 안락하고 우아하게 하인을 두고 품위 있는 생활을 하려면 평균소득의 20~30배에 이르는 1만~2만프랑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이는 일해서 벌 수 없는 수준입니다. 보트랭의 말대로 성실한 법관이 도달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100만프랑을 상속받으면 5% 이자(또는 연금)만 받아도 연 5만프랑을 벌 수 있습니다. 고리오 영감은 죽기 전 둘째 딸 델핀에게 파산 직전의 남편과 헤어져서 100만프랑을 지키라고 설득하면서, 죽는 날까지 5만프랑의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연금 소설’이라 해도 될 만큼 당시의 연금을 상세히 묘사합니다. 먼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연금제도와 비슷한 것도 있습니다. 쿠튀르 부인이나 전사한 장군의 아내 앙베르메닐 백작 부인이 받는 연금(Pension)은 현대적 의미의 유족연금입니다. 보트랭을 뒤쫓는 경찰이 하숙집 사람들에게 협조하면 공직자가 돼서 연금을 받을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것은 공무원의 퇴직연금(Pension de Retraite)입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연금은 국채에 가깝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전쟁 비용과 왕실의 사치를 위해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려 세금을 늘리거나 부유한 은행가로부터 대출받았지만 그것만으로 다 충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채를 발행했는데 그중에 원금을 상환하지 않고 매년 일정한 금액(이자라고 볼 수도 있고 연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을 지급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지급 기간이 영원한 것(Rente Perpétuelle)과 소유자의 사망 때까지 지급하는 것(Rentes Viagères)이 소설에 나옵니다. 번역본에 따라 각각 다른데 현대적 의미로 하면 전자는 영구채, 후자는 종신연금으로 번역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좋습니다. 민법이나 세법상 용어로는 무기정기금과 종신정기금으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연금’이라는 이름의 국채
종신연금은 소유자의 사망 시점까지 지급하기에 소유자의 연령이나 건강상태 등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매각이나 상속은 불가능합니다. 사망 직전 건강한 이에게 넘기면 사실상 종신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반면 영구채는 매매와 상속의 대상이 되고, 영원히 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더 유리합니다. 대신 그만큼 매해 받는 연금액(또는 이자액)은 종신연금보다 낮게 책정됩니다. 마지막까지 돈을 뜯어내려는 딸들에게 여전히 딸 바보인 고리오 영감이 ‘내가 왜 나를 위해 종신연금을 매입했는가, 영구채였으면 딸들에게 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탄식하는 장면에서 두 연금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오노레 드 발자크는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기 몇 달 전 프랑스 중서부 도시 투르에서 태어났습니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아버지의 친구 빅토르 파세가 운영하는 법률사무소에서 수습을 마친 뒤, 후계자가 되라는 파세의 권유를 거절하고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835년 출간한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은 발자크의 대표작으로, 90편이 넘는 그의 ‘인간 희극’(La Comédie humaine) 연작에 포함됐습니다. 발자크는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인물과 사건의 치밀한 관찰과 세밀한 묘사는 전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심지어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가 아는 19세기는 대부분 발자크의 산물’이라며 감탄했습니다. <고리오 영감>은 19세기 전반부 프랑스 사회와 경제를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역사소설입니다. 독일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발자크의 ‘인간 희극’에 심취해 비평서를 쓰고 싶어 했고, 엥겔스는 ‘프랑스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 모든 역사학자, 경제학자, 통계학자를 합친 것보다 발자크로부터 배운 게 더 많다’고 토로했습니다.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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