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아파트 화재 현장 “얼마나 뜨거웠으면 애들을 데리고…”
“아직도 몸이 벌벌 떨린다”
피해 9가구 25명 임시숙소로
10층 임씨 빈소 가족 오열
감식 결과 화재경보기 ‘정상’
방화문 열려 연기 급속 확산
발화지 301호 문 개방도 영향
“아이 아빠가 너무 친절했어. 아이를 그때도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어쩌면 좋아….”
지난 성탄절 새벽에 화재가 발생해 2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다친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 앞. 불이 난 동의 16층 주민 김모씨(61)가 26일 울먹이며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대피를 돕기 위해 가져다 놓은 재활용 포대 위로 두 살배기 딸을 던진 뒤 7개월 된 딸을 안고 뛰어내렸다가 끝내 사망한 4층 거주자 박모씨(33)의 소식에 김씨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한 달 전쯤 아파트 앞에서 “처음 보는 분이네요”라고 묻자 갓난아이를 끌어안은 채 “얼마 전 이사 왔다”던 박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그는 “얼마나 뜨거웠으면 애들을 데리고 뛰어내렸겠냐”며 눈물지었다.
이날 찾은 방학동 아파트는 3층부터 수직으로 10여층 위까지 새까만 그을음이 이어져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최초 발화지점인 3층 가구 내 합동감식을 위해 경찰·소방·전기안전공사 직원 총 21명이 투입됐다. 내부에 진입한 요원들이 현장을 들춰내며 살피자 단지에는 매캐한 탄내가 풍겼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을린 집을 보며 눈물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도봉구청에 따르면 이날 기준 9가구 25명이 아파트를 벗어나 구청이 마련한 임시숙소로 갔다.
16층 주민 김씨는 전날 새벽 “불이야” 하는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고 했다. 생전 본 적 없는 연기로 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그는 “연기를 한 번 마시자 경황이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다. 남편과 딸이 저를 집으로 잡아끌었기에 망정이지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죽었을 것”이라며 몸을 떨었다. 6층에 거주하는 송민호씨(62)는 전날 새벽, 매캐한 냄새에 잠에서 깼다고 한다. 그는 대피하려 문을 열자 유독가스가 집 안으로 훅 끼쳐 들어왔다고 했다. “문이 닫히면 번호키를 못 누르겠다 싶을 정도로 뜨겁더라”는 그는 현관문이 닫히기 전 집으로 되돌아와 구조를 기다렸다고 했다. 탈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송씨에게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는 아파트의 방송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주민들은 전날은 경황이 없었으나 하루가 지나니 “몸이 벌벌 떨린다”고 입을 모았다. 21층에 거주하는 70대 A씨는 “검은 연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가족들이 연기를 많이 흡입했다”며 “기침하면 검은 침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화재로 사망한 두 이웃을 애도했다.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두 아이 손을 잡은 채 단지를 가로지르다 화재가 발생한 동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다. 그는 “마음이 아프다”며 아이들과 자리를 피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학병원에 이날 차려진 박씨의 빈소에는 화환 10여개가 줄지어 있었다. 전광판에는 활짝 웃는 고인의 결혼식 사진이 내걸렸다. 고인은 서울의 한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로 활동해왔다. 오랫동안 교회활동을 해온 신자이기도 했다. 아내도 대학 청년부 시절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고인이 다니던 교회 장로 김모씨(53)는 “아내와 고인 모두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지금도 고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고인이 웃고 있는 사진을 볼 엄두가 안 난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고인의 유가족 B씨는 “듬직한 체격에 늘 가족을 챙기던 사위였다. 밝은 모습만 기억에 남는데 이렇게 돼 너무 황망하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 한 대학병원에 전날 차려진 10층 거주자 임모씨의 빈소에선 이날 오전부터 곡소리가 들렸다. 임씨는 부모와 남동생을 먼저 대피시킨 뒤 11층으로 올라가려다 계단 통로에서 사망했다. 연기 흡입에 의한 화재사가 1차 부검 소견이다. 아들의 영정 앞에 향을 꽂고 기도하던 임씨 아버지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이날 3시간40분가량 진행된 합동감식에선 화재가 사람의 부주의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 관계자는 “금일 화재감식 과정에서 담배꽁초 등을 발견했고, 본건 화재와의 관련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당시 화재경보기 작동 등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방화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 과학수사대 관계자는 “계단식 아파트라서 연기가 빠르게 확산한 측면이 있다. 301호 현관문 개방 여부와 방화문 개방 여부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지현·김세훈·김송이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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