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화약고’ 2차 대전 후 최다…‘어디서 터질까’ 불안불안[아듀 2023 송년 기획-두 개의 전쟁, 더 위험해진 세계]

정원식 기자 2023. 12. 26. 21: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크라 전쟁 이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세계 평화가 큰 위기에 처해
아프리카에선 쿠데타와 집단학살의 공포 되살아나…미·중 무역전쟁도 가열
미국의 ‘이중잣대’ 놓고 지구촌 분열도…“전쟁이 만연한 시대가 왔다” 분석
가자지구를 지상 침공한 이스라엘군이 지난 20일(현지시간) 북부 지역에서 야간 작전을 실시하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공습과 지상 작전으로 팔레스타인인 2만여명이 사망했다(위 사진). 교착 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 양상이다. 중동에 서방의 관심이 쏠리면서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지원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동부 도네츠크에서 지난 16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AFP·로이터연합뉴스

2023년의 새해가 밝아왔던 지난 1월 아미나 모하메드 유엔 사무부총장은 “세계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많은 폭력적 분쟁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경고는 예언이 됐다. 올 한 해 세계는 더욱 위험해졌다.

연초부터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날을 세운 미국과 중국은 대만 문제와 반도체 기술을 두고 양보 없는 대치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대만 총통 선거가 다가오면서 대만해협의 긴장은 고조되고 있으며, 반도체와 희토류 공급망을 둘러싼 ‘무역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2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희생자를 낳았다. 지난여름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실패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4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라졌던 세계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면서 더욱 분열됐다. 미·중 갈등 구도는 분쟁을 중재해야 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식물로 만들었다. 강대국들의 관심이 유럽과 중동에 쏠린 사이 아프리카에서는 쿠데타와 내전으로 인한 인도주의적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연초부터 얼어붙은 미·중관계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미·중 대화 분위기는 ‘중국 정찰풍선’ 사태로 연초부터 먹구름이 드리웠다.

1월28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서쪽 알류샨 열도 상공에서 포착된 중국 정찰풍선이 2월1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관 중인 몬태나주 맘스트롬 공군기지 상공에 나타나자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중국은 기상 관측 및 과학 연구용 민간 비행선이 항로를 이탈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미국의 주권과 국제법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자 무책임한 행위”라면서 중국 방문을 전격 취소했다. 풍선은 2월24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동부 해안 상공에서 격추됐으나 양국 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지난 22일 양국 군 고위 당국자 간 대화가 1년5개월 만에 재개되면서 미·중관계는 화해 분위기를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날 미국이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 규제 방침을 밝히자 중국이 핵심 광물인 희토류 가공기술 수출 금지로 맞대응하면서 미·중 무역갈등은 오히려 격화하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0일 “미국과 중국은 불편한 화해 분위기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면서 “대만 총통 선거(1월)와 미국 대선(11월)부터 미·중 무역갈등에 이르기까지 2024년에도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앞에는 걸림돌이 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전했다.

폭발한 ‘중동의 화약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태평양에 관심을 쏟고 있는 사이 중동에서는 오래된 화약고가 터졌다. 지난 10월7일 새벽 하마스 대원 3000여명이 가자지구를 둘러싼 높이 6m, 길이 65㎞의 분리장벽과 첨단 감시망을 뚫고 이스라엘 군사기지와 민간인 거주지를 급습한 것이다.

이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1200여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인질로 잡혀갔다. 1948년 건국 이후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발생한 최악의 인명 피해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물과 연료, 전기를 차단하고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시작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은 병원, 구급차, 학교, 난민촌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군(IDF)의 하마스 섬멸 작전으로 유례없는 피해를 입었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 누적 사망자는 지난 20일 기준으로 2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2008년부터 2023년까지 15년 동안 이스라엘과의 충돌로 발생한 사망자 규모(6407명)의 3배가 넘는다. 누적 사망자 2만명 중 8000명은 어린이, 6299명은 여성이다.

지난 22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개전 이후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파괴의 규모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연합군의 공격으로 받은 피해보다 크다. 1942년과 1945년 사이 독일 주요 도시들에 대한 연합군의 공격으로 독일 전체 건물의 10%가 무너졌는데, 가자지구에서 지금까지 파괴된 건물의 비중은 33%가 넘는다.

전쟁은 미국의 도덕적 신뢰에 치명타를 안겼다. 미국은 지난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며 국제법과 인도주의를 명분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규탄을 주도해왔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를 우려한다면서도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계속하고 유엔 안보리의 가자지구 휴전 촉구 결의안을 두 차례나 거부하면서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쟁 초기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와 관련해 이스라엘 비판을 주저했던 유럽 국가들도 러시아와 이스라엘에 대한 입장이 달라 ‘위선적’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브라질을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개도국)의 지지를 얻으려 했던 서방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변하는 분위기다.

미국 사회 내부도 친팔레스타인 여론과 친이스라엘 여론이 맞서며 둘로 쪼개졌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이었던 유색인종 유권자들이 바이든 행정부의 무비판적 이스라엘 지지에 등을 돌리면서 이는 내년 치러질 미 대선에서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렁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것은 우크라이나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월 동부와 남부에서 대반격을 개시했으나 러시아의 철통 방어망에 가로막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접어들고 우크라이나의 승리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상황에서 터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온통 중동으로 돌려놓았다.

길어지는 전쟁은 ‘피로감’을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미국과 서방의 단일대오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0월20일 의회에 요청한 614억달러(약 80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은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조정소통관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군사 지원을 한 차례 할 수 있는 예산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500억유로(약 71조원) 규모 우크라이나 지원금도 지난 14일 러시아와 가까운 헝가리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무기 지원이 충분한 상태에서 시도한 대반격에도 실패했다. 향후 원조가 줄어들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이 타격을 받는 건 불가피하다. 지난 16일 CNN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내년 여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패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미국과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차질이 빚어지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월 최측근인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반란으로 한때 위기를 맞았으나 반란은 ‘일일천하’로 끝났고, 프리고진 역시 지난 8월 의문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2년 만에 연말 기자회견을 재개한 것에도 이 같은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잊혀진 아프리카, 반복되는 비극

강대국들의 관심이 유럽과 중동에 쏠린 사이에 아프리카에서는 쿠데타와 집단학살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지난 7월26일 니제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계엄령과 국경 폐쇄를 발표했다. 이는 2020년대 들어 서아프리카에서 5번째 발생한 쿠데타이다. 말리, 기니, 부르키나파소에 이어 니제르에도 군정이 들어서면서 서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지역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독립한 서아프리카 지역은 테러와 무력분쟁 위협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으나 2020년대 들어 쿠데타가 반복되고 있다.

수단에서는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사령관이 이끄는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과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의 정부군이 지난 4월부터 유혈 충돌을 벌이면서 1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60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RSF는 30만명이 희생된 2003년 다르푸르 학살을 주도한 잔자위드 민병대의 후신으로, 다갈로 사령관은 잔자위드 지도부 중 한 명이다.

지난 18일에는 RSF가 난민들이 피신해 있던 수단 제2의 도시 와드 마다니를 장악하며 인도주의적 위기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니세프는 지난 21일 그동안 난민들의 거처가 돼준 와드 마다니까지 내전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어린이 300만명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다고 경고했다.

중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지난 10월 초부터 북쪽 지역에서 M23 반군과 정부군 사이 충돌이 재개됐다.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동안 정부군과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사이 내전으로 50만여명이 사망한 에티오피아에서도 내전 중 정부군을 지원했던 파노 민병대가 지난달 초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는 등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미 시사주간지 디애틀랜틱은 지난달 17일 “최근 2년간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가장 많은 분쟁이 발생한 시기였다”면서 “이제 전쟁이 만연한 것이 우리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