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말해요, 아프면 쉬어요…그래도 된다고 해주세요[아듀 2023 송년 기획-상처 난 젊음, 1020 마음건강 보고서]

민서영 기자 2023. 12. 26.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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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이렇게’ 말해줘 ‘이런 게’ 필요해
밝아진 마음이 또 다른 마음을 밝힐 수 있도록…
숨겨왔던 아픔을 털어놓은 청소년
또래에게 ‘회복의 롤모델’로 영향
강연식 교육보단 참여형이 효과적
주기별 검진·상담 서비스 확대만큼
‘정신건강 컨디션 문화’ 형성돼야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중학생 시절 우울감을 느꼈던 이민솔양(18·가명)은 유튜브에서 ‘자해’ ‘자살’로 검색을 하다가 한 청소년 리더의 강의 영상을 봤다. “그 영상을 보고 정말 큰 울림을 받았어요. 사회에서는 숨기기 바빴던 내 아픔을 이렇게 오픈하면 나한테 어떤 도움이 될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아픔 말하기’가 이제는 사회를 향한 외침이 됐다. 이양은 당시 영상 속 리더와 같이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 소속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아픔을 경험한 동료 전문가)가 되어 또래와 함께하는 상담·강연·모임 등에 참여하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정신건강위원회(청소년위원회) 소속으로 공공기관 등에 정책 제안도 한다. 이양은 “‘직접 겪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다보면 정말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비영리단체 ‘멘탈헬스코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아픔을 경험한 동료 전문가)들이 ‘피어 서포트 모임’(또래 간 지지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 제공

멘탈헬스코리아는 2018년 최연우 대표와 장은하 부대표가 설립했다.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들과 함께 정신건강 서비스의 소비자 권리 강화와 사회적 인식 개선을 목표로 사회사업을 하고 있다. 장 부대표는 “청소년·청년 자살 예방 단체로 보시는 분도 많은데 정신건강 영역에서 조기개입에 사회적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으로 14~25세 청소년·청년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위원회 소속 청소년 10명이 쓴 ‘2023 대한민국 청소년 정신건강 혁신 보고서’를 보면, 청소년들은 정신건강 문제의 해결책으로 ‘교육의 혁신’을 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모든 정신과적 증상의 절반은 14세부터 시작된다.

청소년위원회는 지난해 9월 실시한 ‘청소년 정신건강 교육 설문조사’에서 학교 정신건강 교육의 평균 만족도가 5점 만점에 2.7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5점(매우 만족)을 준 응답자는 0명이었다. 위원회는 학교에서 청소년들의 각기 다른 욕구를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일반적이거나 당연한 내용으로 1차 예방교육만 실시한다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교육이 영상 시청이나 강연 등 비참여형 방식인 것도 문제였다.

위원회는 청소년 대부분이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사례 중심의 대처 방법과 ‘학생 참여형 교육’을 원한다고 밝혔다. 실제 설문조사에서 ‘정신적 아픔을 겪은 청소년이 직접 정신건강 교육을 진행한다면 들을 의향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응답자 87%가 ‘예’라고 답했다.

교사와 부모 등 어른들에 대한 교육도 대안으로 제시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청소년의 정신건강 문제는 청소년만의 노력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위원회는 교사가 학생의 정신건강 상태를 인식하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이론 중심의 형식적인 교육보다는 실질적인 개입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5일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청년층에게 2년 주기로 정신 건강검진을 하고 심리상담 서비스 제공을 늘리는 내용 등이 골자다. 장은하 부대표는 검진과 상담 횟수를 늘리는 것만큼 ‘정신건강 컨디션’이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장 부대표는 “미국엔 학교마다 다르지만 한 달에 한 번, 분기에 몇 번식으로 ‘멘털헬스데이’(Mental Health Day)라는 게 있다”고 소개했다. 멘털헬스데이는 정신건강을 관리하도록 학교를 쉴 수 있는 날이다.

장 부대표는 “코로나19 이후로 멘털헬스데이를 더 많이 늘리자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청이 있었다. 꼭 몸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내 마음이 힘든 걸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언제든지 쉴 수 있는 문화 자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멘탈헬스코리아에서 청소년 리더들이 주축이 돼 운영하는 커뮤니티도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조직했다. 지금까지 청소년 정신건강 리더십 프로그램을 거친 200명 이상의 청소년·청년들은 ‘회복의 롤모델’이 됐다.

자해, 학교폭력, 가정폭력 등 아픔의 경험은 피어스페셜리스트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의 ‘키워드’가 됐다. 장 부대표는 “저희도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커뮤니티를 계속 확대해나가는 성장 과정에 있다”고 했다.

피어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는 정수연씨(22·가명)는 이러한 또래모임이 정식으로 지속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씨는 “멘탈헬스코리아에서 하는 또래 간 모임이 더 확장되면 동료상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대일이나 집단 등 또래 간의 지지 모임을 통해 서로 얘기를 가볍게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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