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도 빠듯한데…‘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
월 5만~10만원 청약통장에 묶여 지원 대상자 더 줄어들 듯
“취약 청년에 무리한 강요…금융권 ‘꺾기’ 관행 수준” 지적
국토교통부가 내년도 저소득층 청년 월세 지원 사업 대상에 ‘청약통장 가입자’라는 조건을 추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월 5만~10만원을 납입하는 청약통장에 새로 가입해야 월 20만원 월세 지원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월세 지원을 받다가, 종국적으로 아파트 매입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취지라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선 월세도 내기 빠듯한 월소득 130만원 미만 취약 청년에게 정부가 ‘빚내서 집 사기’를 무리하게 강요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출을 해주면서 다른 예금을 강제적으로 가입하게 만드는 금융권의 ‘꺾기’ 영업 관행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있다.
2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정부는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서 청년 월세 한시 특별지원 사업 대상에 ‘청약 가입 조건 저소득 청년 주거비 지원’이란 내용을 추가했다.
당초 청년 월세 지원 사업은 월 20만원을 취약 청년들에게 내년 12월까지 지급하는 한시 사업이었다. 올해 신청분은 마감됐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달 당정협의회를 열고 월세 지원 신청을 내년까지 연장하기로 하면서 ‘청약 가입 의무’라는 조건을 추가하고 예산 690억원을 편성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에서 월세 지원을 받는 동시에 청약에 가입해서 종국적으론 분양을 받도록 만드는 주거 사다리 지원 차원에서 조건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구체적 가입 기준, 신청 기간 등은 추가 논의를 거쳐 추후 확정할 방침이다.
정부가 기존의 월세 지원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청년통장 가입 조건까지 추가하면, 사실상 지원 대상자는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이 사업의 예산 대비 실집행률은 14%에 불과했다. 대상 문턱이 너무 높아 대다수 청년들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년 월세 사업은 보증금 5000만원 이하(월세 60만원 이하) 주택에 거주하면서 중위소득 60% 이하(1인 가구 기준 월 124만원)를 버는 청년이 대상이었다. 만 30세 미만 청년은 부모의 소득(3인 가구 기준 419만원 이하)과 자산 규모까지 따졌다.
최저시급으로 벌 수 있는 월급이 201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월세 지원 대상자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대로 청약통장 가입 조건까지 추가되면 월 120만원가량을 벌면서 월 5만~10만원의 고정비가 청약통장에 묶여야 하기 때문에, 이미 협소한 지원 대상이 더 줄어들 수 있다.
종국적으로 취약 청년들의 아파트 분양을 유도하겠다는 당정 발상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아파트 분양을 받을 여력이 없는 취약 청년들에게까지 ‘빚내서 집 사라’를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소득 청년들에겐 청년내일저축계좌를 연계해주거나, 공공임대주택 지원을 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면서 “청약통장은 추후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고려해 가입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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