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블랙스완과 회색코뿔소

이종섭 기자 2023. 12. 2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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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9년 1월 중앙과 지방의 주요 지도부를 모아놓고 “블랙스완을 고도로 경계하고, 회색코뿔소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전년도 경제성장률이 6.6%까지 떨어져 28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적표를 받아든 날이었다. 블랙스완은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가져오는 위험을 가리킨다. 회색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을 의미한다. 시 주석은 2021년 1월에도 “각종 위험과 도전을 잘 예측하고, 블랙스완과 회색코뿔소 사건에 잘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전년도 경제성장률(2.2%)이 1976년 이후 40여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뒤 나온 발언이었다.

올 한 해 중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뉴스는 단연 경제 문제였다. 연초 3년 만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쏟아졌던 중국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암울한 전망으로 바뀌어갔다. 내수와 수출은 부진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로 관련 업체들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했으며,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부에서는 중국 경제를 놓고 ‘위기론’과 ‘붕괴론’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올해는 중국 내부에서 블랙스완이나 회색코뿔소에 대한 경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달 초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하자 중국 당국은 “중국의 거시경제는 올해 지속적으로 회복세를 보였고, 긍정적 추세를 유지하며 반등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국이 경제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올해 성장률만 놓고 보면 비교적 선방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내재된 리스크다. 불안정한 대외 환경과 지정학적 리스크, 부동산 침체와 지방 부채 등 대내외적 위험 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내년 중국 경제성장률은 더욱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중국은 낙관적 전망으로 현실을 포장한다. 중국 지도부는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의 발전이 직면한 유리한 조건은 불리한 요인보다 강하고 경제 회복과 장기적·긍정적 전망의 근본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 선전과 여론 지도를 강화하고 중국 경제 ‘광명론(光明論)’을 노래하라”고 주문했다.

지도부 방침이 나온 지 3일 만에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는 경제에 대한 부정적 ‘서사’를 일례로 들며 “경제안보 분야에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범죄를 법에 따라 단호히 단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 상황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최근에는 중국 자본시장의 병폐를 지적하며 주식 투자 자제를 권고한 금융전문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폐쇄되는 일도 있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투자·소비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기론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막연한 광명론을 노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제 상황에 대한 건전한 토론과 비판마저 수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블랙스완을 경계하고 회색코뿔소를 예방할 수 있겠는가. 광명론을 노래할 만큼 자신이 있다면 결과로 보여주면 될 일이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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