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 없는 원자력 진흥의 날
최근 아파트 부실시공이 잇따라 발생해 ‘순살 아파트’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가 생겼다. 시공을 책임지는 건설사가 안전 문제를 얼마나 소홀히 대할 수 있는지 경각심을 주는 사건이다. 이런 부실시공이 불러온 참사 중 30년이 지난 지금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사고가 있다. 바로 1994년 10월12일 성수대교 붕괴 사고다. 이날 오전 7시30분쯤 서울 한강의 성수대교 일부 구간이 무너지면서 다리 위 차들이 순식간에 한강으로 빠졌다. 다리 상판과 기둥을 연결하는 부분의 용접이 잘못돼 하중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로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인 12월27일,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를 회고해본다. 최근 원전에서도 똑 닮은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앵커볼트’라는 장치가 불량으로 장착돼 하중을 버티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견됐다. 일반 고정나사와 생김새나 역할이 비슷한 앵커볼트는 원전 내부의 모든 기기를 콘크리트 벽체에 안전하게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내진 성능이 없고 설계와 다른 길이와 재질의 앵커볼트가 대거 발견돼 원전의 안전에 경고등이 켜졌다.
국내 노후원전 14기, 즉 우리나라 원전의 절반 이상에 이런 부적합 앵커볼트가 설치돼 있다. 특히 경북 경주에 있는 월성원전은 안전 관련 기기에서 설계보다 길이가 짧고 재질이 불명확한 앵커볼트가 발견됐다. 또한, 월성원전 3호기 격납건물 내부에는 내진 등급을 요구하는 기기의 94%에 비내진 앵커볼트 수천개가 시공됐다. 올해 초 발표된 활성단층 보고서에 의하면 월성원전 반경 30㎞ 내에 최대 규모 7.0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단층이 5개 이상 있다. 7.0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면 철옹성 같은 월성원전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도 흔들리게 된다.
큰 사고는 전조증상이 있기 마련이다. 성수대교도 붕괴 전 다리에 이상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대처가 전혀 없어 예방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원전 또한 앵커볼트로 인해 촉발될 수 있는 사고를 전문가들이 경고한다. 강진이 발생하면 비내진 앵커볼트가 충격을 못 견뎌 파손되거나 콘크리트에 균열을 일으켜 연결된 기계 고장을 유발한다. 이때 원자로와 연결된 냉각재 배관이 파손되면 냉각재 상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300도가 넘는 냉각재가 배관 파손으로 상온에 노출되면 방사능 수증기로 변해 건물 밖으로 누출되는 사고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최소 5년 전에 해당 문제에 대해 보고받았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원자력 기관끼리 ‘문제없음’으로 결론내렸다. 지난 11월 제보자가 국회에 전달한 자료를 보면 부적합 앵커볼트의 위법성 근거 자료와 관련 기관들이 의도적으로 이를 은폐하려는 정황이 담겨 있다.
원자력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무마하려는 이유는 격납건물의 비내진 앵커볼트를 교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콘크리트에 박혀 있는 앵커볼트를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지역 및 고방사선 구역 등 접근이 불가능한 곳들도 많다. 쉽게 시정할 수 없는 데 반해 설계기준 부적합으로 운영정지 또는 운영허가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안전에 문제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부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후원전을 계속 운전하고, 산업계 이익을 위해 신규 원전 유치 및 수출에 혈안이 돼 있다. 윤석열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안전하지 않은 원전은 한국의 미래와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원자력 기관들은 더 이상 안전을 ‘운’에 맡겨선 안 된다. 이제는 잘못을 인정하고 철저한 점검을 신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선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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