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사람과 닮아… 이해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 걸려” [마이라이프]
타고난 와인 DNA
佛 가족경영 와이너리 집안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포도밭서 뛰어 놀며 관찰
아내와 고향에 연구소 설립… 와인 외길
최초의 플라잉 와인메이커
일년 내내 남반구와 북반구 오가며
23개국 250개 이상 와이너리 순회
“좋은 와인의 기본은 좋은 테루아”
“항상 자연에 겸손하라”
“세상이 진화하듯 와인 양조도 진화
획일적 방법 고수 땐 실수 낳을 것”
‘우루과이 컨설팅’ 24번째 도전 주목
14년 만에 한국을 찾은 롤랑의 얼굴은 사진과는 달리 이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7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도 한 해 수백 개 와이너리를 오가며 와인 양조를 진두지휘할 정도로 열정은 식지 않았다. 프랑스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 샤토 라피트 로칠드, 샤토 마고를 비롯해 미국 유명 컬트와인 할란 에스테이트 등 그가 양조에 관여한 와이너리는 23개국 250여개에 달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역작 세 가지만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만든 와인이 900개가 넘는데 그중에서 3개를 뽑으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네요. 나머지 와인은 적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하.” 롤랑은 자신이 만든 와인 중 저렴하지만 품질이 좋은 와인도 있어 꼭 값비싼 와인이 자신의 역작이라 할 수는 없단다.
그는 대신 가장 기억에 남는 와인 컨설팅으로 인도를 꼽았다. “1993년 처음 인도에 갔는데 제대로 된 포도나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와인의 불모지였어요. 당연히 와인 마시는 문화도 거의 없었고 셀러를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도 찾기 어려웠죠. 특히 포도나무가 쉬어야 하는 휴면기, 즉 겨울이 없고 토양도 포도나무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사실상 와인을 만들기 불가능한 곳이었죠. 하지만 20년 가까이 여러 인도 와이너리를 컨설팅해 마실 만한 와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그중 한 와인 이름이 그로버(Grover)인데 마셔보고 맛없으면 전화주세요.” 역시 거장답게 자신감이 넘친다.
◆와인 DNA 지니고 태어난 천재 양조가
롤랑이 와인 양조의 거장이 된 배경이 있다. 와인 양조 DNA를 지니고 태어난 덕분이다. 그의 부친이 프랑스 보르도 우안의 유명한 산지 포므롤의 소규모 가족 경영 와이너리 샤토 르 본 파스퇴르의 오너이자 와인메이커였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중 하나인 샤토 페트뤼스와 불과 300m 떨어진 곳이라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포도밭에서 뛰어 놀고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와인과 호흡했다.
롤랑은 1979년 부친이 작고한 뒤 샤토 르 본 파스퇴르, 샤토 롤랑 마예, 샤토 베르티노 생뱅상을 물려받아 경영을 이끌었고 1985년부터 보르도 와이너리를 시작으로 양조 컨설팅에 돌입했다. 프랑스 밖으로도 관심을 돌려 스페인 보데가 팔라시오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미국,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23개국으로 컨설팅을 확장했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며 1년 내내 양조에 참여하는 ‘플라잉 와인메인커’의 시조가 바로 롤랑이다. 미국 컬트와인의 대명사 할란, 스크리밍 이글, 스태글린 패밀리 빈야드와 칠레 카사 라포스톨, 이탈리아 슈퍼투스칸 오르넬라이아, 오베르토, 몬테베로, 테누타 캄포 디 사쏘 등 그의 대표 작품들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롤랑은 좋은 와인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테루아를 꼽는다. 그는 뛰어난 테루아를 찾아내 가장 완벽하게 잘 맞는 품종을 고르는 남다른 감각을 지녔다. “테루아는 좋은 와인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샤토 페트뤼스, 샤토 라피트 로칠드, 로마네 콩티, 마세토가 왜 유명할까요. 그들은 마술사가 아닙니다. 좋은 포도가 있어야 좋은 와인이 만들어지고 좋은 포도가 있으려면 테루아가 굉장히 좋아야 합니다. 따라서 테루아는 바로 왕 같은 존재죠. 페트뤼스에서 200m만 떨어져도 테루아가 완전히 달라져 품질이 크게 차이납니다. 전 세계의 좋은 테루아를 선별해 좋은 와인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저의 일이랍니다.”
칠레 클로 드 로스 시에테(Clos de Los Siete)는 이런 ‘테루아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대표 와인이다. 롤랑은 1999년 칠레 멘도사에서 가장 높은 와인 산지인 해발고도 1500∼3000m 우코밸리의 황무지 850ha를 사들여 말베크를 심었다. “당시 칠레 생산자들은 수요가 많은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를 주로 재배했는데 품질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말베크가 이 땅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간파했죠. 화산암 위에 빙하가 녹으면서 생긴 자갈과 모래가 덮인 충적성 선상지로 배수가 잘 됩니다. 또 동향 포도밭은 차가운 바람이 적어 심한 서리 피해를 막을 수 있고 북향 포도밭은 일조량이 뛰어나 말베크를 재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지녔답니다.”
롤랑이 2010년대 들어 눈을 돌린 곳은 첫 해외 컨설팅을 시작한 스페인이다. 롤랑은 1993년 설립된 스페인 프리미엄 와인 유통 그룹 아랙스 그랜즈의 설립자 하비에르 갈라레타(Javier Galarreta)와 손잡고 새로운 스페인 와인을 선보였는데, 바로 두 사람의 이름을 넣은 롤랑 갈라레타(Rolland Galarreta·R&G)다. R&G 프로젝트는 2010년 리오하 알라베사, 리베라 델 두에로, 루에다를 시작으로 2014년 프리오랏, 몬테네 데 톨레도, 헤레스 등 다양한 산지로 넓혔다. 현재 92ha 포도밭에서 평균 수령 25년 올드바인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스페인은 고향인 보르도에서 아주 가깝고 스페인어를 잘 구사할 정도로 좋아하는 나라여서 늘 스페인에서 좋은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 유통망을 지닌 갈라레타와 와인을 잘 만드는 제가 합작하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했는데 다행히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역시 좋은 테루아를 찾는 것이 프로젝트의 첫 단추로 유명 산지에서도 작지만 뛰어난 구획을 찾아내는 데 주력했다. 특히 그가 주목한 땅은 해발고도가 높고 일조량이 좋으며 일교차가 커서 포도가 신선한 산도를 움켜 쥘 수 있는 곳이다. 서늘한 기후에선 포도가 아주 천천히 완숙돼 맛과 향의 집중력이 뛰어난 와인이 탄생한다. “R&G 와인은 탄닌이 둥글둥글해 편하고 즐겁게 마실 수 있어요. 플래그십 아이코닉도 너무 묵직하지 않으면서 복합미와 미네랄이 뛰어나고 장기숙성도 가능합니다. 루에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품종 베르데호는 원래 전통적으로 산도가 굉장히 찌르는 스타일이에요. 저는 루에다 와인 생산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산도를 최대한 낮췄습니다. 10∼15%를 새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하고 앙금 숙성을 더해 산도를 부드럽게 바꿨답니다. 루에다를 한정식과 페어링했는데 잡채, 불고기, 김치, 나물밥, 두부조림, 시금치 등과 아주 잘 어울리더군요.”
와인 양조와 컨설팅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항상 자연에 겸손하라고 조언하는 롤랑은 내년부터 남미 우루과이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그가 24번째 도전하는 나라다. 거장의 위대한 발걸음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
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