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가족 살린 30대의 ‘부정’
군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막타워’는 무시무시한 단어이다. 유격훈련 중 한 코스로, ‘Mock Tower’(모형탑)라는 이름에서 유래됐다.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기는 하지만, 인간이 최고의 공포감을 느낀다는 11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건 누구에게나 피하고픈 끔찍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보다 높으면 더 무서울 텐데, 왜 하필 11m일까. 내려다보는 땅이 바로 생생히 보이는 최고 위치인 11m쯤에서 심리적 공포감이 최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 막타워의 마지막 난간에 섰을 때 훈련 조교는 묻는다. ‘애인 있습니까?’ 애인이 없는 장병에게는 ‘어머니를 불러봅니다’라고 주문한다. 막타워 장병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어머니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아래로 뛰어내린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만나는 공포감을 잠시나마 이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해법이 사랑하는 이와 가족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내 몸을 던지는 막타워의 기억이 유격훈련 받은 군인들에게 유독 강하게 남게 됐을 성싶다.
지난 크리스마스날 새벽, 불이 난 아파트의 4층에서 30대 아빠가 6개월 된 딸을 끌어안고 뛰어내렸다. 4층 높이는 막타워와 비슷하다. 아빠는 둘째 딸을 살리고자 서슴없이 뛰어내려 자신을 희생했다. 지상의 재활용 쓰레기 포대더미 위에 던진 첫째와 뒤따라 뛴 엄마, 아빠가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던 둘째는 살아났지만, 아빠는 그러지 못했다. 주민들은 “얼마나 뜨거웠으면 아이를 안고 뛰어내렸겠냐”며 안타까워했다.
아파트 위층에서도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10층에 살던 30대 남성은 부모와 남동생을 먼저 탈출시킨 뒤 밖으로 나오려다 11층 계단에서 연기를 마시고 숨졌다. 그 위급하고 짧았던 순간에 이들이 먼저 생각한 것은 가족의 안전이었다. 어떤 철학이, 어떤 사상이 이보다 숭고하고 위대할 수 있을까. 모두가 크리스마스 축복을 염원했던 이날 새벽의 참변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3층에서 시작된 화재에 대해 “부주의에 의한 발화 가능성이 높다” “방화문이 모두 열려 있었다”는 합동감식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부모가 온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불행하고 가슴 저미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윤호우 논설위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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