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 ④ 방심위 '민원사주' 배후에 윗선 의혹..."민원작성 자료 전달됐다"
① '민원 작성용 자료' 존재 사실 확인...문어발식 '청부 민원' 배후에 '컨트롤타워' 존재 가능성
② 류희림 동생이 운영하는 대구 수련원 관계자 A씨 "보여준 자료 그대로 수련원에서 민원 신청"
③ A씨 "민원 신청한 사실은 기억하지만 무슨 내용인진 기억 안 나"
④ 수련원 관계자들 '민원용 자료' 복사해서 붙여 쓴 정황...다른 관계자들 민원과도 '내용 동일'
뉴스타파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방송 뉴스에 대한 심의를 신청하게 한 이른바 ‘청부 민원’ 의혹을 심층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민원 작성용 자료'가 따로 존재했던 것으로 처음 확인됐다. 실제로 이 자료 속 내용대로 민원이 대거 신청됐다. 따라서 이 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도록 지시한 인물이 이번 사건의 가장 '윗선'이 될 전망이다.
방심위는 지난해 11월, KBS, MBC, JTBC, YTN에 총 1억 4천만 원의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지난 대선 당시 뉴스타파가 보도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를 인용해서 보도했다는 이유였다. 뉴스타파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단정한 뒤, 최고 수위의 법정 제재를 결정했는데 바로 그 배경에 '청부 민원'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 확인된 '민원 작성용 문건자료' 존재...누가 만들었을까
앞서 뉴스타파는 류희림 위원장의 친동생 류모씨를 인터뷰했다. 류 씨는 지난 9월 4~5일 총 3건의 민원을 방심위에 냈다. 지난 대선 때 MBC와 JTBC가 허위 보도를 했으니 이를 심의해달라는 취지였다. 류 씨는 취재진과 만나 민원을 낸 배경을 설명하면서 "형의 지인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라며 "그 지인은 형님의 후배"라고 밝혔다.
류 씨가 사무총장인 대구 수련원 관계자 4명도 민원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류 씨는 처음에는 직원들에게 부탁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다가, 부탁은 했지만 강압은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수련원 관계자 A씨와 통화하던 중, '민원 작성용 자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A씨는 해당 수련원에서 강의하는 강사 신분이다. 그런데 불과 석달전에 자신이 무슨 내용의 민원을 적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이유가 있었다. A씨는 기자에게 "총장님이 내게 민원을 부탁하면서 자료를 보여줬고, 거기에 적힌 그대로 민원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은 (사무)총장님이 다 아신다"고 덧붙였다.
▲"자료를 그냥 봤죠. 일단 보고" ▲"그때 (자료를) 다 봤는데, 정확히 제가 (지금은) 자료가 없으니까 기억이 안 나요" ▲"일단 문구 같은 게 뭐 하여튼 보긴 봤는데. 보고서 (민원 신청을)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나요" 등 이날 A씨 증언을 종합하면, 류 사무총장이 민원을 낼 때 쓸 문구가 적힌 자료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아래는 기자와 A씨의 통화 내용이다.
○ 기자 : 다른 게 아니라 저희가 좀 전에 류○○ 사무총장님 뵙고 왔거든요. 류 총장님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부탁을 받고 지난 9월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 제기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해서 궁금해서 전화드렸거든요.
● A씨 : 아, 총장님께 여쭤보지 않았어요? 총장님이 더 잘 아실텐데.
○ 기자 : 그냥 간단하게만 부탁을 했는데, 알아서 한 거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볼 때는 사실 이게 알아서 하신 건 아닌 것 같아서요.
● A씨 : 아, 일단 제가 지금 총장님이 얘기하고 이렇게 다 해가지고 한 거라서.
○ 기자 : 그게 아니라 총장님께서 여러 분한테 부탁을 하셨다고는 인정을 하셨어요. 그런데 보니까 민원 내용이나 이런 걸 스스로 쓰신 건 아닌 것 같던데요, 보니까.
● A씨 : 그날 그 뭐야.. 설명 듣고 보긴 봤는데 잘 기억이 안 나요. 오래전이었잖아요.
○ 기자 : 그러면 컴퓨터로 해서 본인 인증하신 건 맞아요?
● A씨 : 네.
○ 기자 : (본인이) 한 건 맞고 어떤 내용을 할지 그것도 받으신 게 맞아요?
● A씨 : 그때 (자료를) 다 봤는데 정확히 제가 자료가 없으니까 기억이 안 나요.
○ 기자 : (민원 내용을) 직접 쓰신 게 아니라 총장님한테 그 내용을 받으셨죠?
● A씨 : 그랬던 것 같은데요. 제가 직접 작성하지는...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 문구 같은 게 뭐 하여튼 보긴 봤는데...보고서 했는데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요.
○ 기자 : 그러면 받으실 때 뭘로 받으셨어요?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로 받으셨나요? 내용을.
● A씨 : 자료를 그냥 봤죠. 일단 보고.
○ 기자 : 전달받으신 그 내용 그대로 치신 건가요? 민원 제기하실 때.
● A씨 : 네?
○ 기자 : 그러니까 총장님한테 전달받으신 그 내용 그대로 신청하신 거죠? 그러면.
● A씨 : 그렇죠.
- 류희림 친동생 수련원 측 강사 A씨 통화 녹취록
수련원 관계자 4명 민원은 100% 동일...류희림 측 지인들 민원과도 '일치'
'민원 자료'가 A씨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에게 공유된 정황도 확인된다. 우선 수련원 직원 2명과 강사 2명이 신청한 민원 내용이 100% 일치했다. 오탈자와 띄어쓰기 오류, 어법이 맞지 않는 문장 등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모두 같은 '자료'를 보고 썼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렇다보니 정작 자신이 무슨 내용의 민원을 왜 넣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그렇다면 류희림의 친동생이 이 '민원 자료'를 만들었을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누군가 민원 자료를 만들어 여기저기 배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수련원 소속 민원인 4명외에 다른 인물들도 거의 똑같은 내용의 민원을 써냈기 때문이다. 류 위원장의 전 직장이나 지인들의 민원 내용을 살펴보면 민원 자료를 그대로 붙여 쓴 '복붙 민원' 형태가 포착된다.
'민원 사주' 기획한 윗선 존재 가능성, 수사로 밝혀야
뉴스타파는 지난 21일부터 류희림 위원장에게 반론 및 해명을 요청했다. 집무실을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고, 이후 방심위 홍보팀을 통해서 질의서를 보냈다. 전화와 문자로는 수도 없이 연락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단 한 줄의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류희림 위원장은 오늘(26일) 출근하자마자 간부 회의를 열고, 민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다며 이를 '국기 문란' 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한 특별감찰을 지시하고, 민원인 개인정보 유출 혐의로 제보자를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청부 민원' 의혹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도 없었다. 류희림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이 무더기로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9월 4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뉴스타파 보도를 두고 검찰의 수사와는 별개로 방심위가 나서서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것에 발맞춰 문제의 '민원 작성용 자료'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민원인을 섭외한, 즉 민원 사주를 기획하고 지시한 '윗선'을 밝히는 것이다. 숨겨진 윗선은 류 위원장 본인일 수도, 혹은 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 강제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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