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칼럼] 삼성마저 사업계획이 `운칠기삼`이라니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성공의 70%는 운에 달려 있고 나머지 30%만 노력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내년 기업의 운명이 딱 그렇다. 좀 과장하면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개별 기업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요즘처럼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대내·외 경영 환경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배터리와 전기차 제조업체로 예를 들면, 개별기업이 아무리 애를 써도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다. 선거 결과에 따라 이어질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운명도 알 방도가 없다. 만약 미국이 보조금을 없앤다면 기업의 선택지는 '계속 가느냐, 접느냐' 밖에 없다. 계속 가면 적자가 누적되고, 접으면 지금까지 투자한 노력과 수조원의 비용이 모두 허사가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마찬가지고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에서도 기업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현 시점에서 리스크를 최소화 하고 실패하지 않을 가장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기업들은 이 선택을 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전국 30인 이상 기업 204곳의 임원을 대상으로 내년 경영전망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영 계획을 수립한 기업 10곳 중 8곳은 내년에 '현상 유지'를 하거나 '긴축경영'을 하겠다고 답했다.
기업 경영의 최우선 원칙은 예측 가능한 '지속가능성'인데, 지금의 대내외 경영 여건을 고려하면 어떤 선택을 해도 그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몇 년은 근근이 버틸 수 있는 대기업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중소기업들은 "부도가 나더라도 사업을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접고 빚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나"라는, 목숨을 건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대기업들이 허리띠를 조여매면, 중소기업의 일감은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이 냉혹한 시장경제 논리다. 현장에서는 일감이 줄어 은행 빚도 갚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줄을 잇고 있다. 대기업을 따라 외국에 나갔는데 대기업이 철수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중소 협력사들도 부지기수다.
다시 '운칠기삼'으로 돌아가보자. 이는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뒤집으면 설령 '도박'일 지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운을 바랄 수도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려는 기업들은 작금의 위기에도 투자와 도전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작년 6월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첫째도 기술, 둘째도 기술, 셋째도 기술 같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운'이 다가오더라도 노력의 산물인 '기술'이 없으면 성공의 기회를 잡을 수 없다는, 기업 경영의 기본에 대해 강조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총수의 이 같은 굳건한 의지를 바탕으로 올해 사상 최대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할 예정이다. 이건희 선대 회장 당시 적자에도 뚝심 있는 투자를 지속해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단이다.
기업들의 이 같은 강한 의지가 고전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앞으로 끌어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정확한 나침반과 튼튼한 다리가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그래도 우리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정치까지 기업의 발목을 잡진 않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에 대해 기업이 유예나 개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처벌이 두려워서라기보단 해당 법 자체가 모호해 불확실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잔재인 '기업 줄세우기'나 '흔들기'의 악습도 이제는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기업이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고, 그럼 정치인들이 설 자리도 없어진다. 제발 주유소 옆에서 불장난 하듯 기업을 부하 부리듯 하는 나쁜 관습은 없어졌으면 한다. 정부는 명확한 시장경제 철학과 원칙을 바탕으로 기업을 투명하게 잘 감시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기업의 운명이 운칠기삼이라면, 내년엔 불운이 아닌 행운이 7할 이상으로 채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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