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 아기 안고 뛰어내린 아빠는 약사…“자상한 학생회장 선배였다”
성탄절인 지난 25일 새벽에 일어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 이틀째를 맞아 희생자들은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2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박모(32)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이곳엔 ‘사랑하는 가족, 짧은 생 멋지게 간다!’고 적힌 조화도 놓여있었다. 숨진 채 발견된 4층 거주민 박씨는 3층에서 난 불이 빠르게 위층으로 번지자 아파트 경비원들이 주민들의 대피를 돕기 위해 가져다 놓은 재활용 포대 위로 2세 딸을 던진 뒤 7개월짜리 딸을 안고 뛰어내렸다.
서울 소재 모 대학 약학과 출신인 박씨는 작년부터 약사로 일해 왔다고 한다. 박씨와 같은 대학교 동문이라고 밝힌 약사 A씨는 “(박씨가) 대학 시절 학과 대표와 학생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리더십 있고 자상하던 선배였다”며 “평소 후배들이 무척 아끼고 따랐다”고 했다. “동문들 모두 박씨의 부고를 접하고 믿을 수가 없어 슬픔과 충격에 잠겼다”고도 했다.
박씨 가족과 지인이라고 소개한 B(50)씨는 “박씨가 사는 집에서 화재가 났다고 해 박씨의 아내와 통화를 했다”면서 “박씨 아내의 첫마디가 ‘남편이 죽었대요’였다”고 말하며 눈물을 삼켰다. 또 “(이들 가족이) 5월쯤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2살된 박씨의 딸이 이 집이 너무 좋다고 해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너무 좋은 가족이었는데 이렇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전했다.
박씨 부부를 8년간 알았다는 김모(53)씨는 “오전에 소식을 전해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김씨는 “박씨는 두 딸을 정말 잘 챙기던 좋은 아빠였다”며 “과묵하고 어린 친구들에게는 잘 챙겨주는 좋은 형”이라고 했다. 김씨는 고인의 영정 사진을 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임모(37)씨의 빈소가 하루 먼저 차려졌다. 26일 오전 빈소 내 한켠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는 임씨 부친의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임씨는 10층 거주자로, 화재 사실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했다. 부모님, 남동생을 먼저 대피시킨 임씨는 가장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와 화재를 피하려고 했으나 11층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결국 숨졌다.
본지와 만난 임씨 부친은 “평소에 맛있는 것도 자주 사오고 여행도 보내주던 착한 아들이었다”며 “월급 타면 월급날마다 같이 밥도 먹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도 사줬다”고 했다. 또 임씨 부친은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가족들 다 살리고 혼자 죽으면 어떡하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임씨의 고모는 “임씨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성탄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다 사고를 당했다”며 “그 착하고 착한 아이가 가족들만 살리고 혼자 간게 너무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한편 서울 도봉경찰서는 이번 화재로 숨진 박씨와 임씨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시각을 파악하기 위해 시신을 부검했다. 박씨는 ‘추락에 의한 여러 둔력 손상’, 임씨는 ‘연기 흡입에 의한 화재사’라는 1차 소견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받았다.
이번 화재로 박씨와 임씨 2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을 입었다. 화재가 발생한 세대는 전소됐고, 일부 층 베란다 등이 소실돼 총 1억980만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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