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의 바디올로지] 비난부터 찬사까지 첨예한 평가의 장에 놓인 ‘타투’

이유진 2023. 12. 2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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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의 바디올로지]16 _문신
1691년 필리핀에서 끌려온 남태평양 출신 ‘왕자 지올로’를 광고하는 팸플릿. 온몸에 문신을 한 이 ‘희귀 인간’은 영국 런던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전시되다 얼마 안돼 천연두로 사망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갈라티아서 6장17절)

여러 기독교학자들은 이 흔적을 문신(타투)이라고 추정한다. 서기 528년 쓰인 이사야서 주해를 보면, 당시 많은 기독교인이 팔에 십자가나 그리스도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전통 기독교 사회에서 문신은 이교도의 것으로 여겨져 금지되었다. 그러나 신을 위해 고통을 참고 견디는 사람은 예외였다. 몸에 지워지지 않는 의미를 새기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일이고,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사람들은 일찌감치 믿었던 것 같다.

가장 오래된 문신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 근처 알프스산맥에서 발견된 5000여년 전 ‘얼음 인간’의 몸에 새겨진 것이다. 이 청동기시대 인간의 신체 여러 부분에 십자가 문양과 선으로 이뤄진 문신이 있었다. 이집트에서도 여성 미라들 피부에서 문신이 발견되었고, 중국과 러시아 국경 인근에서 발견된 철기시대 기마전사 족장 미라에도 문신이 있었다. 삼국지 동이전에도 고대 한반도의 문신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서구에선 787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문신금지령을 선포한다. 문신은 야만족의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이후 서구에서 문신 문화는 중단되었다가 18세기 제국주의 탐험가들이 문신 문화를 낯선 땅에서 발견하면서 유럽에 수입되었다. 한반도에서는 조선시대 이후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유교 관념에 따라 몸을 변형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대신 강도 같은 범죄자를 처벌할 때 바늘로 살갗을 찌른 뒤 먹을 넣어 지워지지 않도록 문신을 새겼다. 자자형(刺字刑)이다. 일본은 1757년 처음 번역된 ‘수호지’ 영향으로 서화문신이 발달했다. 삽화에서 영웅들이 커다란 용 문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일본의 문신은 예술적 경지에 올랐고 서구인들은 일본 거장에게 줄 서서 문신을 새겼다.

‘타투’라는 말의 어원은 폴리네시아군도 타히티 언어 ‘치다’(tatau)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여러 타투이스트가 시술하고 있는 강렬한 문양의 폴리네시아 문신을 처음 서방세계에 알린 사람은 1769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의 배에 함께 올랐던 박물학자 조지프 뱅크스였다. 유럽 선교사들과 제국주의자들은 문신을 야만인들의 것이라며 배척했다. 천연자원을 약탈하고 조상 대대로 살아온 주거지를 침략한 백인에 맞서 선주민들은 열심히 투쟁했다. 폴리네시아 문신은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식민지 정부는 문신을 불법으로 간주했다. 19세기 말 일본이 타이완을 점령했을 때도 당시 성행하던 얼굴문신금지령이 내려졌다.

식민지 주민의 몸은 착취의 대상이었다. 17~18세기 유럽에서 식민지 사람들의 문신은 희귀한 볼거리였다. 1691년 온몸에 문신한 남태평양 출신 남자 ‘지올로’가 영국 런던에 전시되었다. 필리핀에서 노예로 팔려온 이 남자를 ‘문신의 왕자’라고 소개하는 팸플릿까지 제작됐는데, 그는 구경거리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곧 천연두로 숨진다. 유럽인들은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문신한 마오리족 남자의 잘린 머리를 비싼 값에 사들여 수집했다. 식민주의가 이민족의 문화를 대하는 방식은 소유하거나 소멸시키는 것이었다. 수천년 문신 사회는 수십년간 식민주의 역사 동안 사라졌다.

서구 인류학자와 탐험가들은 선주민들의 문신을 기록하고 새롭게 해석하면서 의미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25년 인류학자 윌프리드 다이슨 햄블리는 문신의 목적이 질병 치료, 재난 보호, 액막이, 기복성, 기록성 등에 있고, 문신의 기원은 종교적 습속에 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은 억압된 성욕과 성도착이 문신의 동기라며 낙인찍었다. 이는 문신을 불순한 이민족의 것이라고 천명한 그리스·로마시대 문화와 기독교 사상을 교묘히 결합한 것처럼 보인다.

영어권 최초의 여성 문신가로 기록된 모드 와그너. 위키미디어 코먼스

1808년 프랑스는 범죄자들의 문신을 기록하는 교도소법을 시행했다. 1876년 투린대학 정신의학 및 범죄인류학 교수였던 세자르 롬브로소는 범죄자들은 원시적 유형의 인간이고, 문신이야말로 범죄자들을 가려낼 가장 손쉬운 방법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사회적 편견은 롬브로소의 주장과 상호작용했고 권력과 결합했다. 문신은 범죄자들의 것이라는 관념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오랫동안 여러 사회에서 문신은 마약쟁이, 항만노동자, 전과자, 동성애자의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이 행동에 규칙을 부여하고 빈틈없는 가시성의 테두리 안에 수형자를 가둔다고 설명한다. 푸코는 원형 감옥 안에서 수형자의 신체가 규율되고, 세세하게 관찰 분류된다고 보았지만, 이는 오늘날 사회 전체를 규율하는 지배적 시선과 다를 바 없다. 우리 신체는 타인의 눈으로 섬세하게 관찰되고 분류되고 계급화된다. 개인의 몸은 각 부분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범주로 재배치된다.

오늘날 문신은 니체의 말처럼 ‘나 자신’이 되려고 선택하는 ‘바디 아트’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현대사회도 문신을 곧장 낙인찍기보다 문신을 새긴 사람의 지위나 문신의 품질에 따라 평가를 달리한다. 철없고 가난한 10대가 직접 자기 몸에 새긴 조악한 문신부터 세계적 타투이스트가 조심스럽게 기획하고 정교하게 작업한 아티스트의 문신까지, 자본주의적 시각 매트릭스 안에서 문신한 몸은 비난부터 찬사까지 첨예한 평가의 장에 놓인다. 사회연결망서비스(SNS)에서 자신의 선택과 경험을 자랑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취향 사회’에서 문신은 계급 없는 사회의 계급적 표식이 된 지 오래다. 운동선수, 연예인 같은 유명인의 몸을 장식한 아름다운 문신은 그들의 문화적인 감각과 철학을 반영하지만 돈과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헐값에 받았을 법한 형편없는 문신은 반대로 하류 인생사를 증명하는 상징이 된다. 성형수술이 자본과 시간의 유무에 따라 환자의 얼굴과 몸을 위계화하는 것처럼 문신 또한 시술된 몸을 뚜렷하게 위계화한다.(더구나 한국은 문신 관련법조차 없어 대부분 시술이 불법이며 청소년의 어이없는 타투 경험을 계도할 방편도 없다.)

최근 한국에서 문신이 ‘타투’로 불리면서 연인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혹은 혼자 즐기는 오락이나 패션의 일부가 되어 문화적 금기에서 벗어나고 있다지만 ‘문신한 여자는 걸러야 한다’는 주장과 문신한 여성에 대한 공격이 백래시 물결 위에서 유포되고 있다. 문신한 여성은 결혼하고 어머니가 될 순결한 몸을 훼손할 정도로 충동적이고 반사회적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문신을 문화적 규범 위반 행위로 간주하는 시선 때문에 문신하는 것도, 문신한 몸에 대한 저급한 시선을 견디는 것도, 폭력적인 평가에서 벗어나고자 문신을 지우는 것마저 비난의 대상이 되며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문신은 계급적이며 젠더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문신을 보는 시선이 다양화하면서 나라 안팎에서 문신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몇년간 꾸준히 출간되었다. 이를 보면, 자기 몸에 대한 자율권을 획득하고 자신감을 북돋우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문신을 새겼다는 이들이나 주술, 믿음, 기원을 담아 문신한 이들이 적지 않다.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 반려동물, 좋아하는 음식이나 되고 싶은 직업군의 상징을 몸에 새기기도 한다. 최근엔 엠제트(MZ) 세대 중심으로 장기기증 희망자임을 나타내는 문신이 유행했다. 고대인처럼 몸을 메타언어로 사용하는 실천은 현재진행형이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메멘토’(2000)에서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배우자를 강간하고 죽인 사람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것만은 안다. 기억이 금세 사라지는 남자는 사건을 몸에 기록한다. “중요한 것은 몸에 새겨야 돼, 타투는 영원하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이미 복수를 완성하고 ‘난 해냈다’는 문장을 가슴에 새겼지만 이내 지웠다. 자기 때문에 희생된 배우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덮고 복수를 끝없이 유예하기 위해서였다.

부처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문신으로 확인하는 자기 정체성도, 무언가를 기억하고 함께하려는 마음도 변하거나 옅어질 수 있다. 다만 새길 때보다 지우는 게 훨씬 힘든 문신처럼 무언가를 바꾸는 건 때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새해, 변화의 시기를 앞두고 있다. 차별과 혐오, 폭력과 전쟁의 세계를 끝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렵사리 새 출발을 준비하는 선한 이들에게 용기와 지혜가 함께하길 빈다.

※참고문헌: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스티브 길버트 지음, 이순호 옮김) ‘문신의 역사’(조현설 지음) ‘타투리얼리스트’(니콜라 브륄레 지음, 박진영 옮김)



이유진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 편집국 문화부, 편집부, 사회부 기자를 거쳐 책지성팀장과 토요판 부장을 지냈다. 대학원에서 여성학과 문화학을 공부했고 감염병과 주부주체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지성이 금지된 곳에서 깨어날 때’가 있고, ‘엄마도 아프다’ ‘종이약국’을 다른 필자들과 함께 썼다. ‘바디올로지’는 ‘몸(body)’과 ‘학(-logy)’의 합성어로, 지난 100년 동안 미디어를 통해 유포된 몸 담론을 씨앗으로 전쟁터나 다름없는 몸과 젠더, 장애, 노화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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