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전두광은 또다시 등장한다[MD칼럼]
[곽명동의 씨네톡]
배우 황정민은 과거 기자와 인터뷰에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캐릭터로 셰익스피어 ‘오셀로’의 이아고를 꼽았다. 오셀로의 기사였던 이아고는 극심한 질투에 사로잡혀 주변을 파괴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오셀로와 카시오를 무너뜨릴 목적으로 오셀로에게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와 카시오가 불륜관계에 있다는 거짓말로 이간질을 벌인다. 오셀로는 처음에 이아고의 말을 의심하지만 능수능란한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는다. 이아고의 간계에 넘어간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 진실이 밝혀지자 오셀로는 죄책감에 자결하고, 이아고는 체포된다. 황정민은 이아고를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내면을 탐구하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그의 바람대로 이아고를 하겠지만, 그에 앞서 황정민이 선택한 연극은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였다. '리차드 3세'는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가장 매력적인 악인'이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를 치고 어린 조카까지 죽인 추악한 인간이다. 그는 이 연극에서 냉정하고 잔혹하면서도 익살스럽고 애처로운 리차드 3세를 빼어나게 소화했다. 김성수 감독은 ‘리차드 3세’의 황정민 연기를 보고 “내면이 뒤틀린 살아있는 악마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했다. 3년 뒤에 ‘리차드 3세’를 다시 봤을 때는 “무대를 불태워버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황정민에게 ‘서울의 봄’ 전두광을 제안했다.
긴 숙고 끝에 제안을 받은 황정민은 김성수 감독에게 “악인의 끝판왕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 자리에서 민머리 분장으로 전두광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아고에 대한 관심과 리차드 3세의 열연으로 ‘악인’의 밑바닥을 깊숙하게 파헤친 황정민에게 전두광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전두광 연기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군사반란을 성공시킨 뒤 화장실에서 배설하는 장면이다. 김성수 감독은 이를 두고 “욕망이 커져서 탐욕이 그 사람을 삼켜버린다. 광인처럼 웃는 장면 이후의 전두광은 훨씬 더 나쁜 악당이 된다. 악당이 탄생하는 순간이다”라고 전했다.
김성수 감독 역시 셰익스피어의 팬이다. ‘서울의 봄’이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다. 그는 시대가 바뀌어도 욕망의 화신은 언제든 등장하고, 이러한 인간은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다시 머리를 내밀 것이라고 ‘서울의 봄’을 통해 경고한다.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욕망 열차’에 탑승하게 만드는 전두광이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역사는 악인을 용서하지 않는다.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인간들은 리차드 3세의 절규가 귓가에 울릴 것이다.
“아는가. 그대는 아는가. 그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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