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가짜 실거주' 막는다지만…증명방법 모호해 혼란 클듯
전세 갱신권 허점 보완
"내가 살겠다" 세입자 내쫓고
새 임차인 받는 임대인 예방
또다른 분쟁 초래 우려
"사람 일 내일도 모르는데…
어디까지 입증해야 믿겠나"
규제강화로 임대 위축 가능성
대법원 판결은 임대인이 실거주를 한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 '실거주 의사'에 대한 증명을 임대인에게 부여했다는 점에서 부동산 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그동안 임대인이 "실거주를 하겠다"는 이유로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 '임대인의 실거주 의무'에 대한 입증을 놓고 갈등이 많았다.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 운영위원장인 김태근 변호사는 "집주인이 실거주를 한다고 해놓고 실거주를 안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 하더라도 세입자가 이를 입증하기 어려웠다"며 "그래서 손해배상 소송도 못하고 세입자가 피해를 보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법의 허점으로 인해 세입자의 권리는 보장받지 못했다. 이제라도 중요한 기준이 명확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앞으로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는 등 갱신 거절 절차가 좀 더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세입자들이 겪는 분쟁에 대해 법률 지원을 하는 세입자114에 따르면 독일은 임대인이 실거주 사유가 실제 발생한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프랑스도 계약 해지를 위한 정당한 사유로 임대인의 실거주를 규정하면서 실거주를 위한 해지가 현실적이고 중대하다는 점을 임대인이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세입자114 측은 앞으로 계약갱신 거절과 관련된 분쟁이 줄어들고 임대인의 실거주 의무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이 문제가 될 경우 책임 유무 판단도 용이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입자114 관계자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명확히 하지 않아 그동안 혼란이 많았다. 세입자들의 불안이 줄어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앞으로 임대인이 세입자의 계약갱신권을 거절할 때 '실제 거주하려는 의사'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통상적으로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입증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임대인의 주거 상황, 임대인·가족의 직장·학교를 비롯한 사회적 환경, 실거주 의사를 가지게 된 경위, 갱신 요구 거절 전후 임대인의 사정, 실거주 의사와 배치·모순되는 언동, 이를 통해 임차인의 정당한 신뢰가 훼손될 여지 유무, 실거주를 위한 이사 준비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해석에 따르면 임대인 자신이 실거주를 하려고 한다고 했다가 뒤늦게 가족이 실거주를 하려 한다고 말을 바꾸거나 하면 '실제 실거주하려는 의사'가 진실되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역전세나 전세사기로 인해 세입자의 피해가 컸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명확해졌다. 임대인의 의무가 명확해졌으니 갈등의 소지가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실거주하려는 의사'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이다. 대법원은 '실거주하려는 의사'에 대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시장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증명하라는 것이냐'는 반발도 나온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를 세놓고 있는 김 모씨는 "사람 일이라는 게 내일 일도 모르는데, 실제 실거주를 하려다가도 일이 생겨서 가족이 살게 되거나 친척이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임차인이 못 믿겠다고 하면 믿을 때까지 증명해야 할 텐데 집주인이 이를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느냐. 소송만 늘어나는 악법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집주인이 '허위'로 계약갱신을 거절할 경우 손해배상 소송을 포함해 다른 제도적 장치가 충분한데도 '또 다른 소송'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본인 또는 직계존속·비속이 실거주를 하는 경우 세입자의 계약갱신권 사용을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올려 다른 사람에게 세를 주거나 매도하는 경우 사실상 허위로 거절한 것이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허위 실거주'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권의 근거가 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6조에 따르면 계약갱신을 거절 당한 임차인은 임대인·임차인의 성명, 확정일자 부여일, 차임·보증금, 임대차 기간을 비롯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와 별도로 집주인이 계약갱신을 거절할 때 '실거주 의사'에 대해 임차인에게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밝힌 의사'를 입증하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분쟁을 남길 요소가 크다"고 했다.
임대인에 대한 각종 규제가 임대차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임대차시장은 집주인과 세입자로 구성되는데, 집을 임대해줄 사람이 줄어들면 그만큼 공급 부족이 염려된다. 임대 수요를 위축시키는 정책은 궁극적으로 전세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은 올 하반기부터 반등세로 돌아선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 특히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년 만에 역대 최저 수준으로 예상되면서 '전세대란'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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