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법’ 궤변으로 정치 시작한 한동훈 [아침햇발]
[아침햇발]
박용현 | 논설위원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취임하면서 ‘김건희 특검법’을 악법이라고 비난했다. 일주일 전 했던 허튼소리 그대로였다.
한 위원장은 특별검사 추천권을 야당만 갖도록 한 조항을 문제 삼는데, 이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결판이 난 사안이다. 2016년 국정농단 특검법은 야당에만 2명의 특검 후보 추천권을 줬는데,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이에 대해 위헌소송을 냈다. 헌재는 2019년 2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특검 추천·임명 방식은) 국회가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특히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이 특별검사 후보자를 추천함으로써 이해충돌 상황이 야기되면 특별검사 제도의 도입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아래 여당은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입법자가 정한 것을 두고, 합리성과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두 명의 특검 후보 중 한 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는데, 여당이 한 명을 추천하면 결국 그 후보가 특검으로 낙점받을 것은 뻔하다. 그러니 공정한 수사를 위한 특검 도입의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대통령 부인이 수사 대상인 이번 특검법도 전혀 다를 바 없다. 국정농단 특검에 직접 참여했던 한동훈 위원장이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억지를 부린다.
한 위원장이 김건희 특검법의 또 다른 독소조항으로 든 ‘언론 브리핑’ 조항 역시 국정농단 특검법에 똑같이 들어 있었다. 더구나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국민의 알권리를 강조하며 검찰 공보 규정을 개정해 수사 상황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강화한 당사자이다. 검찰의 수사 상황 생중계는 괜찮고 특검은 안 된다니, 내로남불도 이런 내로남불이 없다.
한 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이 상정되는 시점을 두고 ‘총선용으로 만들어진 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특검법이 총선을 석달 남짓 앞둔 시점에 국회에 상정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여당이 미리 손쓸 방법은 수두룩했다.
특검법은 올해 4월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랐다. 숙려기간 240일을 꽉 채우면 연말에 자동상정된다는 것을 산수만 해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철저히 손 놓고 있었다.
그보다 앞서 지난 2월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공범들의 1심 유죄 판결이 났다. 판결문에는 ‘김건희 계좌’가 범행에 사용됐다고 적시돼 있었다. 그때라도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섰다면 이미 한참 전에 결론이 났을 것이다.
그보다 더 앞서 지난해 9월 이원석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수사지휘할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전 정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당시 윤석열)으로 하여금 이 사건 수사지휘에서 손을 떼도록 해놓았는데, 이 조처를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부인 관련 사건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사지휘에서 배제한 것, 이후 바뀐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되돌려주는 것은 모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 정부를 그토록 비난하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추미애 전 장관의 이 조처만큼은 고이 내버려뒀고, 그나마 수사지휘 의지를 비치던 검찰총장은 계속 발이 묶였다.
그보다 더 더 앞서 지난해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야당은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여당도 검찰도 코웃음만 쳤다.
진작 매듭지었어야 할 사건을 현 정권의 검찰과 여당이 극구 비호하면서 이 사건은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려 더 커다란 ‘권력형 사건’이 돼버렸다. 그래 놓고 이제 와 총선용 특검법 운운하는 것은 얼마나 허튼소리인가.
얼마 전 대통령실은 ‘명품 가방 영상’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겠다”는 황당한 반응을 내놨다. 권력자는 국민적 의혹에 답해야 하는 게 민주주의요 책임정치다. 답하지 않으면 답하게 만들어야 민주주의다. 김건희 특검법은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라는 국민적 요구의 결과물인 동시에, 오랜 기간 국민의 요구에 답하지 않은 대통령실·여당·검찰에 책임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한동훈 위원장은 아예 발 벗고 ‘김건희 방탄’의 선두에 서고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야말로 한 위원장이 말한 “중대범죄가 처벌받는 걸 막는 것이 지상목표인” 당이 아닌가. 법과 원칙을 그때그때 편리한 대로 내밀고 불리하면 모른 척하는 ‘법꾸라지’ 행태는 법무부 장관 때 보여준 것으로 족하다. 국민을 바라봐야 할 정치인이 된 마당에, 압도적 다수 여론에 눈감은 채 가벼운 입으로 법과 원칙을 농단하며 ‘동료 시민들’을 속이려 해선 안 된다.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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