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故) 서경식 선생을 기리며[기고]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2023. 12. 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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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徐京植) 선생님. 그곳 세상은 어떠신지요. 여전히 글 쓰시며 지내고 계시나요. 당신의 고향 교토에서 이 글을 씁니다.

한국에 소개된 첫 책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당신은 “죽음이란, 그것이 내 자신의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나 내 몸 가까이에 있다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청춘의 사신>에서도 “죽고 싶다고 절실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죽음이 항상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가슴속에 무언가가 가득 차서 우울하고 번민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삶에 집착하면서도 죽음을 동경하고 있었다”고 적기도 하셨지요.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대표 작가 윤석남은 서경식에 관한 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순간이 있다’와 초상 시리즈 7점을도 <서경식 다시 읽기>(연립서가)에 실었다 .윤석남이 최초로 선보인 남성 초상화다. 연립서가 제공

생각해 보니 당신은 죽음 자체와 죽음(학살)을 둘러싼 예술에 대해 남다른 사유를 펼친 에세이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유신정권 시절 감옥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였던 두 형(서승, 서준식)의 존재, 조국의 암담한 현실, 일본에서 분열된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실존의 우울함이 죽음에 대한 고민과 사유로 이끈 요인이겠지요.

역설적으로 늘 죽음을 의식해 왔던 당신의 죽음, 그 구체적인 사건을 이 세상에 남은 우리는 온전히 실감할 수 없네요. 당신의 독자이자 친구, 동지였던 많은 이들이 요 며칠간 당신의 죽음에 대해 깊은 애도와 탄식을 표하고 있네요. 그들이 당신의 책과 글을, 서경식이라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아껴왔다는 게 제게도 분명히 느껴집니다. 청년 시절 “원대한 이상과 일상의 욕망, 그 괴리에 온몸이 찢기면서도 제 삶을 의미 있는 무엇으로 만들”고자 했던 당신의 염원은 많은 사람의 이해와 공감을 통해 충분히 이루어졌습니다.

1951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나 자신이 주위의 아이들과 다른 소수파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살아오던 당신은 두 형이 한국 유학 시절 감옥에 갇힌 사건을 계기로 증언을 위한 문필가로 거듭납니다. 형들의 고난을 고발하고 투쟁을 증언한 <길고 험난한 도정(長くきびしい道のり)>(1988)을 시작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시의 힘> 등을 거쳐 최근 저작인 <책임에 대하여>로 이어지는 당신의 저술 작업은 일본의 독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커다란 관심과 공감의 대상이었지요. 한일 양국에서 경계인이자 소수자에 해당하는 당신의 메시지는 그 사회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관행이나 습속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날카로운 비판을 펼쳐왔습니다.

시대의 현실을 치열하게 탐문하고 소수자·경계인의 상처와 곡절을 섬세한 시선으로 살펴온 당신의 글쓰기는 그런 류의 저술이 갖추기 힘든 드문 품격과 미적 경지를 지녔기에 더더욱 독자들의 각별한 애정의 대상이 되었지 싶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아무런 대안도 없이 집안이 운영하던 파친코 가게의 사원으로 일하며, 고통 속에 하루를 마치고 가게 2층 숙소에서 우울한 마음으로 루쉰을 읽던 당신의 젊은 날을 기억합니다. 그 시절 루쉰이나 김석범 작가 같은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기에 훗날 서경식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태어날 수 있었겠지요. 늘 차별과 배제의 운명에 놓인 재일 디아스포라, 오랜 세월 감옥에 있었던 두 형의 존재, 다른 대안도 없었던 불확실한 미래, 그 모든 힘겨운 과정과 상처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망연한 우주에 계실 당신에게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보면 볼수록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 비슷한 생각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탄산수의 포말같이 솟아나는 것이다.”라고 당신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적었던 것처럼 앞으로 수많은 독자가 당신과 당신의 문장을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세상에서는 부디 모든 상처와 고통을 잊고 당신이 이승에서 미처 쓰지 못했지만, 꼭 쓰고 싶은 글을 행복하게 완성하시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바랍니다.

교토 기온거리에 울려 퍼지는 낭랑한 피아노 선율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당신의 친구 권성우 올림.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권 교수 제공

☞ ‘도쿄경제대 복귀’ 서경식 성공회대 연구교수 인터뷰 전문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0802262124392


☞ 서경식 교수 별세···전세계 ‘작은 사람들’ 편에 최후까지 서려 했던 디아스포라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312191355001


☞ 패배주의도, 식민지근대화론도, 일본 찬미도 아닌 이단자 이야기…서경식 <나의 일본미술 순례1>
     https://m.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2206091653001


☞ “전 세계 ‘작은 사람들’의 편에 최후까지”…‘서경식 다시 읽기’
     https://m.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02240600001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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