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은 없고 연봉만 수십억…총수일가 ‘미등기 임원’ 181건

안태호 2023. 12. 2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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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표 주류회사인 '하이트진로'의 총수 박문덕 회장은 계열사 15곳 중 5곳에 이사회 구성원이 아닌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총수일가 미등기임원들은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집중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계열사의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집단은 하이트진로다.

가장 많은 계열사에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총수는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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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2023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하이트진로’의 총수 박문덕 회장은 계열사 5곳에서 상법상 책임이 없는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면서 지난해 하이트진로·하이트진로홀딩스에서만 연복 약 78억원을 챙겼다. 케티이미지뱅크

국내 대표 주류회사인 ‘하이트진로’의 총수 박문덕 회장은 계열사 15곳 중 5곳에 이사회 구성원이 아닌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 사장 역시 같은 계열사 5곳에서 미등기임원으로 재직중이다. 총수 일가로서 권한을 행사하고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도 상법상 책임을 회피하는 ‘꼼수 경영’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6일 기업집단의 총수일가 경영 참여 및 이사회 운영 현황 등을 조사·분석한 ‘2023년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을 발표했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지정된 공시대상 대기업집단 73곳의 소속 계열사 2735곳(상장사 309곳)이 대상이다. 그 결과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64곳의 소속회사 2602곳 가운데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한 회사 수는 136곳(직위 수 181개)으로 조사됐다. 총수는 평균 2.4개 회사에, 총수 2·3세는 평균 1.8개 회사에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등기 임원일 때 부담하는 경영상 책임은 회피하면서, 각종 권한과 혜택만 챙기는 관행이 여전한 셈이다.

특히 총수일가 미등기임원들은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 집중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136곳 가운데 55.9%(76곳)가 이 규제 대상 회사다.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는 총수일가 보유지분이 20% 이상이거나 그 회사가 50% 초과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다. 공정거래법은 이런 회사에서 일감 몰아주기나 사업기회 유용 등 부당 내부거래가 일어나기 쉽다고 보고 별도로 규제한다.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재직 중인 계열사의 비율이 가장 높은 기업집단은 하이트진로다. 총 15개 계열회사 가운데 하이트진로산업 등 7곳(46.7%)에 총수일가가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중에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가 4곳이나 된다.

가장 많은 계열사에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총수는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이다. 총 9개 계열사(사익편취 규제 대상 6개)에서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정 회장의 장남인 정원주 부회장은 아버지보다 많은 10곳(사익편취 규제 대상 7개)에 미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미등기임원은 법인 등기부 등본에 등록되지 않아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터라 상법상 책임을 지지 않는데도 명예회장·회장·사장 등 명칭을 사용하며 권한을 행사하고 수십억원대 보수를 받는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사업보고서가 공개된 하이트진로·하이트진로홀딩스 두 회사에서만 지난해 약 78억원을 챙겼다.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은 미등기임원 재직 계열사 모두 비상장사여서 보수를 확인할 수 없었다. 홍형주 공정위 기업집단관리과장은 “총수일가가 많은 지분을 보유해 권한을 행사하지만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해 책임은 부담하지 않는다”며 “미등기임원으로 총수일가가 재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309개 상장사에서 최근 1년간 열린 이사회 안건은 총 7837건인데,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55건이고, 이 중 사외이사가 단 1명이라도 반대표를 던진 안건은 16건(0.2%)에 불과했다. 이사회에서 견제 기능을 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안건 대부분에 찬성표를 던지며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경향이 또 확인된 셈이다.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55건 가운데 부결된 안건은 13건, 나머지 42건은 조건부·수정 의결됐거나 보류됐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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