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소장’들이 남긴 일상의 파시즘, 학생인권조례 폐지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지난 12월21일 서울시의회 앞에서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모여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인권은 폐지될 수 없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한 학생은 “학생인권조례로도 학생인권 실현을 이루기 역부족인 이 시점에 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명백한 민주주의의 퇴보”라며 “서울시가 학생인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시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학생인권조례를 없애거나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충남도의회는 지난 15일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가운데 청소년들이 직접 나서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기성세대의 퇴행성과 미래세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한국 민주주의에 내재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드러내준다. “유럽과 미국이 배워야 할 민주주의”(디 차이트)를 구가한다는 나라에서 이토록 시대착오적인 행태가 반복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생인권조례 논란이 깨우쳐주는 것은 우리가 성숙한 민주사회가 아니라, 야만적인 ‘후기파시즘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 한국 사회는 전기파시즘, 즉 ‘제도로서의 파시즘’은 넘어섰다. 민주주의를 외적으로 파괴하고 부정하는 파시즘은 극복된 지 오래다. 총으로 국민을 겁박하면서 30년 동안 군사독재를 자행했던 ‘육군 소장’들은 지금은 모두 무덤에 묻혀 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태도로서의 파시즘’은 아직도 우리 일상 구석구석에 버젓이 살아 있다. 권위주의, 병영문화, 군사문화, 집단주의, 폭력문화 등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 학생인권을 신장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억압하려는 작금의 작태는 한국 사회에 일상의 파시즘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생생하게 반증한다.
후기파시즘 사회, 그러니까 ‘아주 일상적인 파시즘’이 만연한 사회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권위주의 문화이다. 우리가 이룬 경이로운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시대착오적 권위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교육 탓이다. 겉으로 보면 민주화 이후 학교에서도 어느 정도 형식적 민주주의가 이뤄지긴 했지만, 한국의 교실은 여전히 권위주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쟁주의와 능력주의, 우열의식과 승자독식이 지배하는 교실에서 12년간 교육을 받으면 성숙한 민주주의자보다는 미성숙한 권위주의자, 잠재적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가 후기파시즘 사회임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권력 집단의 행태이다. 이 사회에서 가장 잘 교육받고, 가장 모범적으로 사회화된 집단일수록 더 권위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행태를 보인다.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랴. 의사, 판사, 검사 집단의 언행을 보라. 그들의 권위주의와 집단주의, 폭력문화는 후기파시즘 사회의 특성을 그대로 재연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은 한국 사회 ‘야누스의 얼굴’을 선연하게 보여준다. 한국이 위대한 민주주의 사회인 동시에 퇴행적 권위주의 사회임을 드러내고, 우리 사회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이루었지만, ‘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이루지 못했음을 폭로한다.
학생인권조례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이제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노예로 키우고자 하는가, 자유인으로 기르고자 하는가. 정말 우리 아이들이 성숙한 자유인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먼저 ‘한국 사회의 마지막 노예’인 우리 아이들을 해방해야 한다. 이것이 성숙한 민주사회로 나가기 위해 우리 어른들이 풀어야 할 최우선 과제이다.
교실에서 개성적인 자유인,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길러야 우리 사회가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가 된다. 학교에서 학습 노예와 잠재적 파시스트를 키우는 사회가 어찌 성숙한 사회가 되겠는가. 학생인권의 문제는 단순히 학생의 권리를 둘러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미래를 가름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를 바라는가, 퇴행적 권위주의 사회를 원하는가.
학생의 인권은 더욱 강화되어야 하고, 교사의 인권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학생과 교사가 서로 존중하는 성숙한 학교를 만들 수 있다. 교권은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이 동시에 확립될 때 비로소 세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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