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하원동 왕자묘, 칭기스칸 후손이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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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한 무덤에 묻힌 인물이 몽골 왕자인지, 탐라 왕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발굴이 추진된다.
26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하원동 탐라왕자묘(河源洞 耽羅王子墓)'에 대한 지표 투과 레이더(GPR) 탐사 결과 땅속에서 지장물의 존재가 확인됐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서귀포시 하원 탐라왕자묘는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아 면밀한 고증이 필요하다"며 "탐라사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인 만큼 차질 없이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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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물 발견돼 발굴조사
쿠빌라이 증손자설VS탐라 지배층설
26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하원동 탐라왕자묘(河源洞 耽羅王子墓)’에 대한 지표 투과 레이더(GPR) 탐사 결과 땅속에서 지장물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에 제주도는 정밀조사를 위한 예산 2000만원을 확보, 내년 2월부터 발굴 등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탐라왕자묘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일반적인 묘제 형태인 계단식 네모돌널무덤으로 이뤄진 묘지 3기를 일컫는다. 내부는 잘 다듬은 4~8단의 판석과 할석(깬돌)으로 축조됐는데, 각종 석물(비석·등잔대·문인석), 계단 시설, 축대 등이 출토된 것으로 미뤄 당대의 고위층 무덤으로 추정됐다.
탐라왕자묘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최초로 유물이 수습될 당시 백자병과 백자대접, 백자접시, 청동사발 등이 출토됐다. 하지만 불법 도굴 등 훼손 정도가 심해 어떤 왕자의 무덤인지는 현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먼저 원(元) 세조 쿠빌라이의 손자 양왕(梁王)의 아들인 백백태자의 경우 1382년 원명교체기에 중원에서 쫓겨나 제주로 유배됐다. 이후 백백태자는 제주 생활 22년 만에 사망했고, 그의 아들은 이보다 앞선 1392년, 그의 부인은 1444년에 죽었다.
반면 탐라왕자묘의 주인이 당시 탐라의 지배계층인 왕자라는 주장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 초기까지 탐라 왕자를 역임·계승한 ‘남평문씨 남제공파(南平文氏 南濟公派)’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서귀포시 하원 탐라왕자묘는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아 면밀한 고증이 필요하다”며 “탐라사를 밝히는 중요한 열쇠인 만큼 차질 없이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편 원나라는 항몽세력인 삼별초를 1273년(원종 14) 고려와 연합해 평정한 것을 계기로 제주를 직할령으로 삼았다. 이후 원나라는 제주를 남송과 일본 정벌을 위한 전초기지와 병참기지로 활용하는 한편 직접 목마장(牧馬場)을 마련해 원 제국의 14개 국립 목장 중 하나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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