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선거·전쟁·AI…내년 세계 경제는?
이맘때면 학생들은 수능 성적을 들고 진학할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느라, 새 학년을 준비하느라 제각기 긴장되고 설렘 가득한 연말을 보냅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올해와는 다른 새해가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을 기울여야겠죠?
우리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 변화입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한국의 수출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제품을 얼마나 잘 팔고, 원유 같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가정 경제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쟁 같은 극한적 충돌이 멀리 중동과 우크라이나가 아닌, 우리 코앞에서 벌어질 수도 있지요. 그런 갈등의 물밑에는 경제적 이해 충돌이 잠복해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새해에 변화할 세계를 전망할 때 가장 먼저 경제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연결돼 광속으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한 해를 내다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예측이 잘 맞지 않으니 ‘경제 예측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경제 예측은 나라살림은 물론, 기업과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가늠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초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4·5면에서 경제 예측이 왜 그리 어렵고, 내년 세계경제는 어떤 모습을 띨지 살펴보겠습니다.
"경제 전망은 점성술" 혹평 적지않아
수치보다 리스크 변수에 주목해야죠
경제 예측 또는 전망은 나라 살림살이와 기업 경영, 가계 살림의 기준점을 제공합니다. 이를 기초로 정부와 중앙은행은 정책을 만들고 가계는 소비, 기업은 투자 계획을 세웁니다. 경제의 바로미터는 가격입니다. 이 가격 변수가 어떻게 움직일지 안다면 가정 살림도, 개인 소비생활도 확 달라지겠죠.
“강하게 예측할수록 거짓말쟁이”
경제 예측에는 계량모형, 설문조사, 경제지표 등을 활용합니다. 계량모형은 경제성장률 등 한 해 경제를 내다보는 용도로 많이 씁니다. 일종의 고차원 함수입니다. 어떤 경제 변수의 값을 투입하면 알고자 하는 경제지표가 산출되도록 만들었죠. 예컨대 환율·금리·국제유가 등의 연간 예상치를 넣어 성장률을 계산해내는 식입니다.
모든 예측이 그렇듯, 경제 예측도 꼭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국제 경제기구들은 올해 미국 성장률이 1% 안팎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결과는 2%대의 경기회복 양상이 나타났지요. 국내 연구기관들도 중국 리오프닝(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크고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는 달랐습니다. 이러다 보니 경제 예측이 계속 도마에 오르고 ‘무용론’까지 제기됩니다. 책 <불확실성의 시대>를 쓴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경제 전망의 유일한 기능은 점성술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혹평하기도 했죠.
‘닥터 둠(Doctor Doom, 대표적 비관론자)’이라고도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상했다지만, 그는 2004년 이후 매년 경제위기와 침체를 경고해온 사람입니다. 일부에서 현자(賢者)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하지만 낯 뜨거운 면이 있습니다. 미국 월가를 대표하는 펀드매니저 중 한 사람인 피터 말루크는 “미래를 자신 있게 예측하는 경제학자일수록 바보(idiot)이거나 거짓말쟁이(liar)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AI도 맞히기 어려운 불확실성 시대
그러면 경제 예측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경제 예측은 가정에 가정을 더한 결과라는 점입니다. 세계 성장률, 교역 신장률, 국제유가 등의 흐름이 예상과 다르게 전개되면 나비효과까지는 아니어도 전망의 오차가 커지게 됩니다. 다음으로 예측 모형 자체의 한계입니다. 즉, 과거 경제의 규칙과 패턴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란 가정하에 모형을 만들다 보니 미래 일에는 잘 맞지 않는 겁니다. 현실에선 그런 규칙성이 언제든 변할 수 있죠. 미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상승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계의 초과저축과 높은 고정금리대출로 인해 금리의 민감도가 약해졌다는 분석이 많았고, 결과적으로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형을 정교하게 만들어도 정확성을 보강하기 어렵죠.
마지막으로 예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의 발생을 뜻하는 ‘블랙스완’, 위험을 간과해 벌어지는 ‘회색코뿔소’ 등 불확실성이 일상화되는 상황입니다. 코로나19 확산,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사건들은 경제 변수 자체의 추세를 바꾸고, 경제 변수 간 규칙성을 흐트러트립니다. 인공지능(AI)이 고도로 발달한다고 해도 신(神)이 아닌 이상 오차는 불가피합니다.
빠른 수정 전망이 최선책
경제 예측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경제 주체들의 판단에 중요 근거가 되기 때문에 계속 내놓는 거죠. 따라서 수치 자체를 맹종하거나 신뢰하기보다는 ‘가장 발생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정도로 간주해야 합니다. 즉, 경제 변수의 변화에 따른 확률적 결과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또 그런 전망치가 나오게 된 여러 가정과 논리적 근거를 먼저 봐야 합니다. 전망에서 주목하는 리스크와 변수에 신경 써야 한다는 겁니다. 예측 기관들도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마다 빠르게 수정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경제 주체들은 그때마다 왜, 어떻게 전망이 바뀌었는지 살펴봐야겠죠.
NIE 포인트
1. 경제 예측을 하는 방법론 3가지를 알아보자.
2. 미국에서 금리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진 이유를 좀 더 파악해보자.
3. 사람들의 기대가 경제 예측을 틀리게 만드는 사례를 찾아보자.
저성장 먹구름, 슈퍼 선거, 현실이 된 AI
우리 삶을 크게 바꿔놓을 한해가 될 거예요
내년 세계경제의 구체적인 전망을 살펴볼까요? 국가경제와 국제경제를 좌우하는 ‘거시경제 변수’,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변수’, 경제를 실제 움직이는 ‘신산업 변수’를 중심으로 가닥을 잡아봤습니다.
‘피벗’ 한다는데, 이번엔 경기둔화 우려
미국 경기를 둘러싼 세계경제의 향방은 올 한 해 내내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2022년 제로(0)금리 수준에서 연 4.50%까지 치솟았기 때문에 이젠 어느 정도 물가상승이 진정되고, 미 중앙은행(Fed)도 고금리 긴축정책을 완화할 것이란 낙관론이 연초에 생겨났었죠. 그런데 미국 내 소비와 고용시장의 강세가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국 경기가 계속 활황을 이어갈 것이라는 ‘노랜딩(No-Landing, 무착륙)’ 전망까지 나왔죠. 이런 상황이 지난 13일 미 Fed의 3회 연속 금리 동결과 내년 금리 인하 시사로 급반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부터 미국 물가상승률이 3%대로 내려온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계는 금리정책 전환을 농구에서 한쪽 발을 중심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피벗(pivot)’에 비유하며 환호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이번엔 세계경제 둔화 우려가 싹트고 있습니다. 강경한 긴축 기조를 유지하던 미 Fed가 피벗을 선언하자, ‘그 정도로 경기가 나빠진다는 거야’라며 반응하는 겁니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2.1%로 추정한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에는 1.5%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중국 경제가 정부 재정난 등으로 하강 속도가 빨라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IMF는 중국의 성장률이 올해 5.0%에서 내년엔 4.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취약성의 창’ 열리는 세계정치
이번엔 갈수록 높아지는 지정학적 위기의 파고입니다. 근래 40~5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많습니다. 유일한 패권국인 미국에 러시아·중국·북한·이란 등이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전쟁이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 때문이죠. 이로 인해 국제 원자재 공급난과 공급망 붕괴가 심화할 것이란 걱정이 많습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중 패권 갈등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이 위험하다며 이른바 ‘취약성의 창(window of vulnerability)’이 열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각국의 정치적 불안정성도 커질 조짐입니다. 내년은 미국 등 세계 70여 개국, 42억 명의 유권자가 투표하는 ‘슈퍼 선거의 해’입니다. 선거 결과가 주요국 통상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죠.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트럼프”라고 지적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년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 승리할 경우 미국중심주의, 보호무역정책 등이 더 노골화되고 세계경제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한국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우리나라의 수출이 올해보다 5.6% 증가할 것으로 봤습니다. 인공지능(AI) 산업 등에서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자동차가 견조한 수출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에서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변수와 교역 침체, 세계적 저성장이 본격화한다면 수출이 기대만큼 늘어나지 못할 겁니다. IMF는 한국의 성장률을 종전 2.4%에서 2.2%로 낮췄습니다.
기업·개인 운명 가를 AI 활용 경쟁
생성형 AI가 등장한 지 1년이 지나면서 기업은 물론, 정부와 개인도 AI의 활용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입니다. 기업이 경영활동 전반에 걸쳐 AI를 쓰고, 개인도 사무용 소프트웨어에서 AI를 만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인터넷 비즈니스를 선점한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를 비롯해 어떤 기업이 ‘일상이 된 AI 시대’를 이끌고 새로운 산업계의 리더가 될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물론 AI가 일자리를 과연 얼마나 줄일지, 선거에도 개입하는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NIE 포인트
1. 미국 기준금리 정책 전환이 왜 세계경제에 중요한지 알아보자.
2. 자유주의자 도널드 트럼프가 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지 생각해보자.
3. ‘현실이 된 AI’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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