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문 의사들, 의사들 문 보건의료노조…물고 물린 의료계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놓고 보건복지부와 의사들, 그리고 간호사 위주의 단체인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물고 물리는 꼬리잡기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26일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의 망언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22일 박민수 차관이 언론에서 "정부가 의사 수를 증원하는데 의사와 합의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정부 정책이다. 법에 합의하라고 돼 있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 데 대해 발끈한 것이다.
이 협의회는 "의료계는 정부 최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망언이 윤석열 정부의 입장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며 "백번 양보해서, 국가 정책을 시행하면서 관련 당사자와 모든 것을 합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최소한 합리적 근거를 통해 이해당사자와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꼭 필요한 절차"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정부가 OECD 통계 데이터를 의대 증원 필요성의 근거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협의회는 "정부는 선택적 OECD 데이터 외에 어떤 근거가 있는가? 의료계에서 제시하는 물음에 합리적 답변을 내놓은 건 전혀 없이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의 신조어)로 일관하는 비민주적이고 몰상식한 행위만 계속할 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협의회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증원책을 추진할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내팽개치는 국민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협의회를 비롯한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오는 27일 의대 증원책을 놓고 정부와 대화의 테이블에서 마주한다. 복지부와 의협 간의 23번째 공식 대화인 '23차 의료현안 협의체'를 이날 오후 열기로 해서다. 앞서 두 차례 진행한 협의체에서 양측은 '의대 증원' 안건에 대해 입장을 좁히지 못한 채 대화를 마무리했다. 간호사 위주의 단체인 보건의료노조는 이 협의체를 하루 앞둔 26일, 의협에 5가지 질문을 담은 공개 질의서를 발송하며 공식 회신을 기다린다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26일 '대한의사협회에 드리는 공개 질의서'란 제목과 함께 5가지 질문을 의협에 보내며 "12월 29일 오후 6시까지 성실하게 답변해 주기 바란다"고 명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200여 의료기관과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 8만4000여 명이 가입한 단체다. 간호사, 의료기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약사, 행정사무 연구직, 시설관리직, 영양사, 조리, 청소, 정신 보건전문요원, 기술 기능직 등 60여 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 64.2%가 간호사로 간호사가 가장 많으며, 간호조무사(5.5%), 임상병리사(5.2%), 방사선사(5.1%) 순으로 구성됐다.
보건의료노조가 의협에 던진 질문은 △ 의협은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지 △의사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면서 의사 수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율배반 아닌지△의사 수를 늘리는 게 정답이 아니라 필수의료과 공백을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지역의사제 도입과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는 이유는 뭔지 등이다. 또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은 의협과 합의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는 의협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지 △1000명 이상의 대폭적인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국책기관과 전문 연구자들의 통계와 연구 결과를 모조리 부정하는 이유는 뭔지 이들은 물었다.
그러면서 이 노조는 "의사 인력이 부족해 의사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환자들은 부실 진료와 안전 위협으로 극심한 고통과 피해에 노출돼 있다"며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건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붕괴 위기를 방치하는 것이자 환자와 국민들의 극심한 피해와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보건의료노조가 최근 101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의사 인력이 부족해 진료 대기시간이 30분 이상 길다'고 응답한 곳은 71곳(70.29%)이었고, '의사 인력이 부족해 환자 대면 진료 시간이 3분 이내로 짧다'고 응답한 곳은 65곳(64.35%)이었다. '의사 인력이 부족해 환자·보호자들이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다'는 응답은 73곳(72.27%)이었고, '의사 인력이 부족해 진료·치료·처방이 연기·취소·불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응답한 곳은 64곳(3.36%), '의사 인력이 부족해 실제 환자안전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곳도 37곳(36.63%)이나 됐다. 노조는 올해 223곳 공공의료기관의 정원(1만4341명)을 채우지 못하는 부족인원이 2427명이고, 의사 인력이 부족해 불법 의료에 내몰린 PA 인력(진료지원인력)도 2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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