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정신전력 교재, 반공주의 강조하며 군사독재·일본 문제 ‘외면’
군사정권 독재는 “일부 과오”로 축소 기술
한·일 역사·영토 문제 관련 표현은 사라져
종전선언 비판 등 전 정권 겨냥한 표현도
국방부가 26일 전면 개정한 정신전력교육 기본 교재를 공개하고 이달 말부터 전군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장병들의 대적관을 강조해온 국방부는 북한이 주적이라는 인식을 장병들에게 명확하게 심어주기 위한 교육 자료라고 설명했다. 교재는 5년마다 발간된다.
국방부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 반공주의적 관점을 교재에 투영하면서 정작 해당 인물의 과오나 국민이 겪은 부작용은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관련 언급에서 한·일 간 역사 문제 등은 모두 사라졌다. 여권이 전 정부를 비판하는 데 썼던 용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등 군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도 제기된다.
‘반공주의자’ 이승만 강조…독재·하야 언급은 없어
문재인 정부가 2018년 펴낸 교재보다 100쪽 가까이 늘어난 올해 교재는 기존 ‘안보관’ 영역을 ‘대적관’으로 변경해 관련 서술을 크게 늘렸다. 집필진으로는 대학교수 위주였던 직전 교재와 달리 현역 군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하게 언급된다. 문재인 정부가 5년 전 발간한 교재에서는 특정 인물에 대한 공적이 담기지 않았다.
교재는 “광복 후 귀국해 자유주의 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공산주의 정치세력과는 일절 타협을 거부했고” “한반도의 공산화를 저지했다” 등 이 전 대통령의 반공주의 행보를 강조했다. 광복 후 남한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사회적 혼란을 일으켰지만 “다행히 이러한 실정을 잘 알던 이승만을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됐다는 내용도 담겼다. 집권 후에는 6·25 전쟁을 계기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한·미 동맹의 토대를 놓았다고 기술했다. 독재와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 등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전후 고성장과 관련해서는 당시 정부의 “집념”, 미국의 원조를 강조했다. 국민이 겪어야 했던 군사 독재, 경제적 양극화 등 부작용은 “북한이 일으킨 6·25 전쟁과 계속되는 군사적 도발로 반공 의식이 강화되었고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오도 발생했다”는 표현으로 축약됐다.
종전선언 비판하며 문재인 정권 겨냥…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
이번 교재가 군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위반했다는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여권 인사들이 전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할 때 쓴 표현이 다수 등장한다. 헌법은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규정한다.
교재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소제목 아래 “평화를 구걸하거나 말로 하는 평화, 즉 가짜 평화에 기댔던 나라는 역사에서 사라졌다”면서 “북베트남의 위장 평화 협정에 넘어가 미군 철수 후 2년 만에 패망하고 사라진 남베트남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베트남 사례를 들었지만 문재인 정부를 겨냥하면서 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홍보하는 뉘앙스로 읽히는 대목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에 대한 바른 이해” 단락에서는 “북한의 평화를 가장한 종전선언 주장에 대해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도록 한·미 동맹의 압도적이고 강력한 억제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등 윤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사진이 7개 실렸다. 5년 전 교재는 줄글 위주에 일부 도식이 삽입됐을 뿐 대통령이 등장하는 사진은 없다.
일본과의 관계를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양국 간 역사·영토 문제에 대한 언급이 모두 지워졌다. “신뢰 회복을 토대로 미래 협력과 동반자적 관계 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양국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다. 5년 전 교재에서는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가 한·일관계 개선의 과제로 남아 있지만 안보협력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이원화된 접근을 전개해야 한다”고 서술했다.
교재는 또 “국가안보에 있어 외부의 적 못지않게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내부의 위협 세력이다. 대한민국 내부의 위협 세력 실체를 바로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적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산전체주의 세력을 맹종하는 반국가세력” 언급과 동일한 맥락이다. 국방부는 그러나 내부의 위협 세력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자칫 실체도 밝히지 않으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 등을 친북 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국방부 “대적관 확립하는 교재, 역사 서적 아니다”
국방부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미화 논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논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과의 현안 기술이 빠진 것에 대해 “이 교재는 장병들에게 대적관을 확립해 정신적 대비태세를 갖추기 위한 것이지, 어떤 역사적 사실과 다양한 논점을 다루는 역사 서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장병들 교육자료가 바뀌는 것은 군의 정치화나 다름없다’는 지적에는 “이 교재는 사실과 역사적인 내용, 객관적인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정치적 진영 논리에서 해석하시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전 대변인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내부세력’ 표현에 대해서는 “우리 국가 발전을 위해 건전한 조언을 하는 진보 진영을 위협 세력으로 지적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내고 “북한은 대남적화전략에 따라 1960년대부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지하당을 구축해 왔고 2000년 이후에도 일심회 사건·왕재산 간첩단 사건이 있었다. 2014년 국회의원의 내란선동죄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정당이 해산된 사례는 법이 규정한 명백한 사실”이라며 “우리 장병들에게 이러한 세력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것은 장병 정신전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이를 부정하고 방관하는 것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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