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서평연대 서른한 번째[출판 숏평]

기자 2023. 12. 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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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마법(프란체스카 스코티 지음 / 클라우디아 팔마루치 그림 / 책빛)

어둠의 마법



줄리아와 피에트로는 자신들만의 놀이를 하기로 한다. 이름하여 ‘어둠의 게임’. 집안 여기저기서 다양한 물건들을 모아 방 안으로 들어간다. 이후 방의 모든 빛을 차단해 칠흑 같은 어둠을 만든다. 그러곤 가져온 물건들을 모두 방 안에 흩어 놓는다. 곧 게임이 시작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더듬더듬 물건들을 손으로 만지며 상상을 펼치는 것. 캄캄한 어둠 속, 두 아이의 손끝에서 토끼 인형은 털북숭이 괴물이 되기도 하고, 포크는 보물상자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게임이 이어지며 줄리아와 피에트로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마주 본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민다. 이 장면이 압권이다.

오늘날 세계 아동문학계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그림 작가 중 한 사람인 클라우디아 팔마루치(Claudia Palmarucci)는 연필과 오일페인팅을 사용한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그림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상의 세계를 보여 준다. 줄리아와 피에트로의 손은 상상의 세계로 이어지는 마법의 통로가 된다. 놀랍게도 두 아이의 손이 서로의 얼굴 속으로 스며들어 내면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두 아이는 이제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돼 있던 서로의 꿈을 본다. 피에트로가 날고 싶은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줄리아가 다이빙하고 싶은 푸른 바다. 어둠의 게임이 끝나 현실에 돌아와서도 둘은 서로를 응원할 것이다. 무엇보다 책 속에 등장한 마지막 문장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꿈은 이루어질 거예요. 미래는 언제나 까만 어둠 속에서 빛나니까요.”(김성신 / 출판평론가, 9N비평연대)

김성신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기선·랑희·슬기·이호연·타리·희정 지음 / 치명타 그림 / 한겨레출판)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수많은 투쟁 현장이 있었고, 있다. 어떤 곳에는 마음을 두고 표현하기도, 어떤 곳에는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하기도 한다. 마음을 두었다가도 금세 잊어버리고 안타까움과 부채감을 마음 한쪽에 가졌다. 죄스러움이 클수록 오히려 다가가기 어려웠다. 마음만큼 연대하지 못하는 현장이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자 오히려 무감각해졌다. ‘그때 거기는 잘 됐을까?’ 적당히 죄의식을 가졌고 적당히 무관심한 사람들끼리 잠깐 기도하듯이 입에 올렸다 내려 놓는다.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은 그 이후를 말하고 있어서 중요한 책이다. 2013년,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을 주장하며 소송을 냈다. 해고와 생계, 건강의 위기를 불사한 투쟁 끝에 직접 고용을 얻어냈지만 원래 하던 수납 업무가 아닌 졸음 쉼터 청소, 도로 주변 쓰레기 줍기 등 허드렛일이 주어졌다. 시험을 보고 ‘공정’하게 입사한 사무직원들로부터 멸시 어린 시선을 받는다. 이들은 이렇게 힘들 줄 몰라서 투쟁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다시 하라면 못 하겠다고 말한다.

‘후회한다’라고는 말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한다. 이겼거나 졌거나로 납작하게 기억되지 않도록, 의로움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무력감에 의롭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투쟁의 뒷이야기를 말하고 듣고 전하는 일이 오늘날 무엇보다 긴요하다. (서경 / 출판편집자, 9N비평연대)

서경



■인듀어런스(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 김세중 옮김 / 뜨인돌)

인듀어런스



새로운 다짐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설렘 가득한 시기, 한 해가 가고 어느새 2024년이 눈앞에 왔다. 여기, 탐험가 섀클턴에게도 가슴 부푸는 소망이 있다. 남극을 정복하는 것이다.

1914년 8월, 섀클턴을 포함한 27명의 대원은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남극 정복에 나선다. 그러나 10개월 만에 배는 얼음에 부딪혀 산산조각났다. 그렇게 2년, 대원들은 문명 없는 남극 대륙 위 표류자로 살며 맑은 햇빛와 사람들이 있는 육지만을 바랐지만 보이는 건 희뿌연 안개와 폭풍우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희망을 끝끝내 놓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 목숨을 걸고 전념하며 항해했고, 마침내 먹구름 사이로 비추는 한 줄기 해와 물에 흠뻑 젖은 까만 돌섬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끈질긴 희망과 전념의 이야기. 언뜻 보기엔 예정된 감동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대원들이 얻은 (살아 있음, 살아감을 포함한)삶의 가치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숭고함을 안겨준다. 남극 빙하에 버려진 그들처럼 뼈아프게 실패할 일 없는 첨단 문명의 힐링시대다. 끝없는 좌절 속에서도 온 힘을 다했던 대원들의 이야기는 연말연시, 지나간 다짐과 새로운 목표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에게 도전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희망을 가지고 전념하는 과정, 즉 도전은 성공이 아닌 성장을 보장해 준다는 점을 말이다. (공혜리 / 9N비평연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홍보위원)

공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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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엄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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