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과 회색코뿔소[이종섭의 베이징 리포트]

이종섭 기자 2023. 12. 26. 13:4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국가안전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경제 안보 장벽을 단호히 세우겠다는 내용의 공지가 올라와 있다. 중국 국가안전부 위챗 계정 캡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9년 1월 중앙과 지방의 주요 지도부를 모아놓고 “블랙스완을 고도로 경계하고, 회색코뿔소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전년도 경제성장률이 6.6%까지 떨어져 28년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적표를 받아든 날이었다. 블랙스완은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가져오는 위험을 가리킨다. 회색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을 의미한다. 시 주석은 2021년 1월에도 “각종 위험과 도전을 잘 예측하고, 블랙스완과 회색코뿔소 사건에 잘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발생으로 전년도 경제성장률(2.2%)이 1976년 이후 40여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뒤 나온 발언이었다.

올 한 해 중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뉴스는 단연 경제 문제였다. 연초 3년만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 쏟아졌던 중국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암울한 전망으로 바뀌어 갔다. 내수와 수출은 부진하고 부동산 시장 침체로 관련 업체들이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직면했으며, 청년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부에서는 중국 경제를 놓고 ‘위기론’과 ‘붕괴론’이 쏟아졌다. 정부가 경기 부양에 나서면서 경제 지표가 다소 개선되기는 했지만 경제 회복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올해는 중국 내부에서 블랙스완이나 회색코뿔소에 대한 경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달 초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하자 중국 당국은 “중국의 거시경제는 올해 지속적으로 회복세를 보였고, 긍정적 추세를 유지하며 반등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중국이 경제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올해 성장률만 놓고 보면 비교적 선방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은 올해 초 목표했던 5%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내재된 리스크다. 불안정한 대외 환경과 지정학적 리스크, 부동산 침체와 지방 부채 등 대내외적 위험 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내년 중국 경제성장률은 더욱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중국은 낙관적 전망으로 현실을 포장한다. 중국 지도부는 내년 경제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의 발전이 직면한 유리한 조건은 불리한 요인보다 강하고 경제회복과 장기적·긍정적 전망의 근본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며 “자신감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 선전과 여론 지도를 강화하고 중국 경제 ‘광명론(光明論)’을 노래하라”고 주문했다.

지도부 방침이 나온 지 3일만에 중국 방첩기관인 국가안전부는 경제에 대한 부정적 ‘서사’를 일례로 들며 “경제안보분야에서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범죄를 법에 따라 단호히 단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 상황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최근에는 중국 자본시장의 병폐를 지적하며 주식 투자 자제를 권고한 금융전문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폐쇄되는 일도 있었다. 중국 입장에서는 투자·소비 심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기론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막연한 광명론을 노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제 상황에 대한 건전한 토론과 비판마저 수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블랙스완을 경계하고 회색코뿔소를 예방할 수 있겠는가. 광명론을 노래할만큼 자신이 있다면 결과로 보여주면 될 일이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