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그만 보고 나와"…변기 한참 앉아있다간 '이 병' 걸린다
기온이 떨어지면 항문 건강이 위협받기 쉽다. 모세혈관이 수축하고 혈액순환이 방해받아 '혈관 덩어리'인 항문 건강도 나빠지는 것. 연말연시 잦은 모임과 과도한 음주, 자극적인 음식의 섭취도 항문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실제 치질 환자는 매년 12~1월이 가장 많다. 사회생활이 활발한 30~50대 환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의정부을지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권윤혜 교수는 "치질이 위생상의 문제라는 건 잘못된 인식"이라며 "병에 대한 오해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치료를 미뤘다간 결국 수술 외에 마땅한 치료법이 없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치질은 항문 출혈과 함께 혈관 덩어리가 밀려 나오는 치핵,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주변 농양이 곪았다가 터지는 치루를 통칭한다. 치질 중에서도 70~80%를 차지할 만큼 가장 흔하고, 겨울이면 증상이 심해지는 것이 '치핵'이다. 권 교수는 "찬 바람이 불면 모세혈관이 수축하고 혈액 순환이 방해받아 치핵 증상이 두드러진다"며 "찬 곳에 오래 앉아 있거나 변비, 스마트폰 사용으로 화장실에 오래 앉아 힘을 주는 경우 치핵 위험이 급증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치핵은 위치에 따라 항문의 치상선(직장의 점막과 항문 피부가 만나는 곳) 안쪽에 발생하는 내치핵(암치질)과 치상선 밖의 외치핵(수치질)으로 구분한다. 전자가 20%, 후자가 10%, 이 둘이 함께 나타나는 혼합치핵이 70%를 차지한다. 증상에 따라 1~4기로 나뉘는데 단계별로 치료법은 차이가 있다. 권 교수는 "치핵 1기와 2기는 좌욕이나 의약품 등 보존적 치료로 호전될 수 있지만 3기 이상의 경우는 상태에 따라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핵수술은 백내장, 일반 척추 수술에 이어 한국이 가장 많이 하는 수술 3위로 조기 대처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치열은 딱딱한 변이나 심한 설사로 배변 시 항문이 찢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뒤처리한 휴지에 피가 묻고 배변 시 찌르는 듯한 통증을 경험하면 의심해야 한다. 치열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많이 나타나는데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근육 약화, 변비, 스트레스, 무리한 다이어트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급성 치열은 배변 시간을 조절하고 좌욕을 자주 하는 등 생활 습관 개선으로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 만성 치열은 반복된 급성 치열이나 변비로 항문 상처가 지속되는 상태다. 궤양, 항문 주위 농양, 치루 등의 합병증을 부를 수 있어 심한 경우 역시 내괄약근 절개술이나 항문 성형술 등의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치루는 항문 내부와 항문 밖 피부에 비정상적인 통로(관)가 만들어진 병이다. 치상선 부근의 치핵과 만성 설사, 염증성 장 질환, 항문 주위 농양 등으로 곪아 발생하는 데 통증·붓기·출혈·고름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과로나 과음, 심한 설사를 한 후에 항문이 아프거나 고름이 나오고 알 수 없는 고열에 시달리면 의심해볼 수 있다. 오래 두면 항문 주위에 개미굴처럼 복잡한 길이 뚫려 치료가 어려워지고, 드물지만 치루암으로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기에 절개술 등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겨울철 치질을 예방하려면 첫째, 식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과일·채소·해조류 등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가까이하면 대변의 양이 늘어나 힘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돼 치질은 물론 설사·변비도 예방할 수 있다. 육식 위주의 식습관과 지나친 음주는 항문 건강에 '독'이 될 수 있다. 알코올이 항문 혈관을 붓게 하는 데다 기름기가 많은 삼겹살, 통닭 같은 육류는 대장 운동을 방해해 화장실에 앉는 시간을 늘려 불필요한 항문 자극을 유발해서다.
둘째, 배변 시간은 5분 이내로 제한하는 게 좋다. 치질의 가장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좌변기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이다. 배변 시간이 길어지면 항문 쪽 혈관의 압력이 올라가 울혈이 발생한다. 변기에 앉은 지 10분이 지났는데 배변하지 못하면 다음에 다시 시도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변기에 앉아서는 발밑에 목욕탕 의자와 같은 발판을 두거나 까치발을 드는 게 원활한 배변에 도움 된다. 이때는 상체를 약간 숙이는 게 더 효과적이다.
마지막은 좌욕이다. 하루 2회 최소 3분 이상 매일 좌욕하면 항문 주변 울혈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치질을 막는 데 효과적이다. 권윤혜 교수는 "치질은 망설임이 키우는 병"이라며 "부끄럽다고 주저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진료를 받는 적극적인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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