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후기 ‘부안 내소사 동종’ 국보 지정

김옥조 2023. 12. 2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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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전통 계승..고려 특징도 담아
신라시대 금제 허리띠 2점 보물 지정
고려청자·조선 문집·불상 3건도 보물
역사·학술 가치 높은 국가지정문화유산
▲ 부안 내소사 동종 사진 : 연합뉴스 
문화재청은 고려 후기 동종을 대표하는 '부안 내소사 동종'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했습니다.

신라시대 고분문화를 보여주는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와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를 비롯해 고려시대 청자 및 조선시대 문집과 불상 등 5건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했습니다.

◇ '부안 내소사 동종' 국보 지정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부안 내소사 동종'은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이자 기준작입니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鑄鍾記)를 통해 도인(道人) 허백(虛白)과 종익(宗益)의 주관 아래 장인 한중서가 700근의 무게로 1222년 제작했음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청림사에 봉안되었다가 1850년(철종 1) 내소사로 옮겨졌는데, 이 내용을 적은 이안기(移安記)도 몸체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부안 내소사 동종은 공중을 비행하는 듯 연출된 역동적인 용뉴(용 모양의 걸이), 종의 어깨 부분을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올림 연꽃, 앙련(仰蓮)) 문양으로 입체적으로 장식했습니다.

몸체에 천인상(天人像) 대신 삼존상을 부조로 배치한 점, 섬세한 꽃잎으로 표현된 4개의 당좌(撞座), 균형 잡힌 비례와 아름다운 곡률을 가진 몸체 등 뛰어난 장식성과 조형성을 지녀 고려 후기 동종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장인 한중서의 숙련된 기술력과 예술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천인상’은 부처가 설법할 때 부처의 주변에서 부처의 공덕을 찬탄하는 존재이며, ‘당좌’는 종을 치는 나무 막대(당목)가 닿는 부분입니다.

▲ 부안 내소사 동종 세부 부분 사진 : 연합뉴스 

이 동종을 제작한 한중서는 13세기 전반부터 중엽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민간 기술자인 사장(私匠)에서 시작해 대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관청 소속의 관장(官匠)이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38년간 고령사 청동북(1213년), 복천사 청동북(1238년), 신룡사명 소종(1238년), 옥천사 청동북(1252년) 등 여러 작품을 남긴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처럼 고려시대 이전 동일 작가가 여러 점의 다양한 작품을 남기고 있는 사례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고 그중 내소사 동종이 그의 대표작품입니다.

이 동종은 양식, 의장, 주조 등에서 한국범종사와 제작 기술과 기법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주종기와 이안기 등을 통해 봉안처, 발원자, 제작 장인 등 모든 내력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뛰어납니다.

◇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등 보물 지정

▲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사진 : 연합뉴스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신라시대 고분인 금령총(金鈴塚)을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입니다.

금령총은 무덤 내부에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槨)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며, 발굴 당시 금관(보물),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국보), 금령 등 의미 있는 유물들이 대거 출토됐습니다.

허리띠는 목관 안에서 매장자 허리에 착용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원래 가죽이나 천과 결합된 허리띠였으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금제 장식만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띠고리, 띠꾸미개, 띠끝꾸미개, 드리개로 구성되는데, 드리개의 경우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드리개보다 길이가 짧은 것으로 보아 고분 주인이 미성년임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금실이 감긴 연필형(원뿔형) 드리개, 곡옥의 모자 부분에 난집을 두르고 유리를 채워 넣어 장식하는 방법 등은 다른 허리띠에서 확인되지 않는 독특한 사례로 허리띠의 기원과 구성을 고찰할 수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높습니다.

‘곡옥’은 옥을 반달 모양으로 다듬어 장식으로 쓰던 구슬, 곡옥 형태의 장식은 옥 외에도 수정, 유리, 금 등 귀중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제작합니다.

‘난집’은 장식에 테두리를 만들어 보석 등을 물리는 방법입니다.

▲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 사진 : 연합뉴스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신라시대 고분인 서봉총(瑞鳳塚)을 일제강점기인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입니다.

쌍무덤(瓢形墳)의 북분에 해당하는 서봉총 역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며, 발굴 당시 금관(보물), 금제 귀걸이, ‘연수원년신묘(延壽元年辛卯)’ 기록이 있는 은제 합 등 유물들이 많이 출토됐습니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에는 신라 금제 허리띠의 전개과정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제 허리띠 이후 띠꾸미개의 중심 문양은 좌우 대칭으로 표현된 세 잎 무늬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는 중심 문양이 뾰족한 형태로, 금관총 출토 금제 허리띠(1962년 국보 지정)의 띠꾸미개와 더불어 가장 장식이 화려합니다.

또한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의 드리개 장식에는 유리나 옥 등의 재질이 혼용되어 있는데 반해 드리개 장식 대부분이 금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 중 드리개 길이가 가장 길다는 점에서 예술적 가치를 지닙니다.

이러한 점에서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출토지가 명확하며 띠꾸미개 내부 문양, 드리개 장식의 기법 등으로 볼 때 신라 금제 허리띠 중 가장 먼저 제작된 황남대총 남분 허리띠와 가장 마지막으로 제작된 금령총 허리띠 사이에 위치해 신라 금제 허리띠 제작기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의미가 높습니다.

▲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 사진 : 연합뉴스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靑磁 陰刻鸚鵡文 淨甁)’은 12세기 이후에 청자로 제작된 정병입니다.

볼록한 배 모양의 몸체 옆에 물을 담는 주구(注口)가 있으며 몸체 위로는 가늘고 긴 형태의 물을 따르는 첨대(尖臺)가 있습니다.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水甁)으로 불교에서 사용된 기물, 수행하는 승려가 지니는 물건 중 하나였으며, 부처 앞에 깨끗한 물을 담아 바치는 불교 공양구입니다.

보수된 부분 없이 보존 상태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유색, 유면 등의 상태도 좋으며, 현존하는 다른 정병들과 비교해 볼 때 첨대가 짧지만 양감이 풍만하다는 차이점이 주목되므로, 향후 고려청자 정병 변천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학술적 자료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몸체 세 곳에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앵무새가 음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고려청자에서 앵무새 문양은 12세기 이후 주로 발, 접시류에 사용되었기에 이처럼 정병에 표현된 것은 매우 희소한 사례입니다.

아울러 본래의 주구 뚜껑이 남아 있는 무척 드문 사례로 자료적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 복재선생집 사진 : 연합뉴스 

△‘복재선생집(復齋先生集)’은 조선 개국공신인 복재(復齋) 정총(鄭摠, 1358~1397)의 유고 시문집입니다.

황보량(皇甫良)이 지은 발문(跋文)에 의하면 1446년(세종 28) 그의 둘째 아들 정효충(鄭孝忠)이 수집·편차(編次)했습니다.

손자인 정옥경(鄭沃卿)이 편집하여 강원도 관찰사(觀察使) 이선제(李先齊) 및 도사(都事) 정호연(鄭浩然)에게 간행을 부탁했고, 수양양도호부사(守襄陽都護府使) 황보량의 감독으로 목판을 완성했습니다.

이때 조성한 목판으로 인쇄하여 펴낸 초간본을 이번에 지정했습니다.

‘발문’은 책의 전체 내용, 후기나 감상 등이 담긴 것으로 주로 책의 뒷부분에 수록됩니다.

이 책은 2권 1책으로, 상권에는 172수(首)의 시(詩)가 수록되어 있으며, 하권에는 45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왕명을 받아 정도전(鄭道傳, 1342~1398) 등과 함께 수찬 한 ‘고려사(高麗史)’의 서(序),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공로를 치하하는 ‘교문하찬성사정몽주서(敎門下贊成事鄭夢周書)’와 같은 교서(敎書) 등이 실려 있습니다.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安東 仙刹寺 木造釋迦如來坐像 및 腹藏遺物)’은 수조각승 현진(玄眞)을 비롯해 응원(應元), 수연(守衍), 성인(性仁), 인균(印均) 등 당대 최고의 기량을 가진 조각승들이 대거 참여하여 1622년(광해군 14) 조성한 불상과 복장유물입니다.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광해군의 정비(正妃)인 ‘광해군 부인 유씨(장열왕비章烈王妃, 1576∼1623)’가 발원하여 왕실의 비빈(妃嬪)이 출가하던 자수사·인수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한 11존의 불상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은 별도로 마련된 왕실의 원당(願堂)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왕실 원당에 봉안된 원불의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원당’은 죽은 사람의 위패 등을 모시고 죽은 사람의 명복을 기원하던 법당입니다.

독존의 석가여래로서, 머리가 크고 무릎이 좁으며 뺨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양감이 있어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을 줍니다.

동시에 다부진 체구, 진중함이 드러나는 이목구비, 왼쪽 어깨와 하반신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조각승 현진의 양식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불상의 복장에서 조성발원문과 함께 ‘병자생왕비유씨명의(丙子生王妃柳氏命衣)’라는 묵서가 적힌 광해군 부인 유씨 개인의 저고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왕비의 개인적인 발원으로 이 불상이 제작되었음을 보여주고 동시에 17세기 조선 왕실 복식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한국복식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로 지정되는 6건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행정의 자세로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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