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을 보고나면 궁금해지는 것들… 김한민 감독의 대답은 [엄형준의 씬세계]

엄형준 2023. 12. 26. 12: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의 죽음을…’ 이순신의 유언 안 쓰는 방안 고민
“영화는 장군이 왜 끝까지 싸웠는지에 대한 대답”
방씨 부인 등장은 가족사 짧게라도 담으려는 의도
개봉 시기 감독 뜻 반영…노량해전 12월16일 발생
“처음에는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를 빼려고 생각했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를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 하면 떠오르는 이 유명한 대사이자 유언의 진위를 훼손하지 않고 적절하게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 아예 안 쓰는 방안에까지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노량의 개봉을 앞둔 19일 김 감독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나 제작 뒷얘기와 소회를 들어봤다. 영화를 보고 나면 궁금해질 만한 요소들에 대한 감독의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뭔가 욕을 먹지 않고 잘 피해 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오히려 더 참신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결국은 그걸 피해갈 수는 없겠더라고요. 왜냐하면 그걸 피해 가면 이순신 장군의 진정성이 어디서 드러날 것이냐는 딜레마에 빠지는 거죠.”

김 감독은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10년에 걸쳐 이순신 3부작을 완성했는데, 그의 고민이 깊었던 것처럼 ‘노량’의 이순신이 세 영화 중 가장 속을 알기 어려운 인물로 그려진다.

김한민 감독은 ‘노량: 죽음의 바다’를 통해 임진왜란의 마지막까지 처절한 싸움을 벌인 이순신 장군의 심리를 파고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명량’의 이순신은 용장, ‘한산’의 이순신은 지장, 그리고 ‘노량’의 이순신은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명량에서는 수세의 전투를 역전시켜야 했고 사람들의 극한의 두려움을 용기로 전환하는 ‘매우 용맹스러운 어떤 한 장수의 기개, 아우라가 필요했다’. 그런 지점에서 이제 최민식이라는 아우라를 가진 배우를 기용한 건 적절했다고 생각하고요. 한산에서는 ‘지략, 치밀한 전략을 통해 뭔가를 준비해가는 그런 이순신을 표현하는데 젊은 박해일의 차갑고 냉철한 이미지가 매우 필요했다’. 그리고 노량에서는 전쟁의 종결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조금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었던 현장으로서의 어떤 문무를 겸비한 그런 모습이 저는 김윤석이라고 봤어요.”

이 영화는 ‘왜 그토록 마지막까지 목숨을 바쳐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에 이순신 장군이 답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 화두에 대해 결국은 ‘완전한 종결’, ‘완전한 항복’에 장군의 뜻이 가 있지 않았냐는 게 제 결론입니다. 이 결론이 이순신 장군에게 누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런 것이라면 흥행을 통한 속편의 확장이 아니라 분명히 이 작품 자체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전제하에 치열했던 100분의 해전에 대한 설계가 가능했다고 봅니다.”

영화는 전반부 조선과 명, 일본이 처한 상황과 각 군의 분위기가 그려지고, 이어 분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100분에 걸친 해전 신으로 연결된다.

전반부 지상 장면에선 이순신 장군의 아내인 ‘방씨 부인’이 잠시 등장한다. 촬영에선 해전에 나서기 전 병사들에게 밥을 해주는 장면도 있었는데, 편집 중 빠졌다. 너무 짧은 등장에 그 의도가 궁금해진다.

“(너무 짧아서 아예 빼라는) 나를 아끼는 관계자들과 스태프들의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장면을) 고집했는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어요. 이순신의 가족사가 노량에서 한번 꼭 나왔으면 좋겠다. 방씨 부인은 아들(이순신의 삼남) 이면과 겹쳐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더라고 꼭 나오게 하고 싶었어요.”

지상에서의 장면 뒤 시작되는 길고 거대한 스케일의 ‘노량’ 해전은 ‘명량’ 촬영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한다.

“일단 밤의 해전은 구현할 수가 없었고, 그런 수많은 함대를 구현하기도 힘들었을 거예요. 명량 때는 이순신 장군이 한 척의 배로 한동안 열심히 싸우셨고, 바다에서 촬영해 얻어진 장면에 CG를 덧입혀 구현하는 게 컸죠. 지금처럼 완벽하게 사전 시각화하고 이에 맞춰 근경, 중경, 원경을 다 따로 찍고 그것들을 합성해 하나의 컷으로 만드는 그런 작업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전투 장면이 영화의 백미이자 중심이다 보니 촬영만큼이나 후반 작업에도 긴 시간과 공이 들어갔다.

“(후반 작업은) CG(컴퓨터 그래픽)가 가장 크게 보완됐어요. 25개 업체 800여명이 참여를 했으니까 웬만한 업체는 다 참여했다고 봐야죠. 근데 마지막 복병은 사운드 설계였어요. 사운드가 어떠냐에 따라서 완전히 해석도 달라지고 몰입도도 달라지고 하니까. 특히 롱테이크 부분에서 마지막까지 밸런스를 못 찾아서 힘들었는데, 너무 비트 있고 박진감 있게 명량이나 한산처럼 가버리면 과도하고 몰입이 안 되고, 그렇다고 감상적인 선형적 음악으로 가버리면 너무 신파가 되고, 이런 밸런스를 찾는 게 매우 힘들었습니다.”

노량의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은 이순신 장군과 김 감독의 고뇌가 동시에 녹아 있는 주목할 지점이다. 장면의 분위기가 바뀌며 음악의 흐름도 바뀌고 이순신 장군은 과거와 마주한다.

“남해에서 태양이 뜨는 걸 보면 굉장히 황홀해요. 제가 ‘극락도 살인 사건’이란 영화의 마지막 촬영을 남해에서 했는데 그때 밤을 꼴딱 새우고 촬영이 끝나고 (바다 위에서) 태양이 뜨는 그 장관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똑같은 태양을 당시 이순신 장군이 그 치열한 전쟁의 마지막에 봤을 거고, 그 찬란한 태양과 함께 처참한 전장의 상황이 엄청나게 환히 이제 들여다보였을 거예요. 그때 한 인간이 그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감히 범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어떤 체험을 하셨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영화는 현재 ‘천만 영화’ 고지를 밟은 ‘서울의 봄’과 치열한 흥행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개봉 시기에 대한 고민은 없었을까.

김 감독은 “배급사가 제 입장을 많이 배려해 줬다”면서 “노량해전이 음력 11월19일이고 양력으로 12월16일이라 그쯤인 12월20일이 개봉 시기가 된 거 같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영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물인 ‘7년 전쟁’을 준비 중이다. 그는 “매우 구체적으로 진전이 되고 있다”면서 배우 캐스팅도 많이 이뤄졌고, 8부작으로 구성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이순신 3부작을 하다 보니 임진왜란 7년사를 안 들여다볼 수가 없잖아요. 7년간 정치 외교가 굉장히 기민하게 돌아갔고 재미가 있어요. 오성과 한음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죠.)”

영화의 마지막 등장하는 ‘쿠키 영상’(짤막하게 보여주는 예고나 후일담)은 그의 후속작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