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등판이 이재명에게 던진 과제 [김지현의 정치언락]

김지현 기자 2023. 12. 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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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7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75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참석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제 국회에서 정면 승부를 벌이게 됐습니다. “더 이상 간 보거나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전격 수락한 한 전 장관은 26일 여의도 무대에 공식 등판할 예정이죠. 국민의힘은 당 외부에서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인사가 수혈된 점에 바짝 긴장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국민의힘과 총선에서 싸워야 하는 민주당은 오죽하겠습니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을 위해 걸어가고 있다. 지나가는 이 대표 옆으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앉아있는 모습. 이날 투표 결과는 부결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누구보다 갑갑한 사람은 이재명 대표일 겁니다. 원래 잘 모르는 상대와 싸울 때가 가장 어려운 법이죠. 그동안 이 대표는 한 전 장관과 ‘피의자 대 검사’로 대립했을 뿐, 동료 정치인으로 맞붙은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한 전 장관은 정치 경험이 없는 말 그대로 ‘쌩’ 신인입니다. 여의도 정치판의 오랜 문법을 따를 생각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한 전 장관은 지난달 대전을 찾은 자리에서 “여의도에서 300명이 사용하는 고유의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사투리’다. 저는 5000만 국민의 화법을 쓰겠다”고 말 한 바 있습니다.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겁니다.

이미 민주당 내에선 “그래도 다선 의원들끼리는 여야 할 것 없이 공유했던 시간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으르렁대고 싸워도 막판에 가면 대화나 협상이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한 전 장관은 다르다. 국무위원 시절부터 사사건건 야당 의원들과 갈등을 빚어왔던 탓에 함께 맞춰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의원도 한 장관의 예측 불가능성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죠. 정 의원은 최근 통화에서 “한동훈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민주당은 ‘한동훈이 김건희 특검 안 받는다’라고 다들 자신만만해하는데 만에 하나 받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대한 대비가 있느냐는 말이다. 특검 외에도 한동훈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땡(한동훈 나오면 땡큐)’가 아니라, 긴장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예측 불가능성에 있어선 이 대표 본인도 그동안 만만치 않은 길을 걸어왔죠.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더니, 실제 날아 온 구속영장 앞에선 갑자기 단식하는가 하면, 동료 의원들에게 부결을 호소하는 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대선 후보 때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는 위성정당은 금지하겠다”던 약속도 최근 행보를 보면 어느덧 접은 듯하고요. 한 원로 정치인은 “그렇게 말 바꾸는 건 정치가 아니다. 벼랑 끝에 몰리면 원래 손을 놓는 것이 정치”라고 지적하기도 하더군요. ‘0.5선’ 출신 당 대표로서, 일반 여의도 상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이재명식 정치’를 계속해왔던 장본인이기 때문에 상대의 예측 불가능성이 더 두렵고 부담이 될 것 같네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2월 2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 박수를 받으며 법무부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이 대표에게 무엇보다 가장 큰 부담은 한동훈 비대위가 들고나올 ‘쇄신’ 카드일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정치권에선 ‘한동훈 비대위’에 대한 기대가 크진 않습니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윤석열 아바타’, ‘김정은 딸 김주애를 내세우는 꼴’이라는 반발이 나올 정도로 한 전 장관의 ‘리틀 윤석열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죠. 민주당 내에서 “한동훈으로는 중도로의 외연 확장 가능성이 없다”고 안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가 없기 때문에 한동훈 비대위는 ‘밑져야 본전’입니다. 조금만 잘해도 반응이 올 거라는 거죠. 그렇게 되면 이재명을 향한 당 안팎의 쇄신 압박은 더 거세질 겁니다. 이미 한동훈 등판을 앞두고 당내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죠. 그동안 당내 ‘통합’을 강조하던 김부겸, 정세균 전 총리가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의 강도를 올리고 있는 것이 그 신호탄일 겁니다. 이 대표와 최근 오찬 회동을 한 김부겸 전 총리는 이 대표에게 ‘병립형 선거제로의 퇴행은 안 된다’는 점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이 대표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에 유감스러워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기에 더해 28일 정세균 전 총리도 이 대표를 만나 선거제 퇴행 우려와 최근 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잡음에 대한 우려를 이전보다 센 톤으로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전 장관이 새 얼굴들을 잔뜩 포함한 비대위를 출범하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간다면, 이 대표와 친명 체제에 대한 쇄신 요구는 더 거세질 수밖에 없겠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당 대표 취임 1주년을 맞아 올해 8월 31일 국회 앞에 강성 지지층이 보낸 화환과 축하 안내판이 늘어서 있다. 동아일보 DB
강성 지지층 간 대결도 볼만할 겁니다. 그동안 이 대표는 사실상 국회 내 ‘팬덤 원톱’이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서 ‘이장’직을 맡고, ‘유튜브 라이브’ 등을 통해 그들과 수시로 소통하면서 팬덤을 키워 온 덕이겠죠. 강성 지지층은 스스로를 ‘개딸(개혁의 딸)’이라 자청하며 어떤 위기와 시련 앞에서도 이 대표 뒤를 지켰고요. 이 대표가 민주당 대표로 취임하던 날부터, 취임 1주년, 생일마다 국회 앞에는 그의 지지층이 보낸 축하 화환이 줄 이어 늘어서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전 장관의 팬덤도 만만치 않습니다. 보수 진영에선 아주 드물게 강력한 팬덤이 형성돼 있어 가는 곳마다 인파가 몰리고 있죠. 지난달 대구에선 서울행 기차표 시간까지 미뤄가며 3시간가량 시민들과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 대표가 이제까지처럼 마냥 자신의 팬덤만 믿고 버티기엔, 한동훈 팬덤도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11월 17일 대구에서 시민들과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한 전 장관은 이날 동대구역에서 밀려든 인파에 서울행 기차표 시간을 연기하기도 했다. 대구=뉴스1
물론 한동훈 비대위가 잘 안될 수 있습니다. 이 대표 측도 그걸 누구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듯하고요. 그런데 한동훈이 망한다고 이재명이 잘 되진 않을 겁니다. 그냥 둘 다 같이 더 빠르게 망하겠죠. 총선을 앞둔 유권자들이 바보는 아니니까요. 그러니 서로 상대가 먼저 망하길 바라는 안일한 생각은 접고 이왕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김에 진짜 서로 피 튀기는 쇄신 경쟁을 펼쳐주길 기대해봅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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