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나에게 선택과 집중이란?

정양범 매경비즈 기자(jung.oungbum@mkinternet.com) 2023. 12. 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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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던 어린 시절

손녀가 놀러 왔다. 잠시도 앉아있지 않고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다양한 놀이를 한다. 지칠 만도 한데 활력이 넘친다. 손녀와 함께 소파에 앉아 무엇이 되고 싶냐 묻는다. 손녀는 꿈이 많다.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가 되거나 탐험가가 되고 싶다고 하다가, 불쌍한 사람을 보면 의사나 간호사가 된다고 한다. 노래와 춤 추는 것을 보면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하고, 맛있는 음식을 보면 요리사를 말한다.

“무엇이 되고 싶으냐?”가 아닌 “무엇을 하고 싶냐?”로 물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마지막 “무엇을 좋아하며 잘하느냐?” 물으니 좋아하는 것은 많은데 나이가 어려 잘하는 것은 없다며 배우면 된다고 한다.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퇴직하고 집에서 유치원 다니는 손녀를 보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이다. 몇 년 후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행복하면서도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지금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다. 직장 다닐 때 그렇게 좋아하던 섹스폰도 퇴직과 동시에 불지 않고, 틈틈이 그렸던 유화도 접었다고 한다. 지금 무엇을 하냐고 하니 특별하게 하는 일 없고, 텃밭을 가꾸고 시간 나면 낚시와 등산을 한다. 손녀가 오는 날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 친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어린 시절에는 해보고 싶고, 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어진 해야 할 일이 있는 한계 속에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해보고 싶고 좋아하고 되고 싶은 것을 제한한다. 현실과 타협하면서 꿈은 단기적인 목표가 되고 장황하고 허황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달성 가능한 것들로 바뀌어 간다. 40대가 된 어느 순간, 꿈이 없는 직장인들이 많다. 직장과 가정의 일상에 지쳐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꿈과 목표가 없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특별히 가치를 올리고 성과를 낼 생각이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 쉬는 것에 만족한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그 어느 날 퇴직의 순간이 오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꿈이나 목표가 없었으니 준비한 것도 없고,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

꿈과 목표가 없는 직장인이 되면 곤란하다. 근무하는 동안에 2개의 꿈과 목표를 준비해야 한다. 하나는 직장에 있을 때의 꿈과 목표이다.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높은 전문성을 갖춘 경영자’이다. 여러 개의 직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담당하는 직무에 있어 컨텐츠를 만들고, 외부 강의를 할 수 있으며, 진단 툴과 설문으로 진단과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직무에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인정해 주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경영자는 최고 경영자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적어도 임원을 하고 퇴직하는 것이 좋다. 큰 조직과 인원을 이끌어봤다는 것은 담당자로 퇴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하나는 퇴직 후의 꿈과 목표이다. 퇴직 한 후에 생각하겠다는 사람이 있다. 퇴직한 후에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직장에 다닐 때에는 활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시야를 넓힐 기회가 많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있다. 퇴직 후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완전한 여유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절박감이 없고 고생했으니 조금은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안일을 초래한다. 막상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굳이 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혹시 이 일을 하는 것을 누가 본다면?’ 하는 여러 우려로 주저하게 된다. 모아 놓은 자금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크다. 노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에게 손 벌릴 수도 없는데, 모아놓은 돈을 꼭 필요하지 않은 곳에 쓰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 더 집 안에 머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목표와 계획은 재직 중 마련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회사 후배가 퇴직 후 강의를 하고,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으로 글을 쓰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퇴직 후 7년 동안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물었다.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꿈만 있다. 자신이 작성한 서류도 개인 저장할 수 없는 환경이고, 회사 일에 바빠 외부 모임이나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학력이나 자격증은 입사 시점에 멈춰져 있다. 후배에게 강의와 집필을 하기 위해서는 4가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차별화된 경쟁 역량, 컨텐츠, 네트워크, 소통 능력. 퇴직 후 시간도 많은데 하나씩 갖추겠다는 후배의 말에 웃음을 보낸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퇴직 후 시간이 많다고 여러가지 일들을 하는 경우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분산 투자를 하듯 남은 40년 인생이 결코 짧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하라고 한다. 돈을 버는 것과 남은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는 다르다. 위험을 최대한 적게 하고, 보다 의미 있는 삶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젊었을 때, 모든 운동을 다 잘했다 해고, 나이 들어 좋아해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있고, 하기 보다는 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운동이 있다.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현 위치를 인식하고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함이 옳다. 문제는 시점이다. 재직 중 이를 정해 긴 시간 착실하게 준비한 사람과 퇴직 후 고민하여 준비하고 추진하는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인생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전문성의 최고 단계에서 즐겁게 일을 이어가는 것이 더 행복하고 성과가 높지 않을까?

[홍석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홍석환의 HR 전략 컨설팅 대표/전) 인사혁신처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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