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으로 꿈꾼 ‘예술의 민주화’···바자렐리가 펼친 망막 위의 마법
“바자렐리는 어디에나 있다(Vasarely is Everywhere).”
202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슈테델 미술관에서 열린 빅토르 바자렐리(1906~1997) 회고전의 슬로건이다. 2019년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 센터, 2020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티센 보르네미사 국립미술관 전시에 이어 독일에서 회고전을 열며 유럽을 휩쓴 ‘바자렐리’가 한국에 상륙했다.
‘바자렐리’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의 그림을 모르기는 어렵다. 20세기 추상미술의 한 장르인 옵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바자렐리는 도형과 색상만으로 2차원 공간 안에 3차원을 만들어냈다. 돌출되거나 함몰돼 보이는 화면,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 같은 화면 등 착시를 통해 평면에 움직임을 부여한 것이 바자렐리 작품의 특징이다.
시작은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전시회 ‘반응하는 눈(Responsive Eyes)’이었다. 전시가 성공을 거두며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옵티컬아트(Optical Art)’의 줄임말인 ‘옵아트’라 명명했고, 바자렐리는 세계적 작가로 도약한다.
“나는 순수한 형태와 순수한 색으로 세상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추상의 진가를 깨닫게 되었다.”
바자렐리는 도형과 색상으로 이뤄진 자신만의 조형적 언어를 창조했다.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전에 수학적 계산과 광학 이론을 토대로 컴퓨터로 코드를 짜듯 색상과 형태를 정교하게 그려넣어 미묘한 변화와 착시를 일으키는 화면을 만들어냈다. 현대미술, 그래픽 아트, 상업 디자인과 패션에 이르기까지 바자렐리가 미친 영향이 크기에 ‘바자렐리는 어디에나 있다’는 말은 성립한다.
바자렐리의 작품들이 33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빅토르 바자렐리 : 반응하는 눈’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뮤지엄, 바자렐리 뮤지엄에서 건너온 200여 점의 작품을 통해 바자렐리의 대표작 뿐 아니라 초기작까지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2019년 퐁피두 미술관에서 45만명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등 유럽에서 성공을 거둔 후 아시아에서 열린 첫 전시로, “헝가리 밖에서 열린 최대 규모의 전시”(마르톤 오로스 바자렐리 미술관장)다.
헝가리 태생의 프랑스 화가 바자렐리는 1930년 파리로 이주하면서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업 광고 디자이너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 끝에 옵아트의 길을 개척했다. 전시엔 바자렐리가 헝가리의 바우하우스로 불린 뮤힐리 아카데미를 다니며 그린 그림들과 파리로 이주해 그린 광고 디자인 작품을 볼 수 있다. 초기작에서도 기하학적 패턴으로 화면에 입체감을 만들어낸 작품들을 볼 수 있어 흥미를 더한다. 스위스 제약회사 가이기에서 출시한 나방퇴치체 ‘미틴’의 광고 디자인이 대표적인데, 바자렐리의 안에서 이미 ‘옵아트의 싹’이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바자렐리는 유행에 휩쓸리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당시 프랑스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엥포르멜 화풍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시기 그린 그림들은 물감을 거칠고 두껍게 칠하거나 회화적 느낌이 강해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바자렐리는 스스로 이 시기를 “잘못된 길”이라고 불렀다.
이후 바자렐리는 본격적으로 색채의 대비, 빛과 음영의 관계, 움직임에 대한 연구에 착수한다. ‘얼룩말’(1939)은 흑백의 색과 면만으로 두 마리의 얼룩말이 엉켜있는 듯한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전시에선 바자렐리의 조형적 실험이 발전·변화하는 모습을 단계적으로 볼 수 있다. 1950년대 초기 선만으로 화면에 입체감을 부여하던 바자렐리는 흑백의 사각형으로 옵아트를 ‘발명’한다. “사각형을 약간 회전시켜 마름모를 만들어 새로운 환상적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바자렐리는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나갔다. 당시 과학과 기술 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바자렐리는 과학 지식을 응용해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철저히 수학적 계산에 기반해 작품을 만들었다. 알고리즘과 순열을 이용해 작품을 구상한다. 색상과 모양에 일정한 코드를 부여해 작품을 제작하고, 흑과 백을 대조하거나 몇 개를 골라 순서를 고려해 나열하는 순열을 이용했다. 혼합하지 않은 순수한 색만을 사용해 복잡하고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래서다. ‘티바를 위한 구성 프로그램’(1979)에선 바자렐리가 만든 복잡한 ‘알고리즘’을 볼 수 있다.
바자렐리가 마치 프로그램 코드를 짜듯 작업을 한 이유는 ‘예술의 대중화·민주화’에 대한 철학 때문이었다. 바자렐리는 소수의 부유층만이 예술을 독점하고 향유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누릴 수 있게 자신의 작품이 재현되고 재생산될 수 있기를 바랐다. 바자렐리는 “조형예술은 산소, 햇빛, 비타민처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일무이한 작품’보다는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작품’을 원했다.
전시장엔 바자렐리가 자신의 작품을 실크스크린 판화, 조각, 태피스트리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형한 작품들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자렐리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전시에선 바자렐리가 1988년 서울올림픽 엠블럼으로 제안한 벌집 모양의 육각형 ‘Hexa5’, 1989년 남긴 육각형 형태의 조각 ‘시작’도 볼 수 있다.
“예술가의 목표는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에 널리 퍼질 아이디어에 기여하는 것이다.” 바자렐리가 한 말이다. 돌이켜보건대, 바자렐리는 두 가지를 다 이룬 것 같다.
한국에서 바자렐리 전시가 열린 것은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이래 처음이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이 열리고 있다. 1960년대 초 엥포르멜 이후의 대안적 추상미술로 기하학적 추상미술과 옵아트가 부상하며 한국 미술계에 끼친 영향을 볼 수 있는 전시다. 함께 감상하면 더 흥미로울 전시다. 내년 4월21일까지. 1만4000원~2만원.
https://www.khan.co.kr/culture/art-architecture/article/202312061558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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