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도 인정한 음료 덕후들이 만든 1억 뷰 미디어 [브랜더쿠]
‘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
2019년 9월, 코카콜라 본사는 자사의 웹 매거진 '코카콜라 저니'의 전 세계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을 이 박물관에 초대했다. 국가별 내로라 하는 음료 덕후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 자랑스럽게도 그중엔 한국인 팀도 있었다. 국내 유일한 음료 전문 미디어 '마시즘'의 에디터들이 그 주인공이다.
2017년 창간한 마시즘은 '음료 괴짜들이 운영하는 미디어'라고 불린다. 음료를 가지고 극한의 실험들을 단행하며 재밌는 콘텐츠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야끼소바 전용 펩시 제로 민트 콜라, 둥지냉면 캔음료 등 이색적인 해외 제품들을 리뷰하는 건 기본, 초간단 레시피로 유명 음료의 맛을 따라하기도 한다. 이들의 파격적인 덕질은 온라인 미디어를 넘어 오프라인까지 확장됐다. 전국민 레시피 공모전을 단행해 흑미 숭늉차, 동치미 스파클링 같은 기발한 음료를 출시하고 지난 3월에는 잠실 롯데월드몰 1층에 지역별로 실력있는 카페 6곳을 모아 시그니처 메뉴 대전을 펼치기도 했다.
마시즘은 이런 괴짜스러움을 앞세워 치열한 국내 미디어 시장에서 6년간 순항 중이다. 지난 11월 기준 홈페이지 및 유튜브 합계 누적 조회 수는 1억 2700만 회, 리뷰한 음료만 1600여 개. 그간 롯데칠성음료, 하이트진로, 풀무원, 맥심 등 마시즘과의 협업을 원하는 브랜드도 늘었다.
음료 덕후들이 만든 이 괴짜 미디어는 어떻게 6년간 성장했을까? 마시즘의 창간 멤버인 김신철 에디터에게 물었다.
우리가 독자 취향을 어떻게 알아?
자칫 마시즘을 자극적인 리뷰 채널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음료 관련 종합 지식을 전하는 미디어다. 리뷰 외에 인기 카테고리도 다양하다. 음료에 얽힌 역사를 다루는 ‘컬쳐’, 음료 시장의 이슈를 전하는 ‘비즈니스’, 직접 음료를 만드는 ‘레시피’까지 취향따라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독자 취향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부담없이 새로운 시리즈를 내고 빠르게 반응을 테스트하는 것이 마시즘의 방법론. 예컨대 컬쳐는 특정 음료의 역사적 사실도 재밌어할 거란 전제하에 기획했다. 미숫가루의 기원은 16세기 중엽 척계광이 전쟁 중에 병사들의 식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배급한 가루였다는 내용 등 몰랐을법한 음료의 역사들을 소개한다.
컬쳐 카테고리의 흥행을 확인한 후, 음료의 최신 역사라 할 수 있는 업계 이슈도 재밌는 주제가 될 거라고 전망했다. 비즈니스 카테고리를 추가한 배경이다. 다른 매체에서 접하기 어려운 음료 기업들의 이슈를 다루는데,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시즌에는 카타르 정부가 경기장 내 맥주 판매를 금지시켜서 곤란해진 버드와이저의 이야기를 알렸다. 당시 물류 창고에 가득 쌓인 맥주를 우승팀에게 기부하기로 한 버드와이저의 깜짝 마케팅은 독자들의 긍정적인 반향을 이끌었다.
가장 인기있는 카테고리는 레시피다. 주로 영상이 올라오는데 컬쳐와 비즈니스보다 통통튀는 재미를 추구한다. 대표작은 ‘1분 만에 ( ) 만드는 법’. 쿨피스, 솔의눈, 맥콜 등 유명 시제품을 초간단 레시피로 따라 하는 시리즈다. 예컨대 계란 노른자, 흰 우유, 설탕을 섞어 빙그레 바나나우유를 만든 유튜브 영상의 조회 수는 260만 회를 넘어섰다.
리뷰 게시물에 대한 마시즘의 기획 Tip도 있나요? 발 빠르게 재밌는 음료를 찾아 깊이 있게 다뤄요. 국내 신제품부터 이색 해외 제품들까지 소개하고 있죠. 해외 음료를 수급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 등 각 국가에서 음료를 직구로 판매하는 업체들을 꾸준히 살핍니다. 음료를 리뷰하기 전까진 질릴 정도로 마셔요. 맛있는 조합을 찾고자 빵, 과자, 고기 등에 곁들여 마시고 온도별 맛을 비교하기 위해 데워 마시기도 하죠. 음료를 활용해 요리한 적도 많습니다. 칠면조 육즙맛 탄산음료를 리뷰할 땐 초계국수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극한으로 실험했을 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편이에요. |
언론고시생 모임에서 탄생한 뉴미디어
마시즘은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갓 졸업한 언론고시생들의 모임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김신철 에디터를 포함해 총 3인방이 취업 스펙용으로 버티컬 미디어*를 만들자며 의기투합한 것. 주제로 음료를 선택한 건 팀원 모두가 학과에서 소문난 음료 덕후였기 때문이다.
*버티컬 미디어: 한 가지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
국내에 음료 버티컬 미디어가 전무했지만 ‘시장에 그 아이템이 없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경계심을 갖고 2가지 기준에 맞춰 주제의 적합성을 살폈다. 첫 번째는 음료에 관심 있는 독자층의 규모, 두 번째는 기존 음료 관련 콘텐츠들과의 차별화 가능 여부였다. 우선 독자층은 충분했다. 음료 제품군 안에서도 술, 커피, 차 등 마니아층이 두터운 세부 품목이 가득해서다. 또한 음료를 다룬 콘텐츠라고 하면 간단히 맛과 가격만 설명하는 블로거들의 리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보다 재밌게 만들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넘쳤다. 애초에 음료 리뷰만 다룰 계획도 아니었기 때문에 블로거들을 위협적인 경쟁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처음엔 블로그와 페이스북으로 시작했다.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에서 인지도를 높인 후에 홈페이지를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리뷰를 쌓았지만 방문자 대부분은 응원차 들린 학과 동기와 선후배에 그쳤다. 해결책을 강구하던 마시즘 팀은 시의성 있는 주제를 음료와 결합하는 식으로 콘텐츠 방향성을 재정립했다.
마침 19대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포스터가 화제였다. 이에 '음료 대선'이란 콘셉트로 펩시콜라, 닥터페퍼, 초록매실, 포카리스웨트, 레몬에이드의 포스터를 제작했고 재치 있는 해당 게시물은 급속도로 바이럴됐다. 블로그에서 공유 수만 13만 회, 3일간 블로그 일 방문자 수 역시 1만 명대에 달했다.
마시즘 팀은 기회를 틈타 공식 홈페이지까지 개설한다. 후속편으론 시의성 있는 상황별 추천 음료를 올렸다. 가령 대학교 시험 기간에 맞춰 밤샐 때 마시기 좋은 음료 3가지를 추천하는 식이다.
홈페이지를 꼭 꾸며야 할까?
사실 마시즘 홈페이지를 보면 성공한 미디어들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감각적인 디자인은 커녕, 콘텐츠 저장하기 또는 문장 형광펜 표시 등의 편리한 기능도 없다.
홈페이지에 크게 공을 들이신 것 같진 않습니다. 홈페이지 디자인과 편의 기능은 미디어가 성공하는 데 가산점일 뿐, 필수적이진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마시즘은 날 것의 커뮤니티 느낌을 주고 싶어서 디자인에 힘을 쏟지 않습니다. 같은 이유로 저장하기, 형광펜 등의 기능도 넣지 않았어요. |
레시피 카테고리용 영상에는 완성된 음료로 팀원을 속이는 후일담을 더했다. 가짜 바나나우유를 빙그레 패키지에 따른 후 팀원에게 권하는 식이다. 샛노란 가짜 음료를 마신 후 만족스러워하는 팀원의 표정은 해당 영상의 킬포인트로 불린다.
브랜디드 콘텐츠도 괴짜스럽게!
론칭 1년 후 독자층을 확보한 마시즘 팀은 본업으로서 채널을 키워가기로 마음 먹는다. 문제는 수익원이 부재하다는 점. 사이드 프로젝트로 운영했을 땐 수익화에 대한 압박이 없었지만, 지속 가능한 미디어가 되려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마시즘의 탈출구는 '브랜디드 콘텐츠'였다. 2018년 3월 한국 코카콜라에서 연락이 온 게 발판이 됐다. 국내에 미출시된 음료들을 보내줄 테니 다뤄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실제 마시즘 팀은 러시아에서만 유통되는 수박 오이맛 스프라이트 등 국가별 한정판 에디션들을 전달받았고 리뷰 게시물을 작성했다. 맛깔나는 필력을 인정받은 마시즘은 코카콜라 저니의 한국 최초 콘텐츠 크리에이터 활동까지 제안받는다. 코카콜라 저니의 창작자로서 원고료 이외에 누리는 부가 혜택은 곧 새로운 콘텐츠 주제가 됐다. 예컨대 월드 오브 코카콜라 박물관에 초청받았을 땐 내부에 전시된 전세계 60여 가지 콜라를 시음하는 영상을 찍었다.
'코카콜라가 인정한 크리에이터'라는 타이틀은 다른 음료 기업들의 관심을 끌 만한 이력이 됐다. 실제 협업 문의가 급증했고, 마시즘 팀은 기존 게시물과 다른 형식의 브랜디드 콘텐츠를 목표 삼았다. 광고성 글은 독자들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으니 색다른 재미를 추가한 것. 풀무원 노니&깔라만시 음료의 브랜디드 콘텐츠에서 문단 사이에 웹툰을 첨부한 것이 일례다. 두리안을 이길 정도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열대과일 노니 캐릭터가 마시즘 에디터를 두렵게 만드는 스토리를 그렸다. 웹툰은 깔라만시즙과 어우러져 걱정했던 것보다 마시기 수월하다는 에디터의 후기와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처럼 마시즘 스타일로 재해석한 브랜디드 콘텐츠는 기존 독자들의 반감을 낮추고, 다른 콘텐츠만큼 신규 독자를 유입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뉴미디어는 어떻게 수익을 창출해야 할까요? 미디어들이 수익화 방안을 고민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방안을 얼마나 새롭게 구체화할지에요. 구독 모델이 아닌 이상 브랜디드 콘텐츠가 주수익원이 될 텐데 고객사뿐 아니라 독자들도 재밌어 할 방향으로 기획해야 하죠. |
전국 카페 대축제를 연 온라인 미디어
이 음료 덕후들은 브랜드 협업으로 오프라인 판까지 벌렸다. 2020년부터 롯데칠성음료와 함께 운영해 온 '음료학교'가 대표적이다. 의아하게도 롯데칠성음료의 칸타타(커피) 스파클링을 여러 차례 혹평한 덕분에 주어진 기회였다. 롯데칠성음료 신사업팀에서 그간 칸타타 스파클링 리뷰를 재밌게 봤다며 오히려 협업을 제안한 것. 소비자들이 새롭게 느낄만한 브랜드 캠페인을 함께 만들자는 요청이었다.
마시즘 팀은 음료 덕후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캠페인을 원했다. 그 기획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이 개인의 음료 레시피를 상품화하는 음료학교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출시되는 것만큼 음료 덕후에게 행복한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다. 여느 공모전처럼 기획안을 접수받고, 당첨자만 발표하는 식으로 전개하지 않았다. 예선 통과자 10팀은 1년간 롯데칠성음료연구소에서 음료 제조 공정, 콘셉트 기획 방법 등을 배우며 아이디어 보완 과정을 거쳤다. 음료 덕후에게 딱 맞는 커리큘럼을 제공한 셈이다. 노력 끝에 최종 우승한 대학생팀의 '흑미숭늉차 까늉'은 출시 5개월 만에 매출 10억 원이란 쾌거를 달성했다.
자신감이 붙은 마시즘 팀은 2021년 음료학교의 후속 캠페인 공동 기획에 돌입한다. 목표는 음료 덕후들을 위한 미식 축제를 여는 것. 당시 팬데믹으로 인해 카페에서 음료를 먹을 수 없었던 점에 착안해 여수, 천안, 수원, 서울 등 지역별 실력 있는 카페들을 서울 서초구 다목적 행사 공간 모나코스페이스에 모아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캠페인명은 ‘음료학교-모두의 시그니처’. 카페별로 시그니처 메뉴를 선보이고 추후엔 가장 반응이 좋은 카페의 메뉴를 상품으로 출시해 더 많은 음료 덕후가 맛보도록 하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실제 시즌 1에서 우승한 카페 티하우스 나니의 살구 밀크티와 인사이트 커피의 흑임자라떼는 롯데칠성음료를 통해 실론티-살구 밀크티, 칸타타-흑임자 카페라떼로 출시됐다.
지난 3월엔 더 성대해진 규모로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1층에서 모두의 시그니처 시즌 2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운영 기간 4일 동안 전체 판매량은 4500여 잔, 투표 참여자는 5만 4000명에 달했고 최종 우승한 서울 종로구 나무사이로의 아마레또 라떼*는 향후 제춤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칵테일에 자주 쓰이는 아마레또(살구씨 추출물)을 베이스로 만든 라떼로 은은한 과일 향미가 특징이다.
마시즘은 콘텐츠부터 오프라인 이벤트까지 음료 덕후들이 즐길만한 갖가지 놀거리를 만들며 6년간 성장했다. 현재 팀원은 총 5명. 이들은 “실험정신없이 음료 리뷰만 올렸다면 미디어로서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음료 덕후들이 좋아할 만한 활동을 목표로 콘텐츠 카테고리를 늘리고 새로운 브랜디드 콘텐츠를 수익원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음료 덕후들과의 오프라인 접점도 적극 기획한 것이 미디어의 생존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괴짜들의 채널은 앞으로도 자신들과 같은 음료 덕후들을 즐겁게 만드는 미디어로서 나아갈 계획이다.
인터비즈 이한규 기자 hanq@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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