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흥남철수는 기적"·中 "우리가 이긴 날"…성탄전야 6.25 대리전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3. 12. 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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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장진호전투·흥남철수 크리스마스 기적",
中관영매체 "장진호전투는 중공군 영웅적 승리" 주장…
크리스마스 지우는 중국 "마오쩌둥 탄생 대신 기념"
(대전=뉴스1) 김기남 기자 = 23일 오전 6·25전쟁에서 전사한 ‘호국의 형제’ 고(故) 최상락 하사와 최임락 일병의 영결식이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엄수되고 있다. 형인 최상락 하사는 3사단 소속으로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 하였고, 동생 최임락 일병은 미 7사단 소속으로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뒤 미국 하와이에 임시 안치됐다가 공동 감식을 거쳐 국군으로 판정, 지난 7월 국내로 봉환되어 73년만에 형제가 고국에서 함께 영면하게 되었다. 2023.11.2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미국과 중국이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 한국전쟁사 대리전을 펼쳤다. 중국이 관영언론을 통해 12월 24일을 크리스마스 이브 아닌 6.25전쟁 중 '장진호전투(長津湖戰鬪) 승전 기념일'로 기억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미국 WP(워싱턴포스트)가 곧바로 '흥남철수는 한국과 미국에 크리스마스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받아쳤다.

지난 24일(중국시간) 중국 관영 베이징TV는 온라인 플랫폼 웨이보를 통해 "12월 24일은 '평화로운 밤'(平安夜, 크리스마스이브)이 아니라 장진호전투의 승리일이며, 한국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승리한 중요한 기념일로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인들은 새로운 중국을 위한 평화의 밤을 위해 피와 목숨을 바쳐 싸웠다"고 덧붙였다. 6.25 전쟁을 편파적으로 다룬 내용으로 2021년 중국서 개봉해 논란을 빚었던 영화 '장진호전투' 영상을 담은 12초 분량의 클립도 함께 공개했다.

장진호전투, 어떤 전투였길래
=1950년 12월 12일 미군 상륙정(LST)이 흥남항을 탈출하는 피란민들을 태우고 있는 모습. ('생명의 항해' 저자 안재철씨 제공).2015.1.13/뉴스1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7~12월 11일 2주간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벌어졌다. 당시 미 10군단 예하 해병대 1사단 등 유엔군과 대한민국국군은 중공군 제9병단(7개 사단 12만명)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하기까지 2주간 철수작전을 전개했다. 이 작전으로 중공군을 저지하면서 국군과 유엔군, 피란민 등 수십만명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 15일)의 성공으로 한국전쟁이 거의 종료 국면을 맞은 상황에서 중공군은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에 개입했다. 유명한 인해전술로 우리 군과 유엔군을 물밀듯 덮쳐왔다. 목적은 김일성 정권 수호였다. 홍콩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5일 "장진호 전투에 참여해 유엔군을 기습했던 중국군은 '김일성'을 돕기 위해 파견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중공군을 맞이한 유엔군과 우리 군은 패닉 상태였다.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가 미 의회에 보낸 전문 내용이 유명하다. 그는 "우리는 전혀 새로운 전쟁에 직면해 있다. 우리의 현 상태에 대해 확실한 건 우린 중공이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한 전쟁을 치를 준비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라며 "가능한 범위 안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으나, 본관의 통제 능력을 벗어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항전은 영웅적이었다. 유엔군과 국군은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악조건 속에서 결국 포위망을 뚫고 철수했다. 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 피해는 사상자 1만7000여명, 중공군의 사상자는 중국 측 집계에 따르면 4만8000여명이었다. 그리고 중공군의 남침 선봉대 격이던 제9병단은 이 전투로 전투력을 상실, 전열에서 이탈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 종군기자의 "후퇴하냐"는 질문에 "후퇴라니? 우리는 지금 다른 쪽으로 진격 중이다"(Retreat, hell! We're not retreating, we're just advancing in a different direction)라고 답한 미국 해병대 지휘관의 항전 의지는 지금까지 회자된다.

"59인승 배로 1만4000명 구했다"…WP 흥남철수 재조명
= 흥남철수작전(1950) 성공에 기여한 생존 메러디스 빅토리호 승선원 벌리 스미스 씨가 6일 경남 거제포로수용소를 찾아 흥남철수작전 기념비에 참배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2018.4.6/뉴스1
중국이 장진호전투를 되새긴 것과 같은 날 미국 WP도 흥남철수를 재조명했다. 흥남철수는 약 9만명의 피란민과 16만명의 국군, 미군 등 유엔군을 포함해 총 25만여명이 남한으로 빠져나온 대규모 철수작전으로 장진호전투의 결말 격이다. 장진호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중공군의 남침속도는 둔화했다. 흥남철수를 통해 유엔군은 전투력을 보존, 한반도 남쪽을 재차 전화에 휩싸이는 지옥도에서 구해냈다.

WP는 레너드 라루 선장이 이끈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가 '기적의 배'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연을 조명했다. 연료와 트럭 등을 수송하던 라루 선장은 어느날 흥남항 앞바다 정박을 명받았다. 곧 선장의 눈앞에는 수십만명의 군 병력과 피란민들이 몰려들었다. 선장은 배에 실린 군수물자를 모두 버리라고 명령했다. 사람은 총 59명만 승선할 수 있도록 설계된 빅토리호에 1만4000여명의 피란민이 들어찼다.

그렇게 흥남을 출발한 게 12월 23일이었다. WP에 따르면 라루 선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언제 기뢰가 터질지, 언제 북한군 잠수함에 공격 받을지 알 수 없었다. 연료통에서 불꽃 하나만 튀어도 배 전체가 장작더미로 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빅토리호는 833km(약 450해리)의 기적같은 항해를 안전하게 마치고 크리스마스 이브, 부산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피란민들이 넘쳐났던 부산항에 입항하지 못하고 다시 항해를 떠나 거제도 장승포항에 다다라서야 항해를 멈출 수 있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흥남 철수 이후에도 빅토리호를 몰고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던 라루 선장은 휴전협정이 시작된 1952년 미국으로 돌아가 곧바로 뉴저지 세인트폴 베네딕트 성당에서 성직자가 됐다. 2001년 선종하기 직전까지 47년간은 성당을 한 발자국도 나서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혈맹 상징, 장진호전투 보는 中의 불편한 눈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오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평화의 광장에서 열린 제73주년 장진호 전투 기념행사에서 묵념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3.10.12. *재판매 및 DB 금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기념행사에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6.25 전쟁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은 지난 70여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발전해 왔으며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면서 우방국들과도 긴밀히 연대해 세계의 자유와 평화, 번영에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WP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장진호전투의 인연도 재조명했다. 문 전 대통령은 흥남철수를 통해 탈출한 부모가 거제에 정착했고 1953년 1월 거제에서 태어났다. 그는 취임 첫해 방미 당시 "항해 중이던 12월 24일, 미군이 피란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사탕을 나눠줬다는 모친의 말씀이 기억난다"고 했다.

한미 양국 간 전통적 우호의 상징 격인 장진호전투는 중국에는 불편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전쟁은 미군과 중국군이 직접 충돌한 유일한 전쟁이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입장에선 장진호전투 결과에 대한 재해석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2021년 뜬금없이 장진호전투를 왜곡 해석한 영화를 개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의회를 방문했던 당시에도 "미군은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명의 인해전술을 돌파하는 기적같은 성과를 거뒀다"고 했는데, 중국 외교부는 이튿날 곧바로 "장진호 전투는 항미원조(미군에 맞서 북한을 돕다) 전쟁에서 중국이 위대한 승리를 거둔 사건"이라고 맞받아쳤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여론전에 중국 네티즌들도 속속 참전하고 있다. SCMP에 따르면 한 네티즌은 온라인 댓글을 통해 "평화의 밤은 산타클로스가 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숨과 피를 바쳐 얻은 것"이라며 "우리는 영웅적인 중국군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했다.

"서구문화 안돼" 크리스마스 지우는 中
= 지난 2016년 12월 25일(현지시간) 후난성 사오산에서 중국 국민들이 초대 국가주석 마오쩌둥의 탄생 123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미중 갈등의 연장선에서 대표적 서구 기념일인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의 '지우기'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 종교 전파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 크리스마스는 기념일일 수 없지만,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이후 중국 젊은층은 크리스마스를 특별한 날로 여기기 시작했다. SCMP는 그러나 "온라인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서구문화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매년 당국이 탈크리스마스를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도 몇몇 학교는 '크리스마스 보이콧'을 공식 천명했다. 중국 하얼빈 시내 한 초등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중국 전통 명절을 홍보하는 한편 크리스마스를 맞아 서로 선물을 주거나 교실을 장식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허난성 위저우의 한 중학교에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대신, 1893년 12월 26일에 태어난 마오쩌둥의 시를 낭송하고 에세이를 쓰며 탄생을 기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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