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ssacre records revealed after 100 years (KOR)

2023. 12. 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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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s he willing to confront the historical records of Japan’s faults?

KIM HYUN-YEThe author is a Tokyo correspondent of the JoongAng Ilbo. A record that has been sleeping for 100 years has been released to the world. This is a record no one has read before. It is a 102-page report written by the Japanese military and handed over to the U.S. military during World War II.

It was in April 1958 that the report, which had been gathering dust in an archive near Washington, D.C., returned to Japan. It has been lying in the Japanese defense ministry archive ever since, and 68-year-old writer and history journalist Nobuyuki Watanabe brought it to life.

“I didn’t want to study. I only read books. I found history books most interesting. Because I didn’t study and got only 5 points on math, I could not get into the University of Tokyo,” said the energetic voice over the phone.

The 1923 Great Kanto earthquake claimed the lives of over 100,000 people. 100 years ago in September, more than 6,000 Koreans living in Japan were massacred. The tragedy began with rumors that Koreans had poisoned wells. But the Japanese government denied the facts until recently, saying “there is no record.”

But on December 14, an article directly refuting Tokyo’s long-standing denial was published in the Mainichi Shimbun online. Watanabe discovered the records. The report was drafted by the military headquarters in Kumagaya, Saitama Prefecture, which had been in charge of conscription and veterans affairs under the Army Ministry.

How did this document come to light? “I felt as if the records from 100 years ago were waiting to be read,” the journalist said.

Watanabe began covering the 90th anniversary of the Kanto earthquake as a reporter for the Asahi Shimbun in 2013. He began to question why Koreans had been massacred during the time. Watanabe began to collect related materials and read them at home every day. It was not easy to dig into old documents. It often took several days to understand one Chinese character. Then, this summer, he was asked to lecture for the 100th anniversary of the earthquake.

He reviewed his documents before the presentation and discovered a document that had been mentioned in “The Great Kanto Earthquake, the Truth behind the Denial of the Massacre,” published in Japan two years ago and translated into Korean this August.

Watanabe studied the report he hadn’t read as it was too difficult to understand, and in the end, he brought it to the world. He plans to publish a book on it.

Why is he willing to confront the historical records of Japan’s faults? He resolutely said, “If we don’t clarify why these things happened, the same things can happen again. What to be done now is to reinterpret these documents. It is my job to do my best.”

100년 동안 잠든 간토대지진 기록김현예 도쿄 특파원

그간 누구도 읽지 않은 기록. 100년간 잠들어있던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일본군이 작성해, 세계 2차대전 중 미군 손에 넘어갔던 102쪽 분량의 보고서다. 워싱턴 근교 문서보관소에 잠들어있던 이 보고서가 다시 일본 땅을 밟은 건 1958년 4월이었다. 이후 방위성 사료실에 잠들어있던 것을 깨워낸 건 올해 68세 작가 겸 역사전문기자 와타나베 노부유키(渡辺 延志·68)다.

“공부는 죽어도 하기가 싫었어요. 매일 책만 봤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재밌는 게 역사책이었어요. 공부를 안 하니 수학 점수가 5점밖에 안 되니까 도쿄대는 그래서 못 갔어요. 하하하.”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 100년 전 9월,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독에 우물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시작된 참극이었다. 하지만 이 참상을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 부인했다. “기록이 없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런 일본 정부의 오랜 모르쇠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가 지난 14일 마이니치신문 온라인에 실렸다. 와타나베 손에서 발굴된 기록이다. 당시 육군성 산하로, 징병과 재향군인 업무를 맡았던 사이타마(埼玉)현 구마가야(熊谷)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서로, 40여 명의 조선인 학살 기록이 담겼다.

이 자료는 어떻게 드러나게 된 걸까. 그는 “마치 약 100년 전 이 기록들이 읽어주길 기다린 것 같다”고 했다. 역사를 좋아했지만 간토대지진 당시의 비극을 파고들려 했던 건 아니었다. 지난 2013년, 아시히신문 기자로 간토대지진 90년을 맞아 취재를 시작했다. 의문이 싹텄다. 왜, 조선인은 학살당했을까. 자료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매일매일 모아둔 자료를 읽었다. 옛 문서를 뒤져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자 한 글자를 풀어내는 데 며칠이 걸리는 일이 수두룩했다. 그러던 올여름,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강연해달란 연락이 왔다.

이왕 하는 발표니 뭐 새로운 건 없을까, 갖고 있던 자료를 뒤졌다. 그에 손에 들린 건, 2년 전 일본서 출간해 지난 8월 우리말로도 발간된 『관동대지진, 학살부정의 진상』에도 언급했던 자료였다. 너무 읽기 힘들어 그간 읽지 않았던 이 보고서에 매달렸고, 결국 세상 밖에 알려졌다. 그는 이 내용을 또다시 책으로 엮어낼 참이다.

오랜 시간, 그가 일본의 부(負)의 역사 기록들과 마주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확실히 밝혀내지 않으면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이제 할 일은 이 자료에서 무엇을 해석하느냐고 봅니다.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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