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쿠데타·역사… 칙칙한 팩션, 흥행 반전을 쓰다
“생소한 군대문화, 오히려 흥미”
여성 예매율이 남성보다 높아
2030관객은 부모와 함께 관람
‘흥행 보증’ 근현대사 팩션영화
역사적 사건 정공법으로 다뤄
실존 인물 연상케해 더 와닿아
빠른 속도·몰입감에 ‘입소문’
선악관계 명확, 영화적 재미 커
혈압·심박수 SNS 인증 유행도
김성수 감독 :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질까 모르겠어요.
기자 : 영화에 나오는 인물과 실제 인물을 맞춰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김성수 감독 : 그렇게 될까요…. 이게 아무래도 진지한 역사물이라서.
기자 : 영화를 보면 거꾸로 역사에 관심이 생길 것 같아요. 몰랐던 사람들을 찾아보고, 돌려보지 않을까요.
김성수 감독 : 어휴, 그렇게 되면 최고죠. 사실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죠.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하기 전인 10월 무렵 만난 김성수 감독과의 대화다. 이날 기자는 영화의 예고편을 먼저 봤다.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의 민머리가 보였고, 군인 아저씨들이 가득 나왔다. 칙칙했지만 힘이 있었다. 저건 누구죠? 등장하는 많은 군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12·12 군사반란’이란 실제 사건을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에 맞춰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극장가엔 악재가 가득했다. 천만 감독, 천만 배우도 힘을 못 썼다. 2030세대가 극장을 찾지 않는다는 건 진리로 통했다. 그런데 ‘서울의 봄’은 크리스마스 이브,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5일까지 누적 관객 1073만 명을 기록해 ‘범죄도시3’(1068만 명)를 넘어 올해 최고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비(非)시리즈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은 것 모두 2019년 ‘극한직업’·‘기생충’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 이후 척박했던 극장가에 ‘봄바람’을 일으킨 ‘서울의 봄’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놀랍게도 개봉 전 제작진이 기대했던 ‘행복회로’가 모조리 맞아떨어진 덕분이고, 불안 요인이 오히려 흥행 요인이 된 반전 덕분이었다.
◇‘코로나19 강점기’ 이후 최초 비시리즈 천만 영화
‘범죄도시2’(1269만), ‘아바타:물의 길’(1080만), ‘범죄도시3’(1068만), 그리고 ‘서울의 봄’의 공통점은 모두 코로나19 시기 이후에 개봉한 천만 영화란 것이다. ‘서울의 봄’을 제외하곤 모두 전편의 흥행으로 관객들의 검증이 끝난 시리즈물로 개봉 전부터 흥행이 예상됐던 ‘흥행 금수저’들이다. 그와 비교하면 ‘아수라’로 뒤늦게 화제를 모으긴 했지만, 전성기가 지났단 평가를 받던 노장 감독, 40·50대 아저씨들이 우르르 나오는 출연진, 중장년층에겐 너무 익숙하지만, 청년층에겐 생소한 ‘12·12 사태’, 여성층이 공감하기 힘든 군대 이야기란 불안 요소들이 모인 영화 ‘서울의 봄’은 ‘흥행 흙수저’로 보였다.
그런데 불안 요소가 오히려 흥행을 이끌었다. 2030이 흥행을 주도하며 오히려 부모 세대를 이끌었다. 22일 기준 CGV 예매앱 관객 연령별 비율은 30대가 29%로 가장 높고, 20대(24.5%), 40대(24.1%) 순이다. 대부분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여성(53.2%)이 남성(46.9%)보다 많다. 영화를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의 최은영 이사는 “20·30대가 먼저 움직여줬고, 중장년층을 이끌고 오면서 세대 간에 서로 이야기하는 풍속도가 만들어졌다”며 “영화에 워낙 군인들만 나와서 계급이나 군대 문화에 생소한 여성들이 관심을 가질지 걱정했는데, 오히려 재밌어했다”고 말했다.
◇근현대사 다룬 팩션 영화 불패
비시리즈물이지만, 사실 ‘서울의 봄’엔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있었다. ‘12·12 사태’를 몸으로 겪은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교과서로만 배운 2030세대도 영화의 주요 인물인 전두환, 노태우를 모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그 어떤 시리즈물보다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더구나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다룬 ‘팩션(Fact+Fiction)’ 영화는 흥행 타율이 높은 편이다.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를 줄 세워보면 ‘국제시장’(1426만), ‘택시운전사’(1218만), ‘변호인’(1137만), ‘1987’(723만), ‘화려한 휴가’(685만) 등 줄줄이 나온다. ‘서울의 봄’과 타임라인이 겹치는 ‘남산의 부장들’(475만)은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 흥행 1위였다.
근현대사를 다루는 영화가 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현시대와 동떨어지지 않아 시의성을 가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임진왜란을 보며 느끼는 슬픔보다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영화의 결말을 바라볼 때의 답답함이 더 크게 와 닿는다는 얘기다. 더 나아가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오늘날의 한국을 보다 생생히 그려낸다는 점도 있다. 현재 대한민국을 다룰 때보다 제약이 적으니 오히려 정공법으로 사건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의 봄’은 이전의 어떤 영화들보다 직접적으로 실존 인물을 묘사했고, 블랙코미디로 우회하지도 않았다. 전두광, 노태건뿐 아니라 이들에 대항했던 수많은 군인은 검색하면 금방 실존 인물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일대일 대응이 됐다. 일례로 배우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은 조역이지만, 모티브가 된 김오랑 중령과 그 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화제가 됐다. 최 이사는 “실존 인물이 연상된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웠는데, 관객들이 한 명 한 명 이야기를 찾아보고 조명된 것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사실 감독님이 오 소령의 최후 장면은 따로 독립된 영화처럼 만들었어요. 어느 정도 관심을 기대는 하신 거죠. 그런데 이렇게나 조명될 줄은 몰랐다며 기뻐했어요.”
◇입소문 날 만한 훌륭한 장르 영화
역사적 의미만 가졌다면 이 정도로 흥행하진 못했을 것. ‘서울의 봄’의 미덕은 역사적 사실에 매몰되지 않고 영화적 재미라는 본분에 충실했단 점이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나 “몰입감이 좋았다”는 호평이 많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선악이 확실히 구분되고,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장르 영화의 쾌감이 결국 관객의 마음을 열었다.
대중은 무엇보다 돈값 하는 재밌는 영화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더구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훌륭한 영화란 타이틀이 씌워지며 각종 챌린지가 유행했다. 영화를 본 젊은 관객들은 스트레스 지수, 혈압, 심박수 등을 SNS에 인증했고, 유튜브에는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분석한 내용을 담은 ‘서울의 봄 관람 전 필수 시청 영상’ 콘텐츠들이 올라왔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부인에게 밤마다 ‘데이트 강간’ 약물 준다는 영국 장관
- 창업 7개월 만에 4000억 대박 친 25세 천재여성의 정체
- “압사당할 거 같다” 성탄 이브, 명동에 10만 명 몰렸다
- 김종인 “한동훈, 윤석열처럼 상명하복식으로 정치하면 실패”
- ‘남태현과 마약’ 서민재 “性비하 고통…교사 母 직업 잃어”
- 아파트 화재에 0세, 2세 아이 안고 뛰어내린 부부…아빠만 홀로 숨졌다
- 이준석, 27일 거취 기자회견…끝내 ‘탈당’ 결행하나
- 코로나19 새 변이 비상…전세계 확진자 한달간 52% 늘어
- 성탄절의 비극…서울 관악구 다세대주택서 부부 시신 발견
- 여자 ‘눈물 냄새’만 맡아도 남자 ‘이것’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