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로 현주엽 효과를 봤던 그 시절 SK

김종수 2023. 12.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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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신인선수 드래프트 돌아보기(28)] 외전 / 각팀별 1순위 영향력은? ①

 

서울 SK(이전 청주 SK)


1998년 첫 신인드래프트 1순위의 주인공은 SK였다. 해당 선수의 무게감도 묵직했다. '매직히포'라는 별명으로 고교, 대학 무대를 휩쓸었던 현주엽(48‧195cm)이 드래프트에 나왔고 SK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순위 지명권을 그에게 행사했다. 당시 여러 신문에서는 ‘하마 잡았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안준호 감독이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도배된바 있다.


한창 농구 인기가 좋았을 때이기도 했고 현주엽 개인의 스타성도 무척 높았던지라 남달리 뜨거운 시선이 쏟아졌다. 현주엽은 매직히포, 하마 등의 별명 외에 ‘한국의 찰스 바클리’로 불리기도 했다. 파워포워드를 보기에 단신인 언더사이즈 빅맨이지만 듬직한 체격과 몸무게 그리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를 통해 단점을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거기에 스몰포워드 역할도 어느 정도 가능할 만큼 슈팅이 안정되어있어 내외곽을 오가며 득점을 올리는 플레이가 가능했고 거기에 더해 패싱게임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실상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어지간한 토종 센터에게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던 것은 물론 비슷한 사이즈의 외국인선수와도 어느 정도 매치업이 가능했을 만큼 힘 자체가 무척 좋았다.


기술과 힘에 더해 운동능력 또한 수준급이었다. 큰 덩치가 무색할 만큼 포지션대비 탄력과 스피드가 좋았던지라 아마 시절부터 화려한 하이라이트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힘과 드리블을 바탕으로 골밑까지 파고든 뒤 스핀무브를 통해 수비수를 따돌린 후 레이업슛, 뱅크슛 등으로 득점을 올리는 패턴은 그의 시그니처 무브 중 하나였다.


돌파를 들어가다가 순간적으로 멈춰서서 쏘는 미드레인지 점퍼도 위력적이었으며 빈틈이 보인다 싶으면 덩크슛도 과감하게 찍어댔다. 덩크슛을 시도하는 선수가 많지않던 시절인지라 현주엽의 파워 덩크는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SK 입장에서는 첫 드래프트가 1998년이라는 점이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연세대학교 농구선수들에 대한 우선 지명권을 통해 서장훈(49‧207cm)이라는 최고 센터를 보유한 상태에서 현주엽까지 품에 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93학번 선수들부터 드래프트가 시작되었고 SK가 원년부터 리그에 참여했다면 1순위가 유력한 서장훈은 몰라도 현주엽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SK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운대가 맞아 떨어지면 역대급 1순위 후보 둘을 품에 안는게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상의 국가대표 주전 4, 5번을 모두 가지고 있었음에도 시너지효과는 미비했다. 외국인선수 2인 출전이 가능했던 시대임을 감안했을 때 그냥 패스만잘 돌려주는 가드만 있어도 무적의 베스트5가 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않았다.


그정도 가드조차 없기도 했으나 포지션별 밸런스 및 역할분담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조직력이 강한 팀들에게 덩치 큰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단신 외국인선수로 팀 던컨과 웨이크포레스트 대학 시절 콤비로 명성이 높았던 한국계 혼혈가드 토니 러틀랜드(48·187cm)까지 데려왔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안준호에 이어 2대 사령으로 부임한 최인선은 현주엽, 서장훈 라인을 놓고 큰 결단을 내린다. 이에 대해 최인선 전 감독은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타팀 사령탑들이 부러워하는 선수가 둘이나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둘중 한명을 선택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가만히 지켜보니 두 선수간 알력다툼도 있어 보였고 이래저래 공존이 쉽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외국인선수까지 있는 상황에서 좀더 매끄러운 라인업 구성이 필요했다“고 말한 바 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SK는 최 전감독의 의중을 십분 반영해 현주엽을 다음해 1순위 조상현(47‧189cm)과 맞트레이드 했다. 트레이드가 이뤄졌을 때만 해도 ‘조상현을 현주엽과?’라며 놀라움 섞인 반응이 많았다. 대학 무대에서 슈터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조상현도 충분히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현주엽이 가지는 이름값의 무게감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상현 영입으로 SK는 완벽한 퍼즐이 완성됐다. 서장훈, 재키 존스의 트윈타워로 10개구단 최강 포스트가 완성된 가운데 단신 외국인선수 로데릭 하니발이 1~3번을 오가며 공수에서 전천후로 활약해줬다. 신인 야전사령관 황성인과 조상현은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오픈찬스에서 외곽슛만 제대로 쏴줘도 충분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결과 또한 우승이었다. 1순위 현주엽이 우승을 이끌지는 못했으나 그를 통한 트레이드로 우승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초창기부터 포인트가드 때문에 고생했던 탓이었을까? 한동안 SK는 상위지명권을 가드를 뽑는데 올인하는 모습이었다.


1999년 황성인(3순위), 2000년 임재현(2순위)등 해당년도 최고 가드 자원을 뽑으며 확실한 야전사령관 확보를 노렸으나 결과적으로 둘다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했다. 활동량 좋고 공격력까지 나쁘지 않은 선수들이었지만 리딩가드보다는 단신 슈팅가드에 가까웠다. 답답했던 SK의 혈을 뚫어줄만한 선수들은 아니었다. 실망한 팬들 사이에서 '황봉사', '임봉사'라는 말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드디어 원하던 특급 퓨어 포인트가드를 얻게된 것은 2007년이었다. 동아고 시절부터 천재 포인트 가드로 불리며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으로 이어지는 '6년 가드설'을 잇는 천재 가드의 출현이 아니냐는 기대까지 받았덤 김태술(39‧180c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당시 드래프트는 역대급 풍작 드래프트로 불린다.


박상오, 신명호, 김영환, 함지훈 등 쟁쟁한 선수들이 쏟아져나왔다. 특히 혼혈선수 이동준과 대학리그 최고 포워드로 명성이 자자했던 양희종은 1순위 후보로 꼽히던 선수들이었는데 야전샤령관에 목이 말랐던 SK는 10년만에 찾아온 1순위 픽을 주저없이 김태술을 지명하는데 선택한다.


역대급 유망주 가드를 뽑게 된 SK는 KCC로 간 임재현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곧바로 주전 포인트 가드로 김태술을 기용하였고, 그 결과 오랜만에 6강 플레이오프 무대까지 밟게 된다. 김태술 또한 평균 10.7득점, 7.3 어시스트, 1.7스틸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신인왕에 등극한다. 하지만 이전 1순위 현주엽이 그랬듯 김태술 또한 SK와의 동행이 길지는 못했다.


우승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SK는 2008~09 시즌 MVP 주희정을 영입했고, 트레이드 카드로 김태술을 내주게 된다. 이후 SK는 2012년 10월 드래프트 때 1순위로 중앙대 센터 장재석(32 203.4cm)을 지명하지만 크게 의미는 없었다. 박상오의 사인 앤 트레이드 당시 SK의 1라운드 우선 지명권이 KT로 넘어가 실제로는 장재석이 KT로 입단했기 때문이다. 

 


장재석이 기대치에 비해 부진해서 그렇지 국가대표급 센터로 성장이라도 했다면 SK 입장에서는 두고두고 땅을 칠 수도 있던 순간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SK는 1순위 지명권을 얻지 못했다. 어찌보면 드래프트 운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않다. 어지간한 1순위 부럽지 않은 2순위 지명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임재현을 시작으로 노경석, 김민수, 김선형, 최부경, 최준용 등을 배출하며 강호 SK의 근간을 만들어냈다. 김선형은 명실상부한 SK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최부경, 최준용(현 KCC) 또한 통합 우승 당시의 주역이다. 김민수가 그랬듯 최부경 또한 원클럽맨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SK=2순위’라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노경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지간한 1순위 못지않은 선수로 활약했고 활약 중이다. 심지어 타팀에서 넘어와 자리잡은 베테랑 슈터 허일영 마저 2009년 2순위(당시 대구 오리온스) 출신이다. 10개구단 중에서 2순위와 가장 인연이 깊은 팀이 바로 SK라고 할 수 있겠다.


직접적인 1순위는 아니지만 SK 1순위 역사에서 '빅뱅' 방성윤(41‧195cm) 역시 빠트릴 수 없는 인물중 한명이다. ‘덩치 큰 문경은’으로 불리며 역대급 슈터이자 스코어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그는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KTF 매직윙스에 지명되었다. 하지만 방성윤은 부산행을 원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수도권팀을 선호했다.


결국 KTF는 SK로부터 조상현, 황진원, 이한권을 받고 방성윤(지명권)에 더해 정락영, 김기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방성윤은 대형 슈터로 불릴만한 능력과 멘탈을 가진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워낙에 크고 작은 부상이 많았고 경기에 나서지 못할 때가 부지기수였으며 NBA에 대한 갈망까지 커서 G 리그를 오가는 등 비싼 대가를 치르고 데려온 만큼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 정리: 현주엽, 김태술, 장재석까지 3번의 1순위가 있었지만 해당 선수가 직접적으로 우승에 관여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단, 현주엽과 바꾼 타팀 1순위 광주 나산의 조상현이 첫 우승에 공헌했다. 현주엽, 김태술 모두 동행이 짧았으며 장재석은 이전 박상오의 사인 앤 트레이드로 인해 드래프트 당시부터 지명권은 사실상 KT에 있었다.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부산 KTF 1순위 방성윤은 기대는 컷지만 윈윈하는데는 실패한다.
 


서울 삼성(이전 수원 삼성)

1999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 부럽지 않은 신인 강혁을 5순위에 뽑았던 삼성이지만 첫 두번의 드래프트에서 1순위는 커녕 2순위조차 잡지 못했다, 성적이 좋지 못했음에도 드래프트 운까지 별로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 드래프트에서 드디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최대어인 고려대 파워포워드 이규섭(46‧199cm)을 품에 안았다.


1999~00시즌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했음에도 1순위를 얻었다는 점에서 행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다. 역대 드래프트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같은 1순위 지명권이라도 어느 해에 얻었느냐가 무척 중요하다. 때로는 흉작 드래프트 1순위보다 황금 드래프트 4순위가 나을 떄도 있다.


2000년 당시에는 대다수 전문가나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이규섭을 부동의 1순위로 평가했고 그로인해 삼성은 1순위 지명권을 받기 무섭게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나마 이규섭의 1순위에 변수가 될 수 있던 선수로는 중앙대 야전사령관 임재현이 있었지만 이미 삼성에는 주희정, 강혁이라는 걸출한 가드라인이 완성되어 있었다. 반면 주전급 파워포워드는 없었던지라 이규섭은 그야말로 최상의 퍼즐이었다.


당시 삼성은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했다. 전천후 포워드 아티머스 맥클래리와 화려하지는 않지만 듬직한 센터 무스타파 호프 두 외국인선수가 포스트를 듬직하게 지켜주는 가운데 앞선에는 주희정, 강혁이라는 빠르고 에너지 레밸 넘치는 젊은 가드라인이 완성되어 있었다. 외곽에서는 국가대표 슈터 문경은이 든든하게 저격수 역할을 해줬다.


거기에 다재다능한 4번 이규섭의 합류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큰 신장과 탄탄한 체격을 앞세워 수비 등 궂은일을 잘해준 것을 비롯 내와곽을 오가며 공격에서도 한몫 거들었다. 수비 범위가 넓으면서도 외곽슛까지 갖추고 있어 활용도가 높았다.


평균 12.7득점, 4.7리바운드의 준수한 개인 성적에 팀 성적까지 좋았던 이규섭의 동년배 경쟁자는 사실상 없었고 신인왕 또한 그의 몫이었다. 이규섭은 선수 생활의 전부를 삼성에서 보낸 원클럽맨이지만 중간에 위기도 있었다. 병역의 의무를 마치려 군에 입대한 사이 팀에서 서장훈을 영입한 것이다.


서로간 플레이 스타일도 달라서 선수 각자만 본다면 이규섭, 서장훈은 괜찮은 4, 5번 라인 형성이 가능했다. 하지만 프로 무대는 외국인선수 제도가 있다. 팀 성적에 끼치는 영향력도 그렇고 외국인선수 중심으로 팀전력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포스트를 지키는 주축은 외국인빅맨과 서장훈이었으며 그로인해 이규섭의 입지가 애매해졌다.


사실 당시 이규섭의 실력이라면 어지간한 팀으로 가도 대부분 주전 4번으로 뛰는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규섭의 선택은 슈터로의 전환이었다. 어찌보면 이는 모험이었다. 본래부터 외곽슛에 일가견이 있기는 했지만 옵션중 하나인 것과 전문 슈터는 큰 차이가 있다. 단순히 먼 거리에서 슛을 더 많이 쏘고 안 쏘고가 아닌 외곽 위주의 플레이, 오프더볼 무브, 매치업 상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4번으로 뛸 때와는 큰폭의 변화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이규섭은 성공적으로 3번으로 전향하게 된다. 2005~06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평균 14.8득점으로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한다. 신인 시절 부상으로 챔피언결정전을 제대로 뛰지 못한 한을 푸는 순간이었다. 이규섭의 슈터 전환에 대해서는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대부분 팀 입장에서는 이규섭 정도의 사이즈를 가진 선수가 내외곽에서 고르게 활약해주는게 더 팀에 도움이 된다. 단순히 슈터로만 쓰기에는 사이즈와 다른 재능이 아깝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규섭은 4번 포지션 선수가 선수 생활 중간에 슈터로 전환에 성공한 보기 드문 사례를 남겼고 그런 선택으로 인해 삼성에서 흔치 않은 프랜차이즈 스타로 커리어를 마칠 수 있었다.

 


이규섭 이후 삼성은 오랜시간동안 1순위 지명권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2년 연속으로 1순위 지명권을 차지한 것이다. 어찌보면 엄청난 기회였다. 역대사례를 돌아봐도 연속으로 1순위를 차지한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이전 안양 KGC(현 정관장)같은 경우 그러한 행운을 디딤돌 삼아 강팀의 초석을 다진 바 있다.


삼성에게는 그런 엄청난 흐름이 밀려오는 듯 했다. 삼성의 선택은 차민석(22‧199.6cm)과 이원석(23‧207.5cm)이었다. 삼성은 아마시절부터 다재다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KBL 첫 고졸 1순위 차민석이 앞서 고졸신화를 썼던 송교창처럼 크기를 기대하고 있고 큰키에 잘달리는 이원석에게는 ‘제2의 김주성’을 바라고 있다.


당시 뒷순번에 그들 못지않은 평가를 받은 선수들이 있었지만 삼성은 길게보는(?) 관점에서 차민석과 이원석의 성장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선택을 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민석의 다재다능함은 프로에 와서는 확실한 장기가 하나도 없다는 혹평으로 바뀌고 말았다.


전천후 장신 3.5번이 기대치였으나 결정적으로 슛에 약점을 보이며 포지션이 애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빅맨으로서 골밑에서 활약할 만큼 운동능력이나 파워가 돋보이지도 않는다. 팀에서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차민석의 색깔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확실한 성장 방향 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이원석같은 경우 차민석에 비해서는 다소 나은 상황이다. 장신에 잘 달릴 뿐만 아니라 슛거리도 길어서 스트레치 빅맨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삼성에서 가장 높은 트레이드 가치를 가졌다는 평가다. 하지만 삼성 팬들은 아쉽기만 하다. 그보다 뒷순번에서 뽑힌 하윤기(24‧204cm)와 이정현(24‧187cm)이 너무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윤기는 김종규 등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 주전 센터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으며 이정현 또한 KBL 역사에 한획을 그은 동명이인 선배 이정현 못지않은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국내를 대표하는 듀얼가드 중 한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모습이다. 이원석이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뒷순번 동기들이 너무 잘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고 있는 부분이 크다.


차민석 대신 박지원(25‧190.8cm), 이원석 대신 하윤기, 이정현 등을 뽑았다면 나았다는 의견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결과론일 뿐이다. 더불어 결과 역시 아직은 확실히 나온 것도 아니다. 위에 언급한 선수들은 모두 프로에서 커리어를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영건들이다. 당장은 우열이 갈리고 있지만 적지않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누가 앞에 있을지 장담하기 쉽지 않다. 지금은 밀리는 듯 보여도 차민석, 이원석 또한 충분히 상황을 반전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 정리: 3번의 1순위 선수를 뽑았으며 모두 색깔은 다르지만 파워포워드였다. 첫 번째 1순위 이규섭은 팀에 우승을 안겨줬으며 프랜차이즈 스타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구단은 차민석, 이원석에게도 그러한 부분을 바라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부진한 팀 성적과 함께 팬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농구카툰 크블매니아(최감자 그림/케이비리포트 제작), 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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