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주택시장 관심끊는 실수요자…'풉 증후군' 발동했나[박원갑의 집과 삶]
(서울=뉴스1)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연구위원 = 부동산시장이 급랭하고 있다. 불과 서너 달 전 만해도 집을 사기 위해 애쓰던 수요자들은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마치 집을 안 사기로 약속이나 한 듯이 말이다. 시장이 생각보다 빨리 얼어붙고 있다. 아마도 스마트폰이 삶의 표준이 되는 포노사피엔스 시대의 부동산 시장 단면이 아닌가 싶다.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빠른 속도로 받아보니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이 비슷해지기 마련이다. 생각이 비슷해지면 행동도 서로 닮는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집단 공간에서는 나보다 남을 더 신경 쓴다. 집이 거주보다 투자의 대상일 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사실 거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집 구매는 자신의 형편이나 자금이 중요하지 남을 크게 의식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각개전투다. 그러나 시장에서 투자자에게는 자신의 독립적인 의사결정보다 시장 대다수가 어떤 의사결정을 할지가 훨씬 중요하다. 한마디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즉 옆 사람의 행동에 눈과 귀가 쏠려 있어 ‘남 따라 하기’로 이어지기 쉽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들도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고, 모방의 무한 연쇄작용 끝에 거대한 무리짓기(군집행동)가 만들어진다. 수요자들은 작은 자극에도 휘둘린다. 부동산 시장이 확 달아오르다가 어느 순간 돌변해서 얼어붙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여러 연구논문을 보면 부동산 시장에서 군집행동은 주로 상승기에 나타난다. 집값이 하락할 때보다 오를 때 수요자의 불안감이 커진다. 지금이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영원히 내집마련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불안감은 독감보다 빠르게 주변으로 전염되는 특성이 있다. 이럴 때 조급함과 초조함이 촉발되고 무리와 같이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 결국 매수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상품별로는 재건축 아파트에서 상대적으로 더 강한 ‘무리짓기’가 나타난다. 실제로 서울지역 아파트 경과 연수로 볼 때 21~30년 이하 혹은 30년 초과 노후주택에서 군집행동이 발생했다. 재건축은 실거주보다 투자 목적으로 사는 경우가 많아 떼를 지어 구매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 하락기의 군집행동은 부동산 시장에서 잘 발견되지 않고 주식시장에서 자주 엿볼 수 있다. 즉 중·소형주나 코스닥 주식을 중심으로 하락기에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투매라는 방식으로 군집행동이 나타난다. 요컨대 주식은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 공포로, 아파트는 가격 상승에 따른 투자 열광으로 군집행동이 분출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요즘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상승기보다 군집의 강도가 세지 않을 뿐 하락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보가 동시다발적으로 전달되는 스마트폰 시대의 풍속도라고나 할까. 집값 하락이라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니 매수를 보류하려는 집단적 경향이 나타난다. 지금 집을 사면 너무 비싸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몸을 사리는 ‘풉(FOOP, fear of overpaying, 과매수 공포)’ 증후군이 수요자들 사이에서 일제히 발동하는 것이다. 일종의 생존본능이 작동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부동산 시장에서 군집행동은 매수자에게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서 군집행동인 투매현상이 매도자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매도자들은 손실회피 성향이 강해 매물을 함께 던지지 않는다. 침체는 매수자의 ‘변심’에서 비롯된다. 매수자의 심리가 냉각되니 거래절벽으로 이어진다. 지금 집을 사면 손해볼 지 모른다는 걱정에 매입을 꺼린 결과다.
거래량은 매수자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지표다. 요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월 2000건대에 머물고 있다. 매수자의 심리가 바닥권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시장에는 추세라는 게 있다. 한번 추세를 잡으면 어느 정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시장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자. 미래를 예단하기보다는 장바닥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h991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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