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지 않은 도둑" 나무에 더부살이
나무의 영양분을 뺏어먹고 사는 영리하고 치명적인 기생식물
산에 피는 수국은 산수국, 산에 자라는 대나무는 산죽. 하지만 참나무에 자라는 겨우살이는 참나무겨우살이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으로 4,500여 종의 기생식물이 있는데, 그중 겨우살이 종류는 1,600여 종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름 그대로 '겨우살이Viscum album var. lutescens'가 대표적이다. 제주도와 남부지역의 낮은 지대에서 주로 상록수에 기생하며, 다소 뻣뻣하며 넓적한 잎을 가진 참나무겨우살이Taxillus yadoriki는 완전히 다른 종이다.
겨우살이는 전국의 높고 깊은 산에서 신갈나무 같은 참나무류와 밤나무, 배나무, 오리나무, 마가목 등의 낙엽성 나무에 주로 기생한다. 키 큰 나무의 높은 가지에 반다육성의 상록성 잎들이 헝클어진 가지 다발 위에 수북이 피어 있어, 새 둥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잎은 마주나며, 다소 길쭉한 타원형으로 앞뒤가 똑같은 녹색을 띠고 있다. 기생식물이면서 잎도 무성하고, 화려한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만들고, 심지어 여러 해 동안 살아가는 나무(관목)이기에, 겨우살이를 가장 성공한 기생식물이라 말한다.
나뭇잎 떨어졌을 때 눈에 잘 띄어 이름 유래
겨우살이는 겨울에만 사는 식물이 아니다. 아마 낙엽 진 겨울에 그 존재가 선명하게 드러나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리라. 종에 따라서는 기주나무(겨우살이가 기생하는 나무)의 잎 모양을 흉내 내기도 해서 그 존재를 알아채기가 더욱 어렵다. 대부분 상록성이지만,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꼬리겨우살이Loranthus tanakae는 드물게 낙엽성으로, 겨울이 되면 기주식물과 함께 잎은 떨어지고, 영롱한 열매만이 꼬리처럼 수북하게 달린다.
겨우살이가 잎을 가지고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에 반半기생식물이라 우기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기주나무로부터 물은 물론 인산, 질소, 칼슘, 칼륨 등 주요 양분과 많은 양의 탄수화물까지 가져가기에 그냥 기생식물이라 해도 억울하지 않다. 겨우살이 잎은 기주나무 잎보다 훨씬 많은 질소와 영양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몸체에 존재하는 탄소의 절반 이상이 기주나무로부터 가져간 것이다.
겨우살이의 영어 이름 미스텔토mistletoe는 '똥'이라는 뜻의 'mistel'과 '나뭇가지'라는 뜻의 'tan'이 합쳐진 말이다. 겨우살이 열매를 먹은 새들이 나뭇가지에 배설물을 남기면서 씨앗을 퍼뜨리는 데서 유래했다.
겨우살이 꽃은 잎이 무성한 봄부터 여름 동안 피어난다. 나뭇잎이 무성한 시기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겨울에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구슬 같은 열매 다발은, '참 많은 꽃을 피웠었구나' 새삼 감탄하게 만든다. 꽃은 꿀을 다량으로 가지고 있어 새들이 꿀을 먹기 위해 이 꽃 저 꽃 속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진다.
겨우살이의 열매는 점액성 비신Viscin이라는 물질로 코팅되어 있는데, 열매를 먹은 새의 배설물에 섞인 씨앗이나, 위에서 입으로 역류된 씨앗이 나뭇가지에 잘 접착되도록 돕는다. 새의 위장을 통과하거나 부리로 비비는 동안 과육의 껍질이 뭉개지고 제거되어, 발아한 싹이 쉽게 과육을 뚫고 나올 수 있게 된다. 겨우살이 열매의 영양가는 그리 높지 않아, 먹을 것이 제한적인 겨울 동안 새들은 많은 양을 먹게 된다.
기주나무에 정착하고 필요한 것을 가져오기 위해 겨우살이는 고도의 기술을 발달시켰다. 나뭇가지에 달라붙은 흡기성 줄기(하스토리아haustoria)는 그 선단부에 나무의 껍질을 녹이는 미끈거리는 효소를 분비하고, 수피를 뚫은 흡기성 줄기는 나무의 물관부와 체관부 속에서 길게 자란다.
겨우살이는 잎의 기공을 활짝 열어 끊임없이 물을 대기 중으로 내보는데, 이로 인해 기주나무는 토양으로부터 물을 지속적으로 끌어 올리게 된다. 자신의 과도한 물 손실에 대비해 다육성 잎에 수분을 저장하고 있다. 잎이나 줄기, 꽃, 열매 등은 겨우살이 자신의 조직으로 구성되지만, 뿌리조직은 기주나무의 뿌리로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기주나무는 겨우살이가 자라는 가지에 가시, 리그닌이나 수베린 등의 단단한 세포벽을 생성해 겨우살이의 침입에 기계적으로 저항하거나, 테르펜, 페놀성 물질 및 2차대사 물질 등을 사용해 하스토리움의 형성을 억제한다.
겨우살이가 침입한 나무의 이웃나무는 가지의 수피를 두텁게 만들어 자신의 가지에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방지한다. 오랜 공격-방어 관계는 서로를 잘 알게 만들기도 하는데, 겨우살이는 기주나무가 만들어내는 방어물질을 흡수해 자신의 필수물질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겨우살이에 의한 감염은 일차적으로 기주나무에 물과 양분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기주나무는 줄기가 변형되고, 성장과 활력이 감소하며, 목재의 품질과 양이 손상되고, 곤충이나 다른 병원체의 공격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져 수명이 줄어든다. 역설적이게도 기주나무의 활력이 좋아 무성하게 자란 나뭇가지가 그늘을 드리우면, 겨우살이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지만, 기주나무가 천천히 자라면 겨우살이도 오랫동안 기생할 수 있다.
생태학적으로 기생이라는 생물 관계는 기주(숙주) 생물이 죽으면 기생 생물도 죽는 관계다. 잘 알려진 완전 기생식물인 새삼보다 겨우살이는 더 독하게 느껴진다. 초본인 새삼에 비해 목본인 겨우살이는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 가지 혹은 기주나무 전체가 죽어야 떨어져 나간다는 점이다.
물론 나무의 줄기나 가지에 자라는 식물은 겨우살이만은 아니다. 때로는 이끼나 지의류가, 때로 고사리나 고란초가 자라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의 뿌리를 가지며, 나무의 줄기나 가지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무껍질에 단순히 부착해 자라므로, 이들을 착생식물Epiphyte이라 한다. 뿌리를 땅에 두고 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과는 구분되지만, 넓게 보면 덩굴식물도 착생식물이다.
기생식물과 달리 착생식물은 빛, 공기 중 수분, 빗물에 녹은 영양분, 상층에서 떨어지는 유기물 부스러기 등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는다. 자신의 고유한 뿌리, 줄기, 잎을 가지고 있는 고사리는 때로 나무 그늘에 가려진 빛을 찾아 높은 가지에서 자란다.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없어 온몸으로 수분을 흡수하는 이끼는 땅, 바위, 기와 틈 등 물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랄 수 있지만, 두터운 수피에 고인 영양 가득한 물에서 발아하기가 더 수월할 것이다.
겨우살이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착생식물이라고 기주나무에 전혀 무해한 것은 아니다. 두터운 이끼 층에 고이는 물과 이끼 낙엽, 분해된 유기물질 등은 공기 중의 곰팡이균이나 세균 등이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며, 이들에서 피어난 버섯 등은 연쇄적으로 다른 곤충이나 무척추동물을 유인해서 나무의 평화를 깨뜨릴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겨우살이의 시작도 착생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빛 차단당한 작은 식물들의 생존 방식
유럽인들의 겨우살이에 대한 시선은 상당히 낭만적이다. 문 앞에 걸어두면 행운을 가져다주고 악령을 물리치는 신비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으며, 사랑과 우정, 믿음의 표시로 사용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겨우살이에 대한 유럽인들의 풍습을 꺾지 못하고 크리스마스 장식으로까지 받아들였다.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겨우살이 아래서의 키스Kissing under the mistletoe'는 겨우살이 낭만의 백미다.
우리의 겨우살이에 대한 민속은 좀 더 절박한데, 혹독한 겨울 동안의 푸른 생명성이 사람들에게도 이롭기를 기원했다. 겨우살이 가지나 잎의 많은 영양소는 면역기능을 올려 주고, 암세포를 억제하며, 현대인의 다양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한 독이 없고 순해서 사람의 체질도 따지지 않고, 말린 가지를 차로 끓여 마시기만 해도 약성이 돋는다고 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산림에서 겨우살이 채집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목재를 생산하는 입장에서 겨우살이 발생은 관리의 대상이 되지만, 자연스런 숲에선 그 자체가 중요한 생물자원이며, 나름의 생태적 의미도 있다. 겨우살이가 붙는 나무는 대개 그 인근에서 가장 크고 세력이 좋은 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겨우살이에 의해 한 개체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다. 그렇게 겨우살이는 자연을 견제한다. 착생식물 역시 줄기가 굵고 수피가 두터운 오랜 나무에 자라기에 나무의 쇠퇴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있다. 꽃부터 열매까지, 새들은 겨우살이를 더없이 사랑할 것이며, 민달팽이는 축축하고 푹신한 이끼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기생식물이든, 착생식물이든, 지상을 차지한 나무들에게 빛을 차단당한 식물들이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나무에게 소소한 반격을 가했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일 만하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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