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전기차 무역이 자유? 천만에 '보호'가 지배
2023. 12. 26. 07:30
-보조금 기준으로 생산지 또는 생산 방식 급부상
프랑스가 제정한 녹색산업법은 말 그대로 '그린(green)' 세상을 만들자는 법안이다. '그린'이 산업의 중심이 되려면 탄소 배출은 '억제, 중립, 감축' 가운데 하나를 달성해야 하는데 당장 중립도 어렵다는 점에서 보조금의 초점은 억제에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녹색산업법은 제품을 생산 또는 판매하는 전 과정의 탄소 배출을 엄격히 따져 보조금 지급하거나 아예 주지 않는다. 그리고 녹색산업법 보조금이 대표적으로 겨냥한 항목이 바로 배터리 전기차(BEV)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BEV 보조금 지급 기준을 생산지로 삼았다면 프랑스는 지급 여부를 판단할 때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운송했느냐'를 따진다.
녹색산업법은 크게 6가지 문제를 출제(?)해 각 항목의 점수를 매긴다. 80점 만점에 총점이 60점을 넘으면 합격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여기서 6가지 문제는 ▲자동차용 철강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 ▲자동차용 알루미늄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 ▲기타 원자재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과정의 탄소 배출량 ▲전기차 조립 과정의 탄소 배출량 ▲전기차 운송 과정의 탄소 배출 총량이 그것이다. 각 항목에 점수를 매기고 총점을 계산하는데 당연히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운송 과정에서 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해 프랑스 또는 유럽 내 생산을 늘리라는 것이 프랑스 녹색산업법의 목적이다. 탄소 배출 저감을 명분으로 유럽 내 BEV 시장 보호를 내건 셈이다.
해당 기준으로 탄소 배출 점수를 계산하면 중국, 일본, 한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아예 탈락한다. 그리고 실제 국내 생산, 수출되던 기아 니로 및 쏘울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른바 아시아 3국(중국, 한국, 일본)에서 BEV를 조립하면 프랑스보다 3배 수준의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는데 그 이유는 공장 가동에 필요한 전력을 석탄 및 천연가스 등의 화석연료에 의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외 자동차용 철강과 알루미늄의 탄소 배출량도 중국, 한국, 일본이 많은 것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개별 항목의 탄소 배출량을 줄여도 전체 탄소 점수는 크게 오르지 않도록 설계돼 보조금을 받을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철강의 경우 단위 질량당 탄소 배출 계수가 한국은 1.7인데 반해 프랑스는 1.4로 계산한다. 또한 알루미늄은 한국의 배출 계수가 18.5인데 반해 유럽은 8.6, 북미는 8.5가 적용된다. 한국이 유럽 대비 2배 이상 많다는 게 프랑스의 판단이다. 배터리도 단위당 탄소 배출 계수를 보면 유럽과 미국이 각각 53과 55인 반면 중국은 68, 일본은 67, 한국은 63을 적용한다. 계수가 낮을수록 탄소 배출량이 적다는 뜻이다.
물론 프랑스는 녹색산업법을 제정할 때 중국산 BEV를 직접 겨냥했다. 하지만 중국만 특정할 수 없어 아시아 지역을 기준 삼아 보조금 차등을 선택했다. 심지어 프랑스기업인 한국의 르노자동차코리아 부산공장에서 BEV를 생산, 프랑스에 수출해도 보조금 대상에 들어가지 못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실제 2025년부터 르노 부산공장에서 생산될 폴스타 BEV의 유럽 수출에 빨간 불이 켜지는 형국이다. 폴스타의 유럽 수출에 제약이 생기면 이를 대체할 마땅한 BEV 시장이 아직은 없어서다. 게다가 프랑스의 뒤를 따라 이탈리아도 비슷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심지어 유럽연합도 최근 중국산 BEV의 유럽 시장 점령에 우려를 표시하며 불공정 보조금이 숨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중국 또한 유럽에서 생산, 중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 부품의 국산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런 갈등의 핵심은 결국 생산지다. 프랑스의 녹색산업법 또한 결국은 1차적으로 프랑스 내 생산을 유도하되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유럽연합 내 생산을 지향하고 있으며 미국의 IRA도 '미국 내 생산(Made in USA)'에 초점을 두되 최소 '북미 생산(Made in North America)'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 기준에 따라 기아 니로와 쏘울이 보조금을 다시 받으려면 결국 유일한 선택지는 유럽 슬로바키아 기아 공장에서 이들 차종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 경우 국내 공장의 생산량이 줄어 일자리 감소는 피할 수 없다.
우려하는 점은 이런 보호 무역 흐름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BEV 산업은 그간 자국의 자동차 브랜드가 없던 나라도 시장 규모와 인구만 충족된다면 새롭게 진출이 가능한 분야여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대표적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자국의 전기차 브랜드를 내놓겠다고 선언했고 베트남과 태국 등에서도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가 나오는 중이다. 그리고 각 나라 정부는 해외 기업의 내연기관 자동차 위탁 생산이 아니라 새로운 전기차 기업을 만들어 시장을 보호해주는 역할에 치중하려 한다.
그래서 이럴 때일수록 한국은 오히려 시장 개방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여전히 국내 완성차 생산의 65% 이상을 수출하는 상황에서 상대국이 장벽을 세우면 어떻게든 생산지를 바꾸지 않고 넘을 방법을 찾는 게 핵심이다. 여기저기서 시장의 '자유'라는 단어가 넘치지만 국제 시장은 '자유'를 점차 외면하고 있어서다. 이런 측면에선 BEV를 최대한 해외로 내보내려는 중국과 입장을 같이 한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다른 점은 장벽이 생겼을 때 이후의 대책이다. 중국은 막대한 규모의 시장이 생산을 뒷받침할 수 있지만 한국은 그럴 수 없다. 올해 한국 땅에서 생산된 410만대 중에서 국내에 팔린 것은 고작 140만대 가량이다. 장벽이 자꾸 세워지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도 부족할 시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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