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 만에 추위 녹아든 '광주의 봄'…전두환 손자 전우원 "5·18 대신 사죄"
[편집자주] 극심한 가뭄에 수돗물 절약 캠페인으로 새해를 연 광주전남은 올해 역시 크고 작은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경찰사회를 뒤흔든 검경브로커 사건은 파장이 확산하고 있고, 사라진 아이들 전수조사를 통해 드러난 영아살해 사건은 지역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교사들의 교권회복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드높았다.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성공, 속도 내는 광주 복합쇼핑몰사업, 광주군공항 이전 진척 역시 굵직한 이슈로 꼽힌다. <뉴스1 광주전남취재본부>는 올 한 해 광주·전남을 뜨겁게 달군 주요 10대 뉴스를 선정해 5일에 걸쳐 나눠 싣는다.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1980년 5월 광주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씨(27)가 43년 만에 광주의 봄을 찾아 할아버지의 죄를 대신 사죄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민주주의를 역행한 학살자'임을 인정하며 전씨 일가 중 처음으로 국립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늦게 와 죄송하다'며 끊임없이 머리를 숙인 전우원씨의 모습을 지켜본 오월 유족들은 '이제라도 와줘서 고맙다'며 그를 끌어안았다.
전우원씨 행보는 3월14일 시작됐다. 당시 미국에서 근무하던 전씨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폭로하면서부터다.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전두환을 '학살자'라 표현했고, 서울 연희동 자택 내부에서 할머니인 이순자가 골프를 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을 올리며 일가의 '비자금' 폭로에 나섰다.
첫 폭로 후 보름 뒤에는 한국에 입국해 3월31일 5·18유족과 피해자 등을 만나 사죄했다.
당시 그는 "할아버지는 민주주의를 역행한 학살자"라고 인정하며 일가 중 처음으로 국립 5·18민주묘지에 참배했다.
이후에도 방송사 인터뷰와 다큐멘터리 촬영 등 비공개 일정으로 몇 차례 광주에 다녀갔던 그가 다시 얼굴을 드러낸 건 5·18기념주간의 서막인 17일 추모식과 전야제에서다.
그는 추모행사에서 오월단체 주요 인사들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 숙인 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당하신 분들께 잘못을 사죄드린다. 제 가족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죄의식을 갖고 잘못을 사죄드리러 온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다같이 기억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며 "이런 자리에 제가 와서 오히려 민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후에도 5·18유가족의 집을 찾아 함께 하거나, 5·18부활제 행사에 참석해 피해자들을 향해 절을 올리기도 했다.
5·18 피해자들과 유가족, 광주시민들은 그의 방문 때마다 전씨를 환영하고 '고맙다'고 말해주며 할아버지의 죄를 대신 사죄하는 손자를 끌어안았다.
이처럼 광주 5·18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사죄를 이어오고 있는 전우원씨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5·18기념재단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만 18세 이상 일반인 1000명 중 67.5%가 전씨의 사죄를 긍정평가했다.
사과 이후 가장 바라는 점으로는 전두환의 비자금 환수에 대한 응답이 28.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5·18 진상규명(21.8%), 피해자의 명예회복(21.5%), 다른 가해자들의 고백과 사죄 유도(18.6%)가 뒤를 이었다.
전우원씨의 5·18에 대한 사죄와 약속에 광주시민들의 마음은 늦게나마 누그러지며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5·18유족과 피해자, 광주시민들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은 그의 행보가 진상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한편 전씨는 현재 상습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 중이다. 지난 22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추징금 266만5000원, 3년간 보호관찰과 120시간의 사회봉사, 80시간의 약물치료 강의 수강도 명령받았다.
법정 출석 후 전씨는 "해외 생활만 23년 넘게 했는데 그 시간에 제가 한국인으로서 본분을 잊고 하면 안 되는 환각제 마약을 사용했다"며 "어떤 이유라도 마약을 사용하면 안 되고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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