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전망] 발 묶인 '재정 버팀목'…경기반등·가계부채 난제
(세종·서울=연합뉴스) 이준서 민경락 민선희 기자 = 새해 한국 경제에서는 경기회복 강도가 관전포인트다.
경기 회복의 엔진은 역시나 '반도체'다. 올해 4분기 들어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자 수출도 플러스로 돌아섰다.
반도체 효과에 힘입어 경기회복세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저성장 굴레'에서 벗어날지, 아니면 지지부진한 '나이키형' 경기회복에 그칠지가 변수다.
다만 거시경제 성장세가 되살아나더라도 체감경기와 직결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정부가 다양한 내수활성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좀처럼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어서다.
가파른 국가재정 악화 탓에 정부가 '지원사격'에 나서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고금리 속에 가계의 소비 여력이 제한된 구조적 한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경제의 폭넓은 온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반도체 훈풍, 서서히 불지만…저성장·내수부진 장기화 우려
일단 반도체에서는 긍정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11월 반도체 수출은 95억2천만달러로, 1년 전보다 12.9% 증가하면서 16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반도체 업황 개선에 힘입어 11월 수출은 두 달 연속 전년 동월 대비 증가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반도체발 훈풍이 경기 전반으로 폭넓게 퍼지지 못하는 모양새다.
11월 제조업 취업자는 1년 전보다 1만1천명 줄면서 11개월째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내수는 고금리·고물가에 짓눌려 개선의 조짐조차 감지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재화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 지수는 전달보다 0.8% 하락했다. 서비스 소비 지표인 서비스업 생산도 같은 기간 0.9% 감소로 전환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6일 "고물가 영향이 기본적으로 있는 상황에서 고금리 영향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게 아닌지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부진이 해외발 전쟁 이슈, 글로벌 긴축기조, 교역량 감소 등 대외 요인에 기인한 측면은 있지만 저출산·고령화, 지지부진한 구조개혁 등과 맞물려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 안팎의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내년 잠재성장률을 2.0%로 예측해 이런 우려를 더 키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0월 기자들과 만나 "인구구조 트렌드를 보면 2% 정도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령화 때문에 점차 더 낮아진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내수 짓누르는 가계부채 …금융안정 '뇌관'
저성장과 더불어 가계부채 문제는 내년도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금리로 부채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내수 소비를 한층 압박하는 것뿐만 아니라, 금융 안정성도 저해할 수 있다.
가계가 짊어진 빚의 규모를 의미하는 가계신용은 지난 9월 말 기준 1천875조6천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2021년부터 기준금리를 3.00%포인트(p) 인상하면서 '영끌족' 등 가계의 이자 부담도 이미 한계수준이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 3분기 말 기준 0.89%로 전 분기(0.86%)보다 0.03%p 올랐다.
한은은 최근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가계대출의 신규 연체는 취약 차주와 비은행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가계와 기업 대출 규모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고금리 환경과 맞물려 향후 금융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리스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부동산PF 부실이 내년부터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앞서 내년 금융산업 전망 보고서에서 "비은행업권은 자영업자 대출, 비아파트나 지방 건설사업장 부동산PF 비중이 높아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부동산 PF대출 연체율은 9월말 기준 2.42%로 6월말(2.17%) 대비 0.24%p 상승했다. 작년 말(1.19%) 대비로는 1.23%p 올랐다. 특히 저축은행 상위 5개사의 PF 연체율은 6.92%에 달했다.
PF 시장 분위기가 악화하자, 대주단 협약을 통한 만기 연장으로 부동산 PF 부실을 이연해왔던 금융당국도 본격적으로 '옥석 가리기'에 나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부동산PF의 키워드는 연착륙, 질서 있는 정리"라며 "정상 사업장은 계속 지원하고, 문제가 있는 곳은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지출 최대한 억제…'경기 버팀목' 사라지나
거시-금융 리스크 상황에서도 정부 재정이 버팀목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임 정부에서 급격히 불어난 재정적자를 최대한 정상화하겠다는 게 현 정부의 입장이다.
정책 기조를 둘러싼 여야 간 적절성 공방과는 별개로, 재정 역할론은 당분간 뒷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의결된 내년도 총지출은 올해 대비 2.8% 증가한 656조6천억원이다.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로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4.9%)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증가율로, 정부지출이 경제 규모가 커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지만, 정부 재정적자는 악화일로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9%로 4%에 근접한 상황이다.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 중인 재정준칙 상한(3%)을 넘는다는 의미다.
국가채무는 1천195조8천억원으로 61조원 늘면서, GDP의 51%에 달하게 된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50.4%(본예산 기준)에서 내년 51.0%로 높아진다.
현실적으로도 야권이 줄기차게 요구하는 추경예산안 편성을 선뜻 수용하기는 어려운 살림살이라는 얘기다.
통화·재정 측면에서 적극적인 지원과 대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보니, 그만큼 내수 활성화와 취약계층 지원의 강도는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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