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전망] 19년만에 의대생 늘어날까…압도적 찬성여론 속 의사 반발 변수
의사단체 '총파업' 운운하며 저항하지만, 국민 여론은 '싸늘'
"의대 증원 더불어 필수·지방의료 강화책 다각적으로 펼쳐야"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새해 벽두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는 2025학년도부터 적용될 의과대학 입학정원의 증원 여부다.
필수·지역의료의 붕괴 위기 속에 국민 여론은 의대 증원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회에서도 여야 없이 정부의 증원 방침에 힘을 싣고 있다.
단순히 의대생을 늘린다고 해서 필수·지역의료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고령화로 인해 미래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해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진단이다.
하지만 집단행동으로 2020년 의대 증원을 막아낸 의사단체들이 이번에도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의 반발을 막아내고 의대 증원을 이룰지, 증원에 성공한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될지 의료계 안팎은 물론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다.
20년 가까이 의대정원 '동결'…필수·지역의료 붕괴 위기
우리나라 의대 입학정원은 1980년대 6개 대학, 800명 수준이었다.
이후 점차 늘어 2000년에는 입학정원과 정원외, 편입학을 모두 합쳐 3천507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에 따른 의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의정(醫政) 협의를 통해 정원을 10% 줄이기로 했다. 이에 2006년 3천58명으로 줄었고, 지금도 같은 규모에 머물러 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에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과 파업 단행에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선진국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자 의대 정원을 급격히 늘리고 있다.
2010년 대비 2019년 의대 졸업생 수는 프랑스 71%를 비롯해 호주(51%), 미국(30%), 일본(18%) 등이 모두 늘었다. 영국, 독일 등은 더욱 파격적인 의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의료 수요 증가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선진국들과 달리, 국내 의대 정원이 20년 가까이 동결되면서 문제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갈수록 줄면서 소아과 병원마다 '오픈런'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도 응급실을 구하지 못해 응급환자가 구급차에서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방 의료원들은 수억원의 연봉을 내걸어도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구하지 못해 지역의료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의대 증원 나선 정부…의협은 여전히 '파업' 운운하며 저항
필수·지역의료의 붕괴 위기로 인한 아우성이 터져 나오자 정부가 전면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10월 국립대 병원장 등과 만나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 조건"이라고 역설했다.
올해 초부터 이어진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했던 의대 증원 논의는 이때부터 급물살을 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대 증원 의사를 천명했고, 정부는 전국 의대를 대상으로 의대 증원 수요 조사를 단행했다. 전국의 40개 의대는 최대 4천명에 육박하는 증원을 희망했다.
의사단체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투쟁 대열을 정비했고, 의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해 찬성표를 얻어냈다.
서울 도심에서 총궐기대회를 열어 '최후의 수단'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총파업'으로 불리는 집단 휴진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2020년 전국의 전공의 등이 집단행동을 벌이며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을 무산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실력 행사를 통해 의대 증원이 수포가 되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싸늘한 국민 여론에 파업은 '글쎄'…"다각적인 필수·지역의료 강화책 펼쳐야"
하지만 의사들이 2020년의 승리를 재현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대체로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우선 의대 증원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18일 보건의료노조가 성인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9.3%가 의대생 증원에 찬성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의대 증원을 지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단일대오를 형성하며 단결력을 과시했던 2020년과 달리 의료계의 분열된 모습도 보인다.
2020년 단체 행동을 주도하며 정부의 증원 추진을 무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전공의들이 이번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아우성치는 지방의 국립대병원과 지방 의료원 등은 의사인력 확충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모습이다.
범의료계대책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최대집 전 의협 회장이 '반대 세력'을 비판하며 지난 14일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내홍'까지 연출하고 있다.
2020년과 달리 정부가 오랜 시간 의사들과 협의하고, 필수·지역의료 정책 패키지를 함께 마련하면서 증원 추진의 명분을 쌓아온 것도 의협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의협 등이 총파업 등 극단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예정대로 내년 초 정부가 전국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국 40개 의대의 바람처럼 4천 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 1천 명 이상의 상당한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필수·지방의료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의대 증원을 통한 의사인력 확충과 더불어, 의사들을 필수·지방의료 분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우선 각 병원들이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해야 하고,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를 인상하는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인상된 수가가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에게 적절한 보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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