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잔나 | 마음까지 데우는 프랑스식 집밥[내 이름 걸고 추천하는 맛집](15)
2023. 12. 26. 07:00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파란대문’
거의 한평생을 수도(首都)에서 살았다. 미국 워싱턴에 살았고, 한국에 와서도 서울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라가 다른 만큼 두 곳은 음식도 천지 차이다.
엄마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고, 아빠는 독일과 폴란드계 미국인이다. 엄마가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음식과 아빠가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음식은 달랐다고 한다. 두 분의 결혼으로 인해 유럽의 서로 다른 음식문화가 우리 집 식탁에서 한데 섞인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가 원하는 음식과 아빠가 원하는 음식은 수시로 달랐다. 그 덕분에 매번 풍성한 식탁 앞에서 뭘 먹을까 선택해야 하는 즐거운 고민에 빠지곤 했다. 게일어(아일랜드 제1공용어)나 독일어, 폴란드어를 할 줄 몰라도 어릴 때부터 아일랜드 전통 음식이나 독일, 폴란드 음식에는 꽤 익숙한 편이었다. 미국을 떠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엄마의 호박파이와 고구마파이, 그리고 그 위에 살짝 녹아 있는 마시멜로가 많이 그립다.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미국학을 전공하던 중 1980년 평화봉사단(The Peace Corps)의 일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국에 왔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취직하고 결혼도 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아이도 둘이나(!) 키웠으니 지금껏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싱글맘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란 게 녹록지 않다. 나 역시 직장생활하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평일 저녁에는 아이들 식사 챙기는 일이 늘 골칫거리였다. 아침에는 직접 구운 토스트나 샌드위치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헐레벌떡 퇴근해 제대로 저녁을 차리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운 좋게도 우리 집 살림을 살뜰히 살펴주시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저녁 식사까지 만들어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나 워킹맘 생활의 큰 시름을 덜 수 있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주 산책을 했다. 봉사활동으로 한양도성 길라잡이를 하며 문화재 자문위원을 맡고 있던 내게 걷기란 ‘누워서 떡 먹기’ 같은 것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3~4시간쯤은 거뜬히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산책하러 나갈까?” 하고 물으면 아이들이 “무서워”라며 농담을 할 정도였다. 주말 산책은 나와 아이들 사이의 오랜 습관이자 암묵적인 관습과도 같았다. 주말이면 나는 아이들하고 동네를 산책하며 터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그동안 걸었던 도성길이나 궁궐길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과정에서 음식이 어찌 빠질쏘냐. 주중에 학교 급식과 아주머니가 만든 한식만 주로 먹던 아이들에게 이국적인 음식을 먹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를 산책하며 가게를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보다는 개성이 넘치는 소규모 개인 식당을 선호하는 편이다. 산책을 하다가 지칠 때쯤 되면 눈여겨봐 둔 음식점으로 향한다. 지금 소개할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립 스테이크’는 그중 한곳이다. 건식으로 숙성시킨 스테이크가 어찌나 맛있던지 그날 이후 나와 아이들은 이 음식점의 ‘찐’ 팬이 되고 말았다. 한국인들에게 스테이크란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다. 뭔가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인들에게 스테이크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고향에서 먹던 집밥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단골이 된 우리는 갈 때마다 셰프 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새 자연스레 서로 안부를 묻는 이웃이 됐다. 몇 년 전 그 셰프한테 내 고민거리를 털어놓은 적도 있다. 당시 고3 엄마였던 나는 수능을 보러 갈 아들의 점심 때문에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베테랑 전업주부들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수능 도시락을 어떻게 싸서 아들 손에 들려보내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상태였다. 그 얘기를 들은 셰프가 흔쾌히 자신이 직접 수능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나서는 것 아닌가. 특급셰프가 정성스레 만든 소고기볶음밥과 파인애플 간식을 들고 수능 시험장으로 들어선 아들은 문제도 잘 풀었다. 흔쾌히 남의 집 아들 수능 도시락을 만들어준 셰프를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특별한 인연을 맺은 ‘립 스테이크’였는데 어느 순간 셰프의 건강 문제로 문을 닫고 말았다. 주말 산책을 할 때마다 그리 허전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곳도 가봤지만 한국에서 먹는 서양 음식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였다. 이탈리아 음식점이 대세였고, 어딜 가나 비슷한 맛이었다. 메뉴도 비슷했다. 이탈리아에 가면 지역마다 정말 다양한 식재료와 메뉴가 있는데, 한국에서 먹는 이탈리아 음식은 거의 동일했다.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그런 서양 음식 말고, 그 식당만의 독특한 맛과 개성을 자랑하는 음식을 우리 가족은 찾고 있었다. ‘립 스테이크’를 향한 그리움이 더 커져만 갔다.
희소식이 들려왔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셰프가 부암동 석파정 건너편에 있는 ‘파란대문’이라는 가게를 지난해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앞치마를 둘러메고 다시 주방에 선 셰프를 보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 가족은 여지없이 또 ‘파란대문’의 단골이 됐다. ‘립 스테이크’가 스테이크 요리 중심이었다면 ‘파란대문’은 프랑스식 집밥 전문이다. 점심, 저녁의 세트 메뉴로 식전 빵인 포카치아, 그린 샐러드, 메인 요리, 와인이나 맥주 혹은 음료수 중 한 가지가 함께 나온다. 메인 요리는 스텍아쉐(흔히 우리가 아는 햄버거스테이크)와 머스타드 디종 소스, 잠봉 스테이크와 처트니 소스, 치킨 스테이크와 치미추리 소스, 해산물 파케리 파스타 등 모두 4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고도 가격은 1만8000원이다. 서울 시내에서 누리는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되도록 인스턴트 소스나 시판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점도 이 식당의 특징이다. 매일 포카치아, 치아바타, 피아디나 3종류의 빵을 구워낸다. 돼지고기를 숙성해 잠봉(돼지다리살로 얇게 저민 햄)을 직접 만든다. 양파와 파프리카를 캐러멜색이 나도록 볶아 졸인 처트니 소스도, 치킨 스테이크를 재울 때 사용하는 치미추리 소스도 모두 주방에서 직접 만든다. 스텍아쉐 요리에는 주로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이지만, 혼자 주방을 보기 때문에 고기 육수로 그레이비 소스까지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머스타드 디종 소스로 대체했다고 한다. 셰프의 고집과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정성 덕분인지 여기서 음식을 먹으면 미국에 살 때 먹던 집밥 느낌이 난다. 건강 문제로 일을 중단했던 터라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셰프는 주방으로 돌아오면서 오래 먹어도 속이 편안한 맛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게 ‘파란대문’의 콘셉트가 됐다. 어떻게 생각하면 맛이 조금 밋밋하다 싶을 수도 있는데,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속이 더부룩해본 사람들은 안다. 고기를 먹은 후에도 속이 편하고, 입안이 마르지 않는 데서 오는 포만감과 안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난 10월 아들이 결혼했다. 예전처럼 매주 셋이 함께 동네 산책을 할 수는 없게 됐다. 딸은 여전히 나와 함께 살고 있어 종종 산책길에 나선다. 굳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가끔 ‘파란대문’에 들러 인사를 건넨다. 그 정도로 익숙한 식당이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래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이 최고란다. 딸은 엄마표 프렌치토스트, 아들은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소울 푸드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어디까지나 그건 아이들 생각이고 엄마인 나로선 남이 만들어준 음식이 가장 맛있다. 이를테면 ‘파란대문’ 음식이 내겐 바로 엄마표 집밥이다.
오수잔나 대성그룹 고문
거의 한평생을 수도(首都)에서 살았다. 미국 워싱턴에 살았고, 한국에 와서도 서울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나라가 다른 만큼 두 곳은 음식도 천지 차이다.
엄마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고, 아빠는 독일과 폴란드계 미국인이다. 엄마가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음식과 아빠가 어린 시절부터 먹어온 음식은 달랐다고 한다. 두 분의 결혼으로 인해 유럽의 서로 다른 음식문화가 우리 집 식탁에서 한데 섞인 셈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엄마가 원하는 음식과 아빠가 원하는 음식은 수시로 달랐다. 그 덕분에 매번 풍성한 식탁 앞에서 뭘 먹을까 선택해야 하는 즐거운 고민에 빠지곤 했다. 게일어(아일랜드 제1공용어)나 독일어, 폴란드어를 할 줄 몰라도 어릴 때부터 아일랜드 전통 음식이나 독일, 폴란드 음식에는 꽤 익숙한 편이었다. 미국을 떠나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엄마의 호박파이와 고구마파이, 그리고 그 위에 살짝 녹아 있는 마시멜로가 많이 그립다.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미국학을 전공하던 중 1980년 평화봉사단(The Peace Corps)의 일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려고 한국에 왔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취직하고 결혼도 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아이도 둘이나(!) 키웠으니 지금껏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싱글맘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이란 게 녹록지 않다. 나 역시 직장생활하며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평일 저녁에는 아이들 식사 챙기는 일이 늘 골칫거리였다. 아침에는 직접 구운 토스트나 샌드위치로 어떻게든 버텼지만, 헐레벌떡 퇴근해 제대로 저녁을 차리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운 좋게도 우리 집 살림을 살뜰히 살펴주시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저녁 식사까지 만들어주시는 아주머니를 만나 워킹맘 생활의 큰 시름을 덜 수 있었다.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주 산책을 했다. 봉사활동으로 한양도성 길라잡이를 하며 문화재 자문위원을 맡고 있던 내게 걷기란 ‘누워서 떡 먹기’ 같은 것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3~4시간쯤은 거뜬히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산책하러 나갈까?” 하고 물으면 아이들이 “무서워”라며 농담을 할 정도였다. 주말 산책은 나와 아이들 사이의 오랜 습관이자 암묵적인 관습과도 같았다. 주말이면 나는 아이들하고 동네를 산책하며 터놓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그동안 걸었던 도성길이나 궁궐길이 셀 수 없이 많다. 그 과정에서 음식이 어찌 빠질쏘냐. 주중에 학교 급식과 아주머니가 만든 한식만 주로 먹던 아이들에게 이국적인 음식을 먹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동네를 산책하며 가게를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보다는 개성이 넘치는 소규모 개인 식당을 선호하는 편이다. 산책을 하다가 지칠 때쯤 되면 눈여겨봐 둔 음식점으로 향한다. 지금 소개할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립 스테이크’는 그중 한곳이다. 건식으로 숙성시킨 스테이크가 어찌나 맛있던지 그날 이후 나와 아이들은 이 음식점의 ‘찐’ 팬이 되고 말았다. 한국인들에게 스테이크란 특별한 날 먹는 음식이다. 뭔가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인들에게 스테이크는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고향에서 먹던 집밥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단골이 된 우리는 갈 때마다 셰프 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새 자연스레 서로 안부를 묻는 이웃이 됐다. 몇 년 전 그 셰프한테 내 고민거리를 털어놓은 적도 있다. 당시 고3 엄마였던 나는 수능을 보러 갈 아들의 점심 때문에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베테랑 전업주부들도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수능 도시락을 어떻게 싸서 아들 손에 들려보내야 할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상태였다. 그 얘기를 들은 셰프가 흔쾌히 자신이 직접 수능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나서는 것 아닌가. 특급셰프가 정성스레 만든 소고기볶음밥과 파인애플 간식을 들고 수능 시험장으로 들어선 아들은 문제도 잘 풀었다. 흔쾌히 남의 집 아들 수능 도시락을 만들어준 셰프를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게 특별한 인연을 맺은 ‘립 스테이크’였는데 어느 순간 셰프의 건강 문제로 문을 닫고 말았다. 주말 산책을 할 때마다 그리 허전할 수가 없었다. 다른 곳도 가봤지만 한국에서 먹는 서양 음식은 대부분 거기서 거기였다. 이탈리아 음식점이 대세였고, 어딜 가나 비슷한 맛이었다. 메뉴도 비슷했다. 이탈리아에 가면 지역마다 정말 다양한 식재료와 메뉴가 있는데, 한국에서 먹는 이탈리아 음식은 거의 동일했다.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그런 서양 음식 말고, 그 식당만의 독특한 맛과 개성을 자랑하는 음식을 우리 가족은 찾고 있었다. ‘립 스테이크’를 향한 그리움이 더 커져만 갔다.
희소식이 들려왔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셰프가 부암동 석파정 건너편에 있는 ‘파란대문’이라는 가게를 지난해 인수했다는 소식이었다. 앞치마를 둘러메고 다시 주방에 선 셰프를 보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 가족은 여지없이 또 ‘파란대문’의 단골이 됐다. ‘립 스테이크’가 스테이크 요리 중심이었다면 ‘파란대문’은 프랑스식 집밥 전문이다. 점심, 저녁의 세트 메뉴로 식전 빵인 포카치아, 그린 샐러드, 메인 요리, 와인이나 맥주 혹은 음료수 중 한 가지가 함께 나온다. 메인 요리는 스텍아쉐(흔히 우리가 아는 햄버거스테이크)와 머스타드 디종 소스, 잠봉 스테이크와 처트니 소스, 치킨 스테이크와 치미추리 소스, 해산물 파케리 파스타 등 모두 4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그러고도 가격은 1만8000원이다. 서울 시내에서 누리는 호사가 아닐 수 없다.
되도록 인스턴트 소스나 시판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려는 점도 이 식당의 특징이다. 매일 포카치아, 치아바타, 피아디나 3종류의 빵을 구워낸다. 돼지고기를 숙성해 잠봉(돼지다리살로 얇게 저민 햄)을 직접 만든다. 양파와 파프리카를 캐러멜색이 나도록 볶아 졸인 처트니 소스도, 치킨 스테이크를 재울 때 사용하는 치미추리 소스도 모두 주방에서 직접 만든다. 스텍아쉐 요리에는 주로 그레이비 소스를 곁들이지만, 혼자 주방을 보기 때문에 고기 육수로 그레이비 소스까지 만드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머스타드 디종 소스로 대체했다고 한다. 셰프의 고집과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정성 덕분인지 여기서 음식을 먹으면 미국에 살 때 먹던 집밥 느낌이 난다. 건강 문제로 일을 중단했던 터라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셰프는 주방으로 돌아오면서 오래 먹어도 속이 편안한 맛을 추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게 ‘파란대문’의 콘셉트가 됐다. 어떻게 생각하면 맛이 조금 밋밋하다 싶을 수도 있는데, 식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속이 더부룩해본 사람들은 안다. 고기를 먹은 후에도 속이 편하고, 입안이 마르지 않는 데서 오는 포만감과 안도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난 10월 아들이 결혼했다. 예전처럼 매주 셋이 함께 동네 산책을 할 수는 없게 됐다. 딸은 여전히 나와 함께 살고 있어 종종 산책길에 나선다. 굳이 이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가끔 ‘파란대문’에 들러 인사를 건넨다. 그 정도로 익숙한 식당이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그래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이 최고란다. 딸은 엄마표 프렌치토스트, 아들은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를 소울 푸드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어디까지나 그건 아이들 생각이고 엄마인 나로선 남이 만들어준 음식이 가장 맛있다. 이를테면 ‘파란대문’ 음식이 내겐 바로 엄마표 집밥이다.
필자는 1958년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조지타운대학교에서 미국학을 전공한 후 1980년 평화봉사단으로 경남 사천의 한 보건소에서 일했다. 이후 김덕수 사물놀이패에 연구생으로 입단했다가 해외 공연 매니저로 약 12년간 근무했다. 중앙일보, 뉴스위크 한국판 등 다양한 매체에서 에디터로 10년간 일하기도 했다. 2005~2006년 남이섬 교육문화원 원장을 맡았고, 2006년부터 지금까지 대성그룹에서 고문을 맡아 회장 보좌 업무를 하고 있다. 서울 KYC한국청년연합 도성길라잡이(해설사), 우리문화숨결 궁궐 길라잡이를 맡으며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오수잔나 대성그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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