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새 먹거리 SAF]②걸음마도 못 뗀 한국…"실질적 지원 시급"
법안 개정 후에도 과제 산적…"인센티브 동반될 필요"
차세대 항공유로 '지속가능항공유(SAF·Sustainable Aviation Fuel)'가 부상하고 있지만 한국 내 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글로벌 주요국들이 SAF 도입 및 확대를 위한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이미 글로벌 100여개 공항서 SAF를 공급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한국 공항은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유럽·미국 이어 일본도 뛰어들었다
주요국 가운데서도 유럽의 역할이 가장 돋보입니다. 유럽연합(EU)은 유럽 기후법과 파리조약에 SAF 도입을 명시하고, SAF 도입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발표한 'ReFuelEU Aviation'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단계적으로 SAF 사용량을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인데요. EU는 2025년부터 EU 27개국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급유할 때 기존 항공유에 SAF를 최소 2% 이상 섞어야 하는 법안을 의결했습니다. 의무 비율은 △2025년 2%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 등으로 높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지침이 아닌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국가 수준이 아닌 EU 수준서 적용되는 명령인 만큼 상당한 강제성을 띠는 정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미국도 2030년까지 연간 SAF 생산량을 최소 30억갤런 이상 끌어올리고, 2050년까지 항공 연료 수요(연간 350억갤런) 전량을 SAF로 대체하는 방안들을 정책화했습니다.
일본은 올해 5월 SAF 의무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2030년까지 국적 항공사 연료 소비량의 10%를 SAF로 대체하겠다는 법적 규정을 마련한 겁니다.
아울러 EU·미국·일본은 SAF 보급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제도도 시행합니다. SAF가 기존 항공유 대비 3~6배 비싼 탓에 정유회사들이 생산설비 확충을 쉽게 하지 못하자, 이를 위한 지원책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EU는 모금된 혁신기금을 SAF 등 온실가스 감축 잠재력이 높은 프로젝트에 우선 제공하도록 했고,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갤런 당 최대 1.75달러 세금을 공제키로 했습니다. 일본도 정부 기금을 통해 SAF 원자재 공급망 구축을 돕겠다는 내용을 공식발표, 향후 세금 면제 등 추가 지원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계획입니다.
과거에 갇힌 한국…관련 법 재정비 막바지
한국은 아직 관련 법 개정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현재 '석유사업법'은 바이오디젤·바이오중유·바이오가스·바이오에탄올 등 4개 종류만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SAF가 석유대체연료에도 포함돼 있지 않아 석유 이외의 원료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법에 해당합니다.
물론 보수적 관점서 제정된 기존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석유는 안보와 직결된 전략자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에너지업계 화두가 '탄소중립'인만큼 관련 법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앞서 설명했듯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국제항공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를 채택함에 따라, 국내 항공사들은 2027년부터 의무적으로 탄소감축에 나서야만 합니다.(▷관련기사:[정유사 새 먹거리 SAF]①차세대 항공유 '우뚝'…넘치는 신사업 매력)
다행히 2026년 SAF 국내 도입을 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무리 없이 진행될 전망입니다. 올해 7월부터 SAF 실증사업이 시작돼 시범운항을 완료했고, 최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석유사업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의결했습니다.
이번 개정안은 석유정제업의 범위를 '친환경 정제원료를 혼합한 것'까지 확장한 게 특징인데요. 추후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 국내 정유사들도 SAF 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인센티브 제도가 부재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SAF는 기존 항공유 보다 비싼 원료로 만들어져 정유사들의 부담이 상당히 큽니다. 우선 SAF 가격이 최대 6배가량 높다 보니 수요가 적고, 이에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당장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힘들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이에 업계 안팎에선 세제 혜택 등 실질적 지원이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실장은 "법안 개정은 SAF 도입을 위한 첫 단추"라며 "향후 업계의 투자 활성화를 이끌기 위해선 생산설비 지원 및 세제 혜택 등 실질적인 지원방안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센티브 지원 필수, 초기 시장선점 중요"
다수 전문가들도 인센티브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8일 '석유산업의 신성장 전략과 친환경연료의 역할'을 주제로 제5차 '2023 석유컨퍼런스'를 열었는데요.
이날 발표자로 참여한 전문가들은 "SAF를 비롯한 친환경 연료 시장은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민·관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초기 시장선점이 중요할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김철현 HD현대오일뱅크 중앙기술연구원 상무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의무혼합제를 이미 발표해 수요 예측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정책 마련이 아직 되지 않아 정확한 수요 예측이 어렵다"며 "반면 SAF 설비투자금액은 커 기업 입장선 위험 부담이 상당한 상황"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김영대 SK이노베이션 그린성장기술팀장은 "SAF 등 친환경 연료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정부의 인허가 조치 및 초기 시장 형성 유도 등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며 "ICAO의 CORSIA 규제가 2027년부터 시작되면 SAF 산업은 초기 시장을 빠르게 형성할 것이고, 이 과정에선 세금감면 등 인센티브 지원이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도 관련 제도를 논의할 방침입니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친환경 연료에 투자한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재정지원 등 인센티브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종합 검토해 한국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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