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2023년 10대 뉴스 (上)

2023. 12. 26.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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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2023년은 불확실의 해이자 거꾸로의 해였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경제 전망은 수정되기 일쑤였고, 역성장이 예상된 미국 경제는 오히려 성장을 거듭하며 정반대로 질주했다. 그런가 하면 저출산, 지구온난화와 같은 낡은 단어들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와 우리 삶을 습격했다. 2023년은 어떤 해로 기록될까. 한경비즈니스가 2023년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① 고물가
“손님도 사장도 아프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요즘 호떡 하나에 얼마인가요?”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하나에 댓글이 주루룩 달렸다. “1700원이요”, “1500원이요”, “2000원도 봤어요”…. ‘국민 간식’ 호떡 가격이 이젠 달갑지 않은 지 오래다. 수도권에서 대부분의 호떡 값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조금 더 목 좋은 곳에 차린 가게에선 2000원까지 값이 올랐다.

호떡 친구 붕어빵은 더 심하다. ‘2개당 1000원’과 ‘3개당 2000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더니 어느새 ‘3개당 2000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이제 1000원으로는 겨울 간식은 구경만 해야 하는 수준이다.

원인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식자재 가격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공급망이 붕괴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지구온난화로 작황 부진 등을 동시에 겪으면서 식자재 값이 일제히 상승했다. 특히 간식류의 가격을 끌어올린 설탕값은 지난 5월까지 최근 12년 상승률이 87%로 치솟았다. 설탕과 인플레이션을 합쳐 ‘슈거플레이션’이란 말이 나왔을 정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까지도 3%대 고물가가 이어질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3.6%보다는 안정되긴하지만 올해에 이어 내년 상반기까지는 물가상승률이 3%대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잡히지 않는 물가에 지갑도 굳게 닫혔다. 지난 3분기 물가를 발영한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비지출은 △의류·신발(-11.6%) △가정용품·가사서비스(-10.9%) △기타상품·서비스(-4.7%) △음식·숙박(-3.1%) △주류·담배(-1.9%)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지난해 3분기보다 뒷걸음질쳤다.

이는 자영업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 경제에 직격타를 입혔다. 최근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코로나19 위기 때보다 상황이 심각하다”며 “폐업밖에 답이 없다”는 말이 나돈다. 자영업자 비율은 지난 2분기에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으로 20% 선을 밑돌았다. 자영업자 대출도 역대 최대였다. 자영업자 대출 지표로 활용되는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대출 중 예금은행의 비법인기업 대출 잔액은 119조4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7000억원 증가했다. 고물가에 원재료 구매 부담은 커지고 소비는 위축되면서 운영자금을 빚으로 충당한 결과다.


 ②챗GPT
2023년판 新종교전쟁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가 6월 9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주관으로 열린 ‘K-Startups meet OpenAI’에서 대담을 갖고 있다. / 20230609 강은구 기자

올 한 해 가장 핫한 미국 주식이 무엇이었을까. 여러 기업을 떠올리겠지만, 엔비디아에 이견을 나타낼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5월 반도체 기업 최초로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더니 11월엔 종가 기준 500달러를 넘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약 1조1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500조원이 넘는다.

엔비디아 주가를 밀어올린 건 인공지능(AI) 열풍이다. 지난해 11월 오픈AI가 선보인 챗GPT는 출시 이후 불과 두 달 만인 올해 1월 MAU 1억 명을 돌파하며, 인터넷 등장 이후 가장 빠르게 이용자 수가 증가한 서비스로 거듭났다. 시장은 ‘AI 열풍’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총성 없는 전쟁으로 이어졌고, 최근에는 구글이 GPT-4를 견제하기 위한 ‘제미나이’를 공개하면서 초거대 AI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AI가 고도의 발전을 이루면서 2023년판 종교전쟁에 버금 가는 심각한 상황도 펼쳐지고 있다. 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부머(boomer·개발론자)’와 AI가 인류에게 위험이 된다고 보는 ‘두머(doomer·파멸론자)’ 간 싸움이다. 이제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된 오픈AI의 샘 올트먼 축출 사건도 이러한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 5일간의 소동 끝에 올트먼이 복귀에 성공하며 당장은 AI 개발론이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물음표는 남아 있다. 챗GPT는 인류의 축복인가, 재앙인가. 1년 만에 챗GPT가 다시 논란을 몰고 돌아왔다.


 ③카카오의 위기
‘더 나은 세상’ 아니, 배신의 경영


국민 캐릭터 ‘라이언’을 닮은 김범수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10월 23일 피의자 신분으로 금융감독원에 공개 소환됐다. 검찰이 아닌 금감원 수사 단계에서 대기업 총수급 피의자가 공개 소환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난 2010년 3월 “기술과 사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카카오의 등장에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국민적 관심이었다. 남녀노소 카카오프렌즈를 사용했고, 주주들은 카카오란 성장주에 미래를 걸었고, 개미들의 염원 속에 2021년 카카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2년여가 지난 카카오의 오늘은 참혹하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은 지난 10월 26일 “금융, 법률 전문가 그룹까지 조직적으로 가담한 사건으로 자본시장의 근간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라며 카카오를 정조준했다. 국민연금공단은 나락에 빠진 주가에 본격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기로 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부도덕적인 기업’이라며 카카오를 공개 저격했다.

쓰나미가 몰고 간 카카오는 현재 분골쇄신 중이다. 창업주 김범수 센터장은 12월 11일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며 카카오의 재탄생을 예고했다. 그리고 “새로운 배, 새로운 카카오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그가 세운 뉴 리더십은 40대 여성 CEO인 카카오벤처스의 정신아 대표다. 카카오 측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가기 위해 IT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고,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른 갈등과 어려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신아 내정자가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 내정자는 내년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 선임될 예정이다. 위기의 구원투수가 될지, 유리절벽의 사례가 될지 경영의 주사위는 다시 던져졌다.


 ④신생아 역대 최저
“1호 인구소멸 국가?”


자료 : 한국고용정보원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지난 7월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듣고 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올해 1∼3분기 누적 출생아 수는 17만7000명. 이는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은 수준이다. 올 4분기에는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까지 떨어지며 저출산 위기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저출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 들어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인구학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계속되면 인구소멸 1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일찌감치 전망했다. 그러나 당시 합계출산율은 1.13명으로 올해 4분기 0.6명대와 비교하면 저출산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콜먼 교수는 “인구 감소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진다”며 “이대로라면 한국은 2750년 국가가 소멸할 위험이 있고, 일본은 3000년까지 일본인이 모두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출산율이 낮은 이유로 과거에서 비롯된 전근대적인 사회·문화와 빠른 경제 발전의 괴리, 과도한 업무 부담과 교육 환경 등을 꼽았다.


 ⑤세계의 분열
세계화? 갈라진 세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2023년 경제를 뒤흔든 커다란 변수였다. 사진은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잠정 휴전 사흘째인 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자시티를 지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전례 없는 규모의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약 1만8000여 명. 지난해 세계경제를 격동에 빠뜨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최악의 전쟁 참사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안보 불안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이번 무력 충돌 사태로 전 세계 국가들마다 계산이 달라지고 있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팍스 아메리카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결합된 ‘세계화’는 평화와 번영의 황금기이자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이 강력한 패러다임이 깨지고 있다는 징후가 2022~2023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경제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여기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달러 패권’의 위협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중국과 원유·천연가스(LNG)를 거래하는 데 달러 대신 위안화로 대금을 결제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제 미디어 조직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는 지난 3월 ‘분열된 세계화’라는 칼럼을 통해 “세계경제는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블록화되고 있고 몇몇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고 줄타기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칼럼은 이로 인해 전 세계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할 것이고 세계경제의 성장 잠재력 또한 현저히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덧붙였다. 탈세계화가 지금의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자 세계경제를 송두리째 바꾼 최대 변수로 떠오른 것이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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