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세금 감면 국내서 토해내야…대기업들 ‘글로벌 최저한세’ 비상
내년부터 ‘글로벌 최저한세’ 시행을 앞두고 국내 기업들이 복잡한 셈법에 빠졌다. 대기업집단의 이익과 사업 구조에 따라 국외 법인이 해당 국가에서 받은 세제 혜택 중 상당액을 국내에 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1조원의 세액공제를 받는 엘지(LG)에너지솔루션(이하 엘지엔솔)과 에스케이(SK)온, 내년에 비슷한 규모의 수혜를 입게 될 한화솔루션 등이 대표적 기업들이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에스케이·현대자동차·엘지 등 국외에 대규모 사업장을 두고 세금 감면 혜택을 입은 대기업들은 내년에 도입될 ‘글로벌 최저한세’로 인해 개별 기업별로 많게는 수천억원의 세금을 국내에 내야 한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연결 매출 1조원 이상 기업이 특정 국가에 내야 할 실효세율이 15%보다 낮을 경우 본사 소재지 정부에 차액을 내야 하는 제도다. 예컨대, 한국 기업이 법인세의 실효세율이 10%인 나라에 공장을 지어 매출을 올려도 한국에서 차액인 5%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지난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5개국이 합의한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국가 간 세금 깎아주기 경쟁이 과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이른바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서류 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세워 세금을 회피하는 꼼수는 더는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첨단 산업이 많은 국내 기업들도 외국 정부의 투자 유치 인센티브 등을 받는 경우가 많아, 이 제도의 적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250여곳이 꼽힌다. 세 부담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하는 곳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세액공제를 받았던 2차전지와 태양광 업체들이다. 업계에선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엘지엔솔과 에스케이온이 올해에만 미국에서 1조원가량의 세액공제를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연방정부의 법인세율은 15%에서 시작하지만, 세금감면 혜택을 고려하면 실효세율은 그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추산된다.
해당 기업들은 최저한세 영향과 추가세액 계산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례가 다 다르고, 지분구조에 따른 세금 부과액의 차이가 있어서다. 엘지엔솔의 경우 지분 82%를 보유한 모기업 엘지화학이 차액을 내야 하는데, 세액 부담액은 대략 1500억원가량 될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글로벌 최저한세의 지배력 기준이 80%라 엘지화학이 2% 이상 매각해 지분을 80% 이하로 낮출 경우 추가세액 부담을 피할 수 있다. 엘지화학 관계자는 “지분을 낮춰 자회사가 내는 게 효율적인지 모기업이 내는 게 좋은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태양광 모듈 공장을 증설 중인 한화솔루션은 내년에만 1조원가량의 세액공제 혜택을 볼 전망이다. 자회사인 한화큐셀 쪽은 “세제 혜택과 영업이익에 따라 추가세액이 달라지는 내용이라, 외부 전문가를 통해 세부 내용을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9%의 법인세를 적용해온 헝가리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에스디아이(SDI)와 에스케이온 등도 추가세액이 끼칠 영향을 놓고 분석에 들어갔다.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가 도입되면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가 간 공정한 조세 경쟁을 촉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비용 부담과 조세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자 위축이 나타날 수 있는 점은 문제점으로 꼽힌다. 오상범 삼정케이피엠지(KPMG) 부대표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적용하는 기업의 경우 내년 1분기부터 실제 납부해야 할 추가세액을 추정해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며 “세밀한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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