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無知지옥] [르포] “몰빵 투자는 위험, 분산투자 할 거에요”… 교실에서 만난 꼬마 투자자들

정현진 기자 2023. 12. 2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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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만든 앱 ‘퍼플’로 월급 받아 투자·저축
“‘단타’보다 ‘장투’ 선호… 소비 줄어 부모님 만족”
“소액결제 익숙한 아이들, 교육이 현실 못 따라가”

곗돈과 은행 적금이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스마트폰을 활용한 주식, 가상화폐 매매 등 투자처가 다양해졌다. 그만큼 금융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하지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정신이 바뀌지 않았다. 돈을 다루는 장사를 가장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탓에 그간 우리 사회에서 돈에 대한 얘기는 금기시됐고 금융 교육이 전무했다. 그 결과 3대 사모펀드(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및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 논란, 라덕연 사태가 터졌다. 반복되는 금융 사고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저는 750모에가 남았어요, 너무 주식만 해서, 삼성전자에 몰빵 했다가 다 날렸어요. 내년에는 예금만 할 거예요.” (지행초등학교 5학년 장유찬군)

“저는 3만모에를 모았어요. 이 중 1만7000모에는 저축하고, 나머지는 5종목에 분산 투자할 거예요. 하나에만 투자하면 너무 위험해요.” (지행초등학교 5학년 조원상군)

2023년 12월 7일 오전 10시 지행초등학교 5학년 6반 교실에서 이성강(30)교사가 금융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정현진 기자

지난 7일 오전 10시 5분,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초등학교 5학년 6반에서는 금융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날 수업은 올 한 해 학급 화폐인 ‘모에’의 입출금 내역을 살펴보고 정리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모에’라는 화폐의 이름은 26명의 학생이 직접 만들었다. 한 개그맨의 유행어 ‘모에 모에 큥’에서 가져온 단어다. 학생들은 모에로 교실 매점에서 간식을 사 먹거나, 학급 비품을 빌릴 수 있다.

◇ 월급 받고, 세금 내고, 저축하고, 투자하고

올 한 해 5학년 6반은 하나의 국가 즉, 모에모에국(國)이었다. 반 학생들은 모두 직업을 가졌고, 매달 첫날 월급 ‘모에’를 받았다. 직업의 난도에 따라 월급의 액수는 상이하다. 칠판을 닦는 칠판부장보다는, 교실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 더 많이 받는다. 학급 회의에서 ‘잡무가 많으니 월급을 올려달라’고 건의하면, 논의를 거쳐 월급이 오르기도 한다. 월급을 많이 받을수록 소득세를 많이 낸다. 때때론 성과급을 받을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자릿세도 낸다. 교실에 마련된 보드게임 대출입 내역을 관리하는 ‘놀이꾼’ 김다니엘군은 두 달에 한 번 자리 임차료로 300모에를 낸다. 보드게임을 보관하기 위해 책상 1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니엘군의 월급은 1500모에, 소득세는 300모에다.

문방구 주인 김유은양은 월급으로 1350모에를 받고, 소득세로 270모에를 낸다. 문방구 주인은 공동 비품인 문구용품을 빌려주고, 이를 다시 돌려받는 게 주업무다. 이동 수업을 위해 교실을 비울 때 에어컨과 교실 불을 끄는 직업인 에너지 담당자 홍지효양은 월급으로 1200모에를 받고, 240모에만큼을 소득세로 낸다. 직업은 2개월마다 돌아가면서 바뀐다.

12월 7일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초등학교 5학년 6반 교실 학급 게시판에 학생들의 모에를 모은 국고 잔액과, 직업 별 월급 등을 써놓은 월급명세서가 게시되어 있다./정현진 기자

모든 ‘모에’의 입출금은 어플 ‘퍼플(Puple)’을 통해 이뤄진다. 퍼플은 경제·금융 교육에 관심이 있는 초등학교 교사 약 1000명이 모인 경제금융교육연구회가 개발한 학급 경영 어플이다. 반 학생들은 경기도 교육청에서 나눠준 태블릿PC에 퍼플을 내려받아, 여기서 모에 잔고를 확인한다. 모에가 부족한 친구에게 퍼플을 통해 모에를 송금하기도 한다. 송금 수수료는 7모에다.

아이들은 월급을 받는 데에 안주하지 않는다. 모에를 더 모으기 위해 주식도 한다. 모에모에국 증시에 상장된 종목은 총 5종목이다. 구글, 나이키, 넥슨, 마이크로소프트, 삼성전자다. 모두 학생들이 연초 학급 회의를 통해 직접 고른 종목들이다.

매일 1교시가 끝나면 ‘은행원’ 장유찬군은 전날 실제 주식 등락률을 반 친구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퍼플에 입력한다. 실제 주식처럼 주가가 실시간 움직이진 않지만, 얼추 비슷한 등락률로 투자할 수 있는 셈이다.

12월 7일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퍼플' 어플리케이션 상 가상의 신용등급을 확인하고 있다./정현진 기자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 해 수입과 지출에서 잘한 점과 아쉬운 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아양은 “1250모에 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투자를 별로 안 했고, 돈을 너무 많이 썼다”고 후회했다. 송광현군은 잘한 점으로 ‘주식 투자를 여러 종목에 골고루 잘해서 돈을 많이 안 잃은 것’을, 아쉬운 점으로는 ‘투자를 너무 많이 해서 쓸 돈이 없었던 것’을 꼽았다.

수업 말미엔 잔고에 남은 모에를 어떻게 쓸지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하윤군은 1만2000모에 전액을 모두 게임회사인 넥슨에 다 투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원군은 “넥슨 피파 온라인(게임 이름)에 새로운 패치가 나왔는데, 해보니까 엄청 재밌었고 앞으로도 잘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투자의 쓴맛을 보고 저축에 집중하기로 한 친구도 있었다. 송채린양은 남은 4390모에 중 3500모에를 저축하고 나머지는 쓸 돈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송양은 “돈이 있어야 돈을 더 빌릴 수 있어서 저축했다”면서 “투자는 할 때마다 주가가 자꾸 떨어져서 더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12월 7일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퍼플' 어플리케이션으로 지난 모에 사용 내역을 보여주고 있다./정현진 기자

◇ “아이들에게 돈 관리하는 법 알려주고파… 학부모 만족도 높아”

5학년 6반을 모에모에국으로 만든 이성강(30) 교사는 수업하면서 학생들의 변화를 몸소 느낀다고 했다. 그는 “소비·투자와 지출에 대한 학생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매번 직접 관찰한다”고 했다. 그는 “일부 학부모님들은 학기 초 아이들이 돈에 집착할 것을 우려하시기도 했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돈을 아끼려고 해 (수업에) 만족하셨다”고 했다.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무작정 투자하기를 권유하진 않는다고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4월에는 예금으로 일단 월급을 모으게 한다. 5월부턴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적힌 투자 동의서에 서명한 학생만 투자할 수 있게 한다. 이 교사는 “처음엔 아이들이 ‘단타(단기 투자)’에 빠질까 봐 걱정했는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 단타보다는 오히려 ‘장투(장기 투자)’를 하면서 수익률을 자랑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며 웃었다.

12월 7일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퍼플' 어플리케이션에서 한 해 동안의 모에 사용 내역을 살펴보고 있다./정현진 기자

금융투자 수업은 매월 2~3회 진행된다. 수업은 화폐의 시간가치, 소득과 지출, 저축과 투자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정규 수업으로 배정되지 않아, 창의적체험활동(창체) 시간이나 다른 교과 시간을 활용한다. 이 교사는 “사실 초등학생만 돼도 온라인 쇼핑 등을 위한 무통장 입금·휴대전화 소액 결제 등에 익숙하다”면서 “아이들도 고리대금이나 소액 도박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금융교육의 수준은 이에 크게 뒤처지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 교사가 수업의 목표가 “아이들에게 돈 관리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투자를 ‘재미’로만 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면서 수업을 준비한다”면서 “수요와 공급, 기회비용 같은 이론적인 수업보다는, 실생활과 더 밀접한 교육을 하려고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교사로서 개인적 소망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5학년 6반 학생 중 단 한 명이라도 금융투자와 경제에 흥미를 잃지 않아 나중에 금융투자업계 종사자가 된다면 정말 보람찰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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