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담대·고위험 상품으로 60조 이익… “전당포 수준 은행, 군대보다 위험”

방현철 기자 2023. 12. 26. 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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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철의 경제로 세상 읽기]
박선영 동국대 교수가 말하는 은행이 해야 할 상생 금융
박선영 동국대 교수는 지난 19일 인터뷰에서 “국내 은행들이 신뢰를 잃으면서까지 원금 손실이 있는 금융 상품을 팔며 비이자 수익을 굳이 늘릴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은행권이 21일 낸 2조원 상생 금융 방안 등에 대한 견해는 추가로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상훈 기자

올해 국내 은행들은 이자 수익만 역대 최대인 60조원쯤 벌 것으로 전망된다. 고금리로 속이 타는 소상공인 사이에선 은행이 ‘탐욕’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은행들은 홍콩H지수 ELS(주가연계증권)라는 초고위험 상품의 절반가량을 60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팔았다는 비난도 받는다. 이 상품은 내년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은행이 안전하게 노후 자금을 맡아주는 곳이란 신뢰가 깨진다는 얘기다. 과연 한국 경제에서 은행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금융 분야를 연구하는 경제학자인 박선영 동국대 교수를 지난 19일 만나 은행이 해야 할 상생 금융은 어떤 것일지 얘기를 나눠봤다.

- 은행이 왜 비난의 타깃이 되나.

“미국 3대 대통령이자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은 “은행은 군대보다 위험하다”고 했다. 미국 초기엔 은행의 거대화를 경계해 철저하게 한 주(州) 내에서만 영업하게 했다. 미국 은행 숫자가 여전히 많은 이유다. 대공황 시기 배경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선 소설 속 인물이 “은행은 사람보다 더 강해요. 괴물이라고요. 사람이 은행을 만들었지만, 은행을 통제하진 못합니다”라고 하기도 한다. 은행에 대한 반감은 거의 모든 시대, 국가에서 관찰된다. 그만큼 사람들 후생과 경제 사이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권을 가진 기관이란 뜻이다.”

◇예금 말고 고위험 상품 왜 파나

- 은행이 고위험 금융 상품도 팔고 있다.

“은행의 본질적 역할은 단기 예금을 장기 대출로 바꾸는 것이다. 예금, 대출이 아닌 금융 상품 판매는 부수적이다. 원금 비보장형 ELS는 대체로 10% 확률로 -50% 이상 원금 손실이 나고 90% 확률로 평균 6%의 수익을 주는 고위험 상품이다. 그런 상품을 원하는 고객이 있다면 은행이 팔 수는 있다. 하지만 예금 만기가 된 금융 소비자에게 전혀 성격이 다른 ELS를 권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둘은 대체재가 아니다.”

동국대 경제학과 박선영 교수가 19일 서울 중구 장충동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대 교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 은행들은 비이자 수익을 늘리려 고위험 상품도 팔아야 한다고 한다.

“국내 은행 산업구조에서 국민 신뢰를 잃으면서까지 원금 손실이 있는 금융 상품을 팔며 비이자 수익을 굳이 늘릴 필요가 있을까 싶다. 미국은 은행이 4000여 개여서 경쟁이 치열하다. 이들은 여러 시도를 하며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비이자 수익이 많다. 다만 우리나라와 같은 형태의 ELS는 미국에선 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대형 은행 몇 곳이 시장을 나눠 거의 과점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비이자 수익마저 높이겠다고 하면 ELS 판매 등에서 보듯 금융 소비자 부담만 늘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비이자 수익이 아니라 금융 소비자를 위한 상품을 팔아야 한다.”

‘전당포 영업’ 비판 받는 은행

- 은행이 예금만 받자는 ‘내로 뱅킹(narrow banking)’ 논의도 있다.

“내로 뱅킹은 은행은 대출을 하지 않고 예금만 받고 지급 결제 기능만 수행하자는 것이다. 은행 대출은 소액의 예금을 모아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돈을 흐르게 해서 경제 성장에 핵심적이다.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가 미국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에서 출발했다고 해서 은행이 위험한 대출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하자는 논리로 내로 뱅킹 논의가 글로벌 학계 일각에서 나왔다. 그러나 내로 뱅킹은 너무 급진적인 주장이다.

◇국내 은행은 안전한 대출만 한다

- 국내 은행은 주택 담보 대출에 쏠려 있다.

“주택 담보 대출은 경제의 생산성과 연관이 없다. 그런 대출에만 쏠린다는 건 사회적 역동성이나 성장성이 굉장히 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은행으로 봐선 주택 담보 대출이 담보가 확실하고 신용 위험도 거의 없다. 국내 은행들은 외환 위기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측면도 있다. 자본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 시장점유율만 유지하는 게 우선순위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위험한 대출이나 중신용자 대출, 조금이라도 연체율이나 자본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출엔 극히 위험 회피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은행이 건전하면 좋은 것 아닌가.

“은행의 특권은 남의 돈으로 대출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을 대신해 생산성이 높은 기업과 개인에게 자금을 제대로 조달해 주고 있는가란 관점에서 은행을 평가해야 한다. 은행은 개인이나 기업이 정말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대출 기간 돈을 갚으려고 열심히 일하는지, 돈을 못 갚는 상황이 되면 진짜 갖고 있는 돈이 얼마나 되고,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는지 등을 잘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주택 담보 대출 같은 손쉬운 대출을 국민 돈으로 해주면서, 많은 이자 수익을 누리면 전당포 영업이라고 비판을 받는 게 당연하다. 은행의 많은 이자 수익이 직원의 뛰어난 역량과 은행의 혁신성과 우수성 때문에 생겼다면 아무도 비판하지 못할 것이다.”

◇은행권 상생 금융 방향은

- 은행권은 2조원의 상생 방안을 발표했다.

“이자 절감과 취약 계층 지원이란 방향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존 금융 소비자에게 더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가 제공되거나, 금융 소비자가 이전엔 접근할 수 없던 금융 상품이나 대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산 금리가 낮아지거나, 대출을 못 받던 사람이 받게 돼야 사회적 후생이 좋아진다는 뜻이다.”

- 횡재세 도입 주장도 있다.

“횡재세는 나를 포함해 경제학자들 대부분이 반대한다. 제도화되면 기업이 이익을 숨기려는 등 이윤 추구에 왜곡이 생기기 때문이다. 뭐가 횡재인지 정치권에서 자의적으로 정할 위험도 있다. 야당이 낸 횡재세 법안에서 5년 평균 순이자수익의 120%를 초과하는 이익을 횡재세 부과 기준으로 삼는데, 이게 적정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많이 버니까 세금을 더 내라’란 주장은 저금리 시기가 와서 은행이 어려워지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고금리 시기건, 저금리 시기건 정책적 일관성이 있게 은행 이익을 어떻게 다룰지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정책 이슈가 부각되고 사라지는 시간이 너무 짧다.”

- 주주 배당을 늘려 이익을 돌려줘도 되지 않나.

“은행 이익에 라이선스(인가)의 기여가 크다. 그래서 은행 이익을 주주에게 모두 배분하는 게 맞는가란 의문이 있다. 다만, 국민 모두가 은행 주식을 갖고 있다면 주주 배당으로 이익을 나누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 횡재세, 배당이 아니라면 어떤 상생 금융이 가능할까.

“어떻게 일관성 있게 은행 이익을 평가할지 사회적 합의가 우선 필요하다. 학자들 사이에선 ‘지금 있는 시중은행을 다 합쳐 하나로 만들어도 달라지는 게 별로 없을 것’이란 말이 있다. 은행 간 차별화된 서비스가 없고, 임직원의 혁신성이나 기술에 따라 은행의 성과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면 은행 수익 원천에 라이선스의 비중이 높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은행 이익 중 어느 정도가 라이선스의 기여인지 사회적 합의가 되면, 그만큼은 가산 금리도 낮추고 취약층 대출을 늘리는 데 써야 한다.”

은행 라이선스 희소, 사회적 책임 커

◇한국 경제에서 은행의 역할은

- 선진국도 은행 규제는 강하다.

“은행이 금융 시스템에서 중추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침체를 부른 것은 은행의 금융 중개 기능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주가가 폭락해 투자자나 증권사가 파산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은행이 경제의 혈맥이란 게 과장이 아니다. 따라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도 ‘은행은 가장 규제가 심한 산업이다’라고 했다.”

- ‘손실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비판도 있다.

“미국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21세기 통화정책’이란 책에서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주요 은행들에 대한 지원이 경제 시스템을 살리는 대승적 차원에서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정치적 역풍에 굉장히 힘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에선 외환 위기 때 공적 자금을 넣어 은행 구조 조정을 완료했다. 은행 라이선스가 굉장히 희소하기 때문에 당연히 큰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서 은행이 해야 할 일은.

“장기적으로 경쟁을 촉진해 은행 산업에서도 혁신을 불러일으키되, 은행 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금융시장에서 소외된 개인, 기업까지 돈이 흘러들어 갈 수 있게 하고 금융 서비스 비용을 낮춰야 한다. 글로벌 진출을 통해 수익 다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동국대 경제학과 박선영 교수가 19일 서울 중구 장충동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대 교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은행 라이선스

국내에서 은행업을 하려면 금융 당국의 라이선스(인가)를 받아야 한다. 시중은행 인가를 받으려면 자본금이 1000억원 이상 있고, 동일인 지분이 10% 이하여야 한다는 등 요건을 갖추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시중은행 인가는 1992년 평화은행 이후 없었다.

☞박선영 교수는

2004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수석 졸업한 박선영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뱅킹(은행)과 금융위기 권위자인 개리 고턴 교수의 지도를 받아 서브프라임 금융위기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29세에 카이스트(KAIST) 교수로 부임해 화제가 됐다. 이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거쳐 2020년 9월부터 동국대에 재직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자문위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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