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 딱지’ 없으면 장보기 빈손... 지갑 얇은 청춘, 고물가 생존기 [고통의 물·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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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물가, 금리, 집값 때문에 힘든 한 해를 보낸 서민들의 일상을 동행해 그들의 애환과 내년 바람을 담았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상반기 한국경제인협회가 산출한 청년층(15~29세)의 체감경제고통지수(체감실업률+체감물가상승률)는 25.1로 12.5~16.1인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그보다 물가 방어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원책에 대한 요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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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난방비 등 치솟는 물가에
소득·자산 적은 청년층 직격탄
지출 줄여 버티기... "저축은 꿈"
편집자주
물가, 금리, 집값 때문에 힘든 한 해를 보낸 서민들의 일상을 동행해 그들의 애환과 내년 바람을 담았습니다. 아울러 각 사안의 내년 전망도 전합니다.
‘국내산 돈앞다리살 12월 15일, 고추장 돼지주물럭 12월 16일…’
12일 오후 9시 서울 마포구 한 대형 슈퍼마켓 정육 코너 앞에 선 김혜성(가명·24)씨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위를 바쁘게 움직였다. 포장된 고기를 눈으로 훑으며 품목과 날짜를 옮겨 적더니 이내 빈손으로 돌아선다. “소비기한 하루 전 다시 와 보면 최소 20%씩 할인 딱지(스티커)가 붙어 있다”며 “기다렸다 그때 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그의 장바구니에 담긴 품목은 ‘알뜰구매 코너’에서 40% 싸게 집어온 감자 한 봉지와 바나나, 1+1 행사 중인 수입 콩 두부 두 모, 떨이 중인 즉석조리 떡갈비 한 팩. ‘마트 마감런’의 전리품이다.
대학가 원룸에서 자취 중인 혜성씨가 마트 할인 전단과 유통기한 임박 상품, 각종 마감 세일을 강박적으로 챙기기 시작한 건 딱 1년 전부터다. 3만 원에서 5만 원대로 껑충 뛴 가스비 고지서를 보며 “아낄 수 있는 대로 아껴 보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휴학 후 공인노무사 시험 준비에 매진하느라 아르바이트도 관두고 모아둔 돈을 다달이 쪼개 쓰는데, 나날이 오르는 물가가 야속하기만 하다. 6월 단골 국밥집 가격이 1,000원 오르고, 집 앞 중국집 짬뽕 속 오징어가 버섯으로 교체된 뒤로는 수고스러워도 아침과 저녁식사 두 끼를 무조건 ‘집밥’으로 해결하고 있다.
혜성씨의 한 달 생활비는 60만 원. 이 중 공과금과 휴대폰·인터넷 요금, 실손보험비 등 고정지출과 교통비, 학용품을 비롯한 각종 소모품 지출까지 빼면 순수 식비에 쓸 수 있는 예산은 36만 원이 남는다. 하루 1만2,000원꼴이다. 공부 중 카페인 수혈이 간절해질 때도 있지만 학생식당에서 6,000~7,000원짜리 점심을 먹고 나면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 마시기도 부담스럽다. 혜성씨는 “테이크아웃 커피는 2,000원 가격 제한을 두고 일주일에 두 잔만 마신다”고 했다. 가스비 절감을 위해 올겨울은 난방 없이 옷을 껴입고 전기장판으로만 최대한 버텨볼 생각이다. 그는 “그래도 이렇게 절약한 덕에 매달 20만 원씩 났을 적자를 면하고 있다”고 씩 웃어 보였다.
비단 혜성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황에 취업도 힘들고, 소득과 자산이 적은 청년들은 고물가 충격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상반기 한국경제인협회가 산출한 청년층(15~29세)의 체감경제고통지수(체감실업률+체감물가상승률)는 25.1로 12.5~16.1인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특히 청년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5.2%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0.5%)의 10배에 달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올 3분기 처분가능소득도 노인과 청년 비중이 높은 1인 가구만 2.9% 감소를 기록했다. 소득이 줄어든 1인 가구는 지출도 줄여, 의류·신발(-7.9%), 음식·숙박(-0.1%) 등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가계부 구멍을 걱정하는 청춘에게 저축은 꿈같은 이야기다. 5년간 매달 최대 70만 원을 적금하면 최대 5,000만 원의 목돈을 모을 수 있게 설계된 정부 ‘청년도약계좌’가 외면받는 이유다. 무작정 퍼주는 선심성 정책에도 부정적이다. 그보다 물가 방어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원책에 대한 요구가 높다. 혜성씨는 교통비 사용액의 20%를 마일리지로 환급하는 서울시 청년 대중교통비 지원사업을 사례로 꼽았다. 그는 “좋은 정책이 나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청년들이 자주 찾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더 활발하게 홍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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